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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건축가 김수근 작품 톺아보기

by hyogeun

건축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마음은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우리는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집, 골목, 광장, 하물며 허허벌판에 서 있을 때도 말이죠. 함께하는 친구, 연인, 가족에게 영향을 받는 우리가 무형의 공간에 영향을 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죠.


우리는 벽의 유무와 상관없이 물질로 둘러싼 '공간'에서 상호작용 합니다. 그래서 건축가는 도면을 그리면서 생각하죠. 복도의 폭, 그 높이, 어디에 창을 뜷어 어떻게 빛을 들일지, 외관은 어떻게 디자인하여 거리의 모습을 가꿀지 말이죠.


유토피아를 꿈꿨던 건축가, 김수근


김수근은 한국의 1세대 현대 건축가입니다. 대표 건축물로(설계 연도 기준) 여의도 자유센터(1963), 부여박물관(1965), 세운상가(1966), 세계박람회 엑스포 한국관(1968), 올림픽 주경기장(1976) 등 전후 한국의 대표적 상징물을 설계하며 국가 건축가로 부상했습니다. 이 밖에도 공간 사옥(1971), 남영동 대공분실(1976), 강원어린이회관(1979), 경동교회(1980)를 선보이며 한국 건축계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미쳤죠. 그의 작품을 직접 경험해 본 저로서 그는 유독 건축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때론 통제하며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손으로 유토피아를 탄생시키려 했던 것이지요.


그의 손이 과감했던 건, 그가 활발히 활동할 당시의 한국이 무질서해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의 한국은 한국 전쟁이 끝나고 재건과 부흥 등 급격한 변화의 과정이었고, 그 변화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만들어 놓은 가로망의 이중구조 위에서 진행되었죠. 유기적으로 뻗은 나뭇가지 형태인 한성의 도시 구조에 덧입혀진 격자형의 도시 구조는 올곧은 외국의 도시와 달랐습니다(1). 어려서부터 조선, 해방된 한국, 만주, 일본 등 다른 세계를 일찍이 접해왔고, 도쿄 예술대학 건축학과에서 공부한 그의 눈에 한국은 새로운 질서가 필요해 보였을지도 모르죠(2).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다 - 여의도 개발계획, 목동 신시가지 개발 계획, 세운상가


건축가는 도시계획에도 참여합니다. 특히 김수근 건축가가 활발히 활동하던 1960년대 당시 한국에서는 도시계획가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서 건축가, 공무원, 기술자, 교수들이 협력해 도시계획을 설계하곤 했습니다. 당시 김수근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이었고, 그때 '김수근 팀'을 이뤄 도시 설계를 진행했습니다(3).


여의도 개발 계획(1969)은 '서울의 맨해튼'을 꿈꾸며 지상에 차도를 두고 2층에 보행자 전용 인공 대지를 두어 보차분리를 실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서울의 재정 상태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계획(4)"으로 2차 여의도 개발 계획에서는 김수근 팀의 블록 계획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인공 대지를 없애고 5.16 광장을 새로 설치한 현재의 여의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5).


목동 신시가지 개발 계획(1980)에서는 첫 도시 계획 때보다 경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공원을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를 상업 단지와 공공시설이 채우는 두 개의 선형 구조가 오목공원에서 만납니다. 그 구조를 일방통행 4차선 도로가 감싸고 그 밖으로 다시 주거 단지가 감싸죠. 차량 통행이 원활하고, 보행자는 쉽게 공원에 접근할 수 있죠. 걷기 좋은 도시를 실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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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1968)에서는 종로 3가(종묘 앞)부터 남산 입구까지 이르는 길이 1km, 폭 45m, 지상 7층 규모인 '메가 스트럭처(mega structure)'를 도입하여 서울의 주요 축인 동서축에 이를 관통하는 남북축을 추가하여 도시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했죠.

좌 - 2층에서 바라본 세운상가, 우 - 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주변, 낮은 건물에 거대한 메가스트럭처는 도시의 단절을 초래했다 / 사진 : 신효근


마음을 움직이게 하다 - 경동교회, 강원어린이회관(현 KT&G 상상마당 춘천)


좀 더 미시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물'을 살펴볼까요. 도시는 자동차, 사람, 주거, 상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확히 통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대지 위에 벽으로 둘러싸여 공간을 구획합니다. 그 안은 다시 벽과 바닥으로 공간을 세분화하지요. 즉 건축가가 더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환경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경동교회

경동교회는 폐쇄적입니다. 문과 창 몇 개가 전부인 1층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개구부가 없어 교회로 보이지 않죠. 자연스레 건물 앞마당으로 들어갈 용기가 생깁니다. 건물과 담장은 같은 붉은 벽돌로 둘러싸여 위요감도 있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없기 때문이지요. 자연스레 마당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폭이 넓은 계단을 오르고, 벽에 붙여진 모자이크 타일을 감상하며 건물의 용도를 짐작합니다. 그러나 본당 입구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건물의 비대칭은 보이지 않고 좌우대칭의 건물이 사람들을 압도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서기 전, 옷매무새를 다듬으라 말하는 것 같죠.


본당은 벽돌로 마감된 외부와 달리, 노출 콘크리트로 장엄함을 극대화합니다. 대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드러나는 구조는 기둥, 보가 일체화되어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이것이 반복되어 공간에 리듬을 부여합니다. 천장 곳곳, 십자가 위에 뚫린 작고 큰 개구부에서만 빛이 들어와 사람들은 십자가에 집중하게 되며, 자연스레 종교인은 그들의 믿음을, 일반인은 자신을 성찰하죠.

경동교회의 전경, 외부 동선, 본당 / 사진 : 신효근

강원어린이회관

강원어린이회관은 현재 KT&G 상상마당 춘천으로 사용됩니다. 건물 외벽에 붙은 머릿돌에 '1980년 5월 5일'로 새겨진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어린이를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오돌토돌하게 쌓인 붉은 벽돌이 공간을 감싸고 얇고 긴 창문, 지붕과 벽 사이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주황 조명과 만나 내부를 은은하게 비추죠. 그래서 높은 로비는 동굴 같기도 하고, 일정 간격 요철을 반복하는 벽돌 장식 때문에 고대 유적지 같기도 합니다. 건물에 비해 넓은 로비, 완만한 경사로, 곳곳에 마련된 작고 폐쇄적인 공간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경사로를 따라 경주하고, 때론 숨바꼭질하며 아이들 스스로 공간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죠.


'어린이는 바로 노는 사람이라는 개념이고, 이런 어린이의 본질을 세련시킬 문화적 공간으로서 건축물의 개념을 살렸지요(6)' 라고 김수근 건축가는 말했습니다. 그 의도가 형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야외무대 뒤 언덕을 오르면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죠. 외곽으로 갈수록 낮고 작아지는 건물 위로 이형의 박공지붕 또한 면적이 좁아져 비행기의 날개처럼 보입니다. 둔탁한 건물만큼 두꺼운 지붕은 건물을 완전히 덮지 않죠.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가 의암호를 향해 비상할 것만 같습니다.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처럼 말이죠.

강원어린이회관(현 KT&G 상상마당 춘천)

유토피아는 곧 디스토피아 - 여의도 개발 계획, 세운상가, 남영동 대공분실


건축가의 야망이 꼭 좋게 작동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여의도는 정갈한 격자형으로 구획된 광대한 블록에 행정, 금융 기능 위주로만 계획되고 주거, 상업, 문화 기능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사람이 없는 '죽은 도시'로 변하죠.


세운 상가는 한국에 유일한 주상 복합 건축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만, 주변 건물에 비해 비약적으로 거대해서 도리어 남북을 가르는 벽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음지가 많아 도시의 경관을 저해합니다. 1층부터 4층까지는 각종 전자제품 상점이 즐비해 있는데, 용산 전자상가, 강남으로 상권이 몰리면서 이마저도 매력을 잃게 되죠.


건축가는 과연 자신의 손길이 때로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지 알았을까요? 이건 김수근 건축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건축가는 언제나 미래를 상상합니다. 그러나 건물이 완공되는 순간, 그 상상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 되기도 하죠. 김수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그러나 남영동 대공분실(7)은 유토피아적 통제가 디스토피아적 억압으로 작동하는 순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간첩 조사라는 명분 아래 설계된 이곳은 1976년 착공하여 1983년 2개 층을 증축한 7층 건물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곳이 간첩 조사실이 아니라 '00 해양연구소'로 위장하여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연행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 인권 유린의 현장(8)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완벽한 범죄를 위해 건물도 가담했습니다. 정문에서 보이지 않는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출입구로 피해자가 연행됩니다. 문 바로 옆 나선형 계단은 5층 조사실로만 이어지죠. 머리에 두건을 쓴 채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피해자는 자신이 몇 층으로 오르는지 모를뿐더러 철제 계단 한 단 한 단을 내디딜 때마다 울려 퍼지는 발소리가 피해자를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피해자의 비명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성인 남성의 얼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5층 취조실만 좁고 긴 창문을 설치하고, 건너편 방에서 고문 상황을 보지 못하도록 각 실의 방문을 엇갈려 설치하는 등 고문에 최적화된 건물을 만들었죠.


김수근이 고문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고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9),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자를 숨기고, 건물을 이루는 요소들을 세심히 건드려 사람의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의 건축을 통해 건축이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음을, 그것은 한 끗 차이일 뿐이며, 한편으론 인간의 선과 악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M2로 개관한 남영동 대공분실 / 사진 : 신효근

패놉티콘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고 떠오른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제안한 패놉티콘(Panopicon)입니다.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인 감옥 건축양식입니다(10).


중앙에는 원형의 감시탑이 있고 감옥 둘레에 원형의 수용시설이 배치됩니다. 수용실의 문은 내부가 들여다보이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감시탑에서는 모든 수용실을 관찰할 수 있죠. 반대로 수용자들은 감시자를 볼 수 없습니다. 감시탑의 유리를 코팅하면 내부가 보이지 않아 감시자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벤담은 공리주의자로서 최소한의 비용, 최소한의 감시로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패놉티콘의 개념을 군대, 병원, 수용소, 학교, 공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죠.

제레미 벤담의 패놉티콘 / The works of Jeremy Bentham vol. IV, 172-3

건축은 결국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의 삶을 이룹니다. 무심코 걷는 거리, 앉는 의자, 바라보는 창의 크기조차도 누군가의 손끝에서 고안된 것이지요. 김수근은 그 손끝으로 새로운 시대, 질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의 건축이 시대와 열망, 공포, 희망과 억압이 뒤섞인 한국 현대사를 투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한국의 1세대 건축가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그는 작고했지만, 아직 그를 비롯하여 수많은 건축가가 만든 건물은 여전히 도시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곳에서 생활하죠. 익숙한 공간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건축이 인간을 바꾼다면, 우리는 어떤 공간 속에 살고 싶은가요?




(표지 사진) 김수근 문화재단, http://kimswoogeun.org/biography

(1) 이상헌, 서울 어바니즘, 공간서가, 2022, p.31 , p.150

(2) 장정제, 좋아하는 건축가 한 명쯤, 지식의 숲, 2024

(3) https://www.arko.or.kr/pavilion/18pavilion/ko/kecc.html

(4)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6권, 한울, 2003

(5) 이상헌, 같은 책, p.162

(6) 경향신문, 1980년 7월 11일

(7) 현재는 리모델링을 거쳐 민주화운동기념관의 M2 전시장으로 사용 중이다. 민주화운동기념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링크 참고. https://brunch.co.kr/@edea70f9fafe43b/267

(8) 민주화운동기념관 M2 1층과 2층 전시 설명 글 참고.

(9)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080517.html

(10) https://ko.wikipedia.org/wiki/%ED%8C%A8%EB%86%89%ED%8B%B0%EC%B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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