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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滅의 材料 불멸의 재료”

주한 스위스 대사관

by hyogeun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저마다 다른 향이 나고, 매끄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칠지도 않은 표면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여기에 간간이 나이테가 보이면 그것의 세월을 유추해보는 재미도 있다. 같은 나무라도 계절에 따라 표현되는 색이 다르고 잘린 방향에 따라 면에서 보이는 결이 다르니, 형태는 같아도 완전히 똑같은 패턴을 가진 것이 없다. 그래서 목재를 사용한 가구, 건축물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목재가 다른 재료와 만나면 해당 재료의 단점을 상쇄시키면서, 재료에 따라 다른 분위를 연출하기도 한다. 콘크리트는 묵직하고 단단해 차갑지만, 나무의 따뜻함과 만나면 차가운 이미지는 사라지고 편안함만 남는다. 세련되지만 날카로워 나를 위협하는 금속과 만나면, 나무는 금속의 날카로운 부분을 가려주고 이것의 세련미는 극대화한다. 유리는 자신을 숨기고 남을 비춰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다 보여주니, 보는 이를 지루하게 한다. 이는 나무와 만나 패턴을 만들고 리듬을 부여해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은 가려주어 사람들이 안과 밖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앞에서 설명한 목재 자체가 뿜어내는 분위기, 다른 재료와 만나 만들어내는 또 다른 분위기를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여러 작은 각재를 붙여 가공한 기둥과 보와 창틀이지만, 서로 다른 무늬와 조금씩 다른 채도를 가진 나무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공간의 분위기, 향, 햇빛에 비춰 보이는 나뭇결이 공간을 풍성하게 채운다. 여기에 콘크리트, 유리, 금속, 석재 등. 다양한 재료와 목재가 만나 이루어내는 디테일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은 목조 건축물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나무'를 사용해 공간을 만들어왔다. 돌로 다진 기초 위에 수직 부재인 나무 기둥을 얹고, 그 위에 수평 부재인 나무 보를 놓아 지붕을 지탱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우리의 고유한 특징이었고, 동양 건축이 가진 멋과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쉽게 썩고 쉽게 타 없어진다는 단점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영원함을 상징하는 콘크리트가 그것을 대체하였고, 우리 삶을 채우기 시작했으며, 반대로 나무는 치장용으로 그 위치가 전락했다. 안타깝게도 그 위치에서까지 많은 오남용으로 인해, 목재만이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은 무시되고 테라스 데크용으로, 펜션에 값싸게 쓰이는 재료로 치부되어 버림받기 일쑤였다.


그렇게 찬밥신세를 지고 우리나라에서 목재를 주 재료로 사용하여,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물이 사라지고 있을 때쯤, 이곳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물론 모든 곳이 나무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상당 부분이 목재로 구성되어, 콘크리트 박스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인상을 가지며,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쉽게 타고 쉽게 썩는 치명적인 단점이 여기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다. 사실 콘크리트를 불멸의 재료로 영원함을 상징한다고들 믿지만, 부서지면 그것의 가치는 없는 것만도 못하다. 나무는 썩은 부분만 도려내어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기에, 그것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진짜 불멸의 공간이지 않을까.


지구상에 나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대지에 남아 굳건히 자리를 지킬 이곳은 '주한 스위스 대사관'이다.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서울 종로구 송월길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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