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
밖과 대비되는 전시장 복도를 걸어가면 미디어 작품이 어두컴컴한 복도를 비춘다. 물인지, 아니면 안개인지 구분되지 않는 흑과 백의 대비로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몽환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 흙과 편백, 계피를 섞어 발라 안정된 향을 풍기는 붉은 벽은 기울어져 있다. 그 벽을 타고, 미세하게 높아지는 바닥을 타고, 무수히 많은 별을 연상시키는 2만여 개의 봉이 달린 천장을 타고. 그것들을 타고 수렴하는 시선의 끝에는 우리의 국보 반가사유상이 자리한다.
가부좌를 풀 것인지, 아니면 가부좌를 틀어 명상에 잠길 것인지 알 수 없는 움직임.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다 그 끝에 도달하여 비로소 깨달음을 얻어 얻게 된 잔잔한 미소가 얼굴에 새겨질 때. 그렇게 생긴 몸짓과 표정은 그야말로 하나의 단편 영화다. 멈추어진 동작에 우리는 그것을 멈춰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명상에 잠길 것 같은 동작에 숨소리조차 내쉬면 안 될 듯 눈치를 보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깨달음을 생생하게 들려줄 것처럼 선한 미소가 우리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울어진 벽과 미세하게 높아지는 바닥과 작품으로 수렴하는 천장과 두 상을 받치는 원형 전시대가 만들어낸 비정형 공간은 현대에 들어와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덧없음을 일깨워준다.
강박에 벗어난 사람들은 시선에 걸리는 선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어느 방향에서도 반가사유상을 감상할 수 있다. 위치에 따라 변하는 두 상의 모습과 원근감을 가지며 작아지는 다른 상과의 관계를 보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두 상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심취하기도 하며, 가까이 다가가 표정, 몸짓, 금방이라도 휘날릴 것 같은 옷깃을 바라보며 그 디테일에 놀라기도 한다. 전시대로 수렴하는 모든 것이 그곳에 시선을 머무르게 하지만, 수평, 수직하지 않는 모든 것이 사람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한다. 두 상이 가진 움직임을 공간이 관람객에게 그대로 부여하고 있다.
그렇게 이리저리 사유하며 돌아다니다 저마다의 생각 끝에 도달한 깨달음을 가지고, 관람객은 이곳의 경험을 마치며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꽤 넓은 공간에 오롯이 두 작품만을 전시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용기와 도전이 대단하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도 한 전시장에 오롯이 모나리자 한 작품만 전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실 전체를 우리의 국보 반가사유상을 위한 공간으로 할애했고, 더 나아가 뻔한 전시장이 아닌, 입구부터 출구까지 탄탄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 작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설명글은 최대한 배제하여 고리타분한 전시장이 아닌 '사유의 방' 그 자체로서 작품과 하나 되는 방을 만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했다. 직접 경험하고 직접 느껴보아야 이곳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모든 공간이 백번 글로 읽는 것보다 한번 보고 경험하는 게 백배 낮다. 특히나 이곳은 글로써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백번 읽어본들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여러분도 얼른 가서 이곳을 경험하길 바란다.
* 공간은 사진보다 어둡습니다.
* 사유의 방을 온전히 혼자서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박물관 개장과 동시에, 상설전시관 2층 사유의 방으로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매일 10:00 - 18:00 (수요일과 토요일은 21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