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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정확하게 그리고 낯설게

건축사사무소 더 시스템 랩 작품 톺아보기

by hyogeun

건축가 김찬중은 과거와 현재가 인식하는 속도의 개념이 다르다고 말한다. 과거의 속도는 영속을 위한 지속성이었다면, 오늘날의 속도는 자본의 빠른 순환 그 자체가 미덕이다(1). 이 변화에 따라 건축 역시 단기간에 결과물을 도출해야 하지만, 건축은 비용과 기간, 발주처의 입장, 사용자의 요구, 대지 조건, 건축 법규 등이 얽힌 복합적인 분야로서 유기적 생태계처럼 복잡성을 띤다. 그래서 건축 산업은 속도에 대한 요구와 충돌하며 여전히 고비용에 느린 산업으로 머물러 있다.


그가 이끄는 건축사사무소 더_시스템 랩(THE_SYSTEM LAB)은 이러한 모순에 정면으로 반응하며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간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그가 언급했듯이 '빠르게 해석한 도면을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한 제작과 구축방식을 포함(1)'한 작업 체계다. 그 과정에서 산업 재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건축으로 어떻게 전용될 수 있을지를 실험하며, 끝내 디지털 공예(2)로서의 건축을 실현한다.


속도에 대응하는 시스템

초기작인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2008)는 한강변 터널 10개소를 단 2개월 만에 리모델링해야 했다. 플라스틱은 만들어 놓은 주형에 도장을 찍듯이 형태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게다가 무게가 가벼워서 시공에도 유리하다. 비록 현재는 태양 빛에 의해 색이 바랬지만, 2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면서 공기를 단축시켰다(3).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2008) / 사진 : 더_시스템 랩 공식 홈페이지 (https://www.thesystemlab.com/work/han-river-tunnel)

MCM 플래그십 스토어 신사 가로수길점(2014) 또한 단독 주택을 25일 만에 리모델링해야 했다. 내부를 철거하는 동안 세 종류의 폴리카보네이트 유닛을 미리 제작하고 철거가 끝나는 즉시 모듈을 설치하여 짧은 기간 내에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었다(4).

MCM 플래그십 스토어 신사 가로수길점(2014) / 사진 : 더_시스템 랩 공식 홈페이지 (https://www.thesystemlab.com/work/mcm-shinsa)

이처럼 설계부터 제작까지의 시스템 구축으로 속도에 대응할 수 있는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본격적으로 거대한 구조물과 입면에 차용되기 시작한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 'MOKA(2015)'KEB 하나은행 리모델링 프로젝트 'Place 1(2017)'이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 내부에는 꽤나 독특한 형상의 구조물이 자리한다. 버섯 같기도, 막대사탕 같기도 한 구조물은 강화섬유플라스틱(FRP)으로 제작되었다. 갈비뼈 모양의 프레임에 탄소강화섬유를 펼쳐서 널어놓은 다음, 스프레이로 경화제를 뿌리면 섬유가 녹으면서 막을 형성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 덩어리가 된 형태와 결절점 없는 부드러운 표면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화점 상층부 일부 공간을 리모델링할 때 생기는 공간적 제약을 극복해 낼 수 있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 / 사진 : 신효근 ( @_hyogeun_ )

Place 1은 UHPC 콘크리트 모듈로 건물 외벽을 둘렀다. UHPC 콘크리트는 철근 배근이 따로 필요 없어서 인건비가 대폭 줄어들고, 공장에서 사전 제작하여 현장에서 바로 설치 가능한 프리캐스트 공법을 따르기 때문에 철거와 제작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UHPC 자체는 비싸지만, 공기와 인력이 줄기 때문에 전체 건축 비용을 상승시키지 않는다(5). 동시에 배근이 없어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는 플라스틱 재료의 구축적인 특성을 따라간다. 플라스틱 유닛들은 벽돌처럼 적층 되어 있다 하더라도 위에서 내려오는 하중이 표면을 따라 흐르게 된다. 제품 디자인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부품들에 각진 부분 없이 둥글게 처리된 것도 미학적인 고려 이전에 이와 같은 구조적 특성 때문(6)이며, 모듈화 된 더시스템 랩의 작품이 산업 제품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Place 1 / 사진 : 신효근 ( @_hyogeun_ )

디지털 공예를 꿈꾸다

더 시스템 랩의 작업 방식은 자연스럽게 디지털 공예로 수렴한다. 디지털 공예는 디지털의 복제 개념과 공예가 가진 단 하나의 가치가 결합되어 새로운 창작 방식을 모색하는 분야다. 복제되어 모듈화 된 것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며 형성하는 거대한 물체는 독창성을 갖는다. 마치 지금까지 보았던 더 시스템 랩의 작업들처럼. 거기에 비용 절약과 공기 단축이라는 효과도 보장되어 있다. 빠른 자본 순환을 요구하는 상업 시설로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출해야 하는 기업에게 러브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MZ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누데이크, 어티슈를 전개하는 기업, 아이아이 컴바인드와 손을 잡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압구정로에 자리한 어티슈(ATiiSSU)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2025)는 현대 건축의 대표 재료인 철, 그중에서도 기성품인 I형강을 그대로 사용하여 공간을 구축했다. 그러나 구축 방식에 차이를 두어 뻔하지 않은 결과물을 도출한다. 철제 구조물은 보편적으로 수직 기둥과 수평 보로 구성된 가구식 구조를 따르지만 여기서는 벽돌처럼 쌓아 올리는 조적식 구조를 사용했다. 익숙한 재료에서 새로운 감각을 이끌어내는 방식. 즉, 낯섦을 느끼게 하는 특징은 어티슈 뿐만 아니라 아이아이 컴바인드가 전개하는 브랜드를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어티슈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 / 사진 : 신효근 ( @_hyogeun_ )

성수동의 탬버린즈(TAMBURINS) 플래그십 스토어(2023)에서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 지금까지의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는 외피를 철거하는 동안 덧댈 디자인 요소를 미리 제작하여 철거 완료 후에 바로 붙였다면, 탬버린즈에서는 철거만 진행했다. 성수동, 특히 연무장길은 명품브랜드가 곳곳에 둥지를 틔우고 팝업 스토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라진다. 원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에 더해 끊임없이 늘어나는 유동인구에 비례하여 치솟는 임대료에 대응할 방법은 최소한의 제스처로 빠르게 입점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뿐일 테다. 골조만 남기고 나머지는 철거하며 지하층만 리모델링하여 사용하는 방식은 석 달을 넘기지 않은 공사 기간 덕에 자재값과 인건비를 아낄 수 있었다. 동시에 상업 건물의 면적은 임대료와 직결되기 때문에 정해진 용적률 안에서 최대 면적을 확보해야 하는 상업 건축의 규칙을 교묘히 비껴간다. 기존의 틀을 깨는 신선함이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과 건축계에서 끊임없이 회자된다. 결국 브랜드 홍보에도 효과적이다.

탬버린즈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 사진 : 신효근 ( @_hyogeun_ )

이처럼 더 시스템 랩은 단순한 구축의 효율성을 넘어서 시각적 낯섦과 정서적 이미지까지 구축하기에 이른다. 기술과 감성, 제작과 정체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건축은 제품으로서, 상품화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며 시대의 속도에 건축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건축 : 건축사사무소 더_시스템 랩

사진, 글 : 신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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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찬중, 김상호. (2010). 월간 SPACE (공간). 508호. p.53

(2) 김찬중은 카림 라디쉬의 디지털 공예를 언급하며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면 궁극의 시스템이 될 것이라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김찬중, 김상호. (2010). 월간 SPACE (공간). 508호. p.58] 참고

(3) 유걸, 국형걸, 김찬중. (2016). 월간 SPACE (공간). 585호. p.27

(4) 더 시스템 랩 홈페이지 내 MCM 프로젝트 설명글, https://www.thesystemlab.com/work/mcm-shinsa

(5) 유걸, 국형걸, 김찬중. (2016). 월간 SPACE (공간). 585호. p.27

(6) 김찬중, 김상호. (2010). 월간 SPACE (공간). 508호.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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