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뱀 - 구마겐고
[한국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을 비교하면 그 배후에 깃들어 있는 세상에 대한 자세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자연 그 자체를 섬세하게 만들기 위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깎고 다듬어 동그랗게 만든다. 그러나 한국의 정원에서는 일본 방식의 그런 조작이 지나치게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자연을 거친 상태 그대로 방치한다. 과거에는 한국의 정원을 보면 그 거친 모습에 “이게 정원인가?” 하는 저항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반대로 그런 한국 방식에 흥미가 느껴진다.
안양의 프로젝트에서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방법론으로 혹독한 자연에의 대응을 시도했다. 우리 팀은 우선 한국의 한지로 둘러싸는 듯한 스크린을 만들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찾았다. 다양한 재료의 가능성을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한지로 만든 벌집 구조를 중심으로 잡고 그것을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감싸는 현대판 한국 장지문이었다.
평행과 직각을 주시하면서 질서 정연 하게 합리적으로 조립하면 강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20세기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나 안양에서는 전혀 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두 장의 벽을 평행이 아닌 비스듬한 형태로 세우는 방식을 이용해 오히려 강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난잡한 것, 이지러진 것, 처음부터 무너진 느낌이 드는 것이 오히려 강하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지나치게 질서 정연하게 갖추어진 것, 지나치게 안정감이 드는 것에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연약함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직감도 꽤 가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벽이나 천장의 평행을 무너뜨리자 더욱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평행, 직각에 얽매여 있으면 형태가 완결되고 닫혀버린다. 하지만 평행과 직각을 무너뜨리자 완결될 수 없는 무한대의 형태가 발생하고 자동으로 형태가 열리면서 건축물이 숲 속으로 끝없이 뻗어나갔다. 상자였던 것이 활짝 개방되어 숲 속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즉 건축물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벽이 천장과 연결되고, 그것이 바닥과 연결되면서 나선형 운동이 시작되어 멈추지 않았다. 마치 뱀 같았다. 뱀처럼 꿈틀꿈틀 회전하면서 숲 속으로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이 파빌리온을 '종이 뱀'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인들은 피크닉을 좋아한다. 일본의 정원처럼 만들어진 자연을 걷는 것보다는 자연의 숲 속을 걷는 것을 즐긴다. 이 차이는, 앞에서 설명한 한국인의 세계관과 자연관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안양까지 숲 속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는데, 상당히 먼 거리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걷는다. 그 코스 종점에서 종이 뱀이 산길을 걷는 데 지친 사람들을 맞이한다. 생생하고 거친 한국의 자연과 부드러운 인간 사이에 게재하는 종이 뱀. 여기에는 일본과 전혀 다른,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존재한다. 일본 방식의 , 정리되어 고즈넉한 자연에는 움직이지 않는 얌전한 ‘다실’이라는 ‘작은 건축’이 어울리고 한국의, 행동하는 늠름한 사람들에게는 나선 모양으로 끝없이 뻗어가는 ‘걷는 건축’이 어울린다.] - 구마 겐고, '작은 건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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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는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일본 건축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데, 일본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특징이 그의 건축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여기에 신재료의 사용이 더해져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공간을 만들어내니 공간의 크기가 작든 크든 간에 그의 작품을 전부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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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대지진으로 인한 극심한 피해가 일본 건축가들의 건축 흐름을 바꿔놓았다. 그 중 대표되는 사람이 바로 '구마 겐고'다. 그는 의미 없이 치장되고 멋있어 보이며 사람들을 압도하는 큰 건축이 아닌, 스스로 자생하고 주민들이 협력해 '함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건축'을 중심으로 공간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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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용 폴리에틸렌 탱크(우리가 흔히 보는 천 간판을 지탱하기 위해 바닥에 물을 채워 넣는 플라스틱 탱크 통)에 영향을 받아 이것을 모듈화해 공간을 만들고 블럭 사이로 물이 순환하며 자생하는 공간, 세 개의 나무 막대를 엮어 구조체를 만들고 후에 유지 보수가 가능하게 한 '밀라노의 지도리 파빌리온', 그리고 이를 발전 시켜 만든 'GC박물관(아이친 현 가스가이 시)', 이를 형태적으로 다시 발전시킨 '다자이후 스타벅스' 외관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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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에 대한 탐구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재료의 발명, 그리고 이것들의 조화가 만들어낸 작품. 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종이 뱀'이었고, 이 파빌리온 또한 추가적인 장식과 구조 없이 서로 의존하며 지탱하여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작은 건축', 스스로 독립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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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상당수가 중국, 일본에 있고, 아쉽게도 한국에는 '종이 뱀' 이것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 하나에 그의 제스처와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분석하며 나온 '걷는 건축'으로 우리는 맞이하는 방식은 '파빌리온'임에도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넘쳐흘러 공간의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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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파빌리온을 중심으로 안양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보물을 찾는 여정을 시작으로 그 끝에 자리한 '종이 뱀'을 보며 휴식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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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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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