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눅 앞산
“우리는 너무 쉽게 허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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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재개발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보았을 때,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마음 속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을 함께한 공간과 장소가 없어지는 상황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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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노후화된 건물을 보수하거나 필요에 따라서 허무는 행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허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파트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공간 비중이 한 층의 일부분밖에 되지 않아서일까요. 그래서 정이 들지 않아 쉽게 허물고 쉽게 짓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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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탐험가가 고대 유적지를 발견했을때, 모두가 환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적지 발견을 열광하는 이유는 건축이, 특히 주거 공간이 그 시대의 상황을 파악하기에 적확한 자료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생활 방식부터 문화까지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기에 그들이 그렇게 환호하고 좋아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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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과연 후손들에게 우리의 삶과 문화를 보여줄 무언가가 남아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아파트는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시간을 머금은 공간과 동네는 고장 난 물건으로 취급해 부수며, 끝내 ’경축’이라는 단어로 저런 상황을 축하하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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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가구는 웃돈을 주고 사면서, 흉내 내면 더 조악해지는 오리지널 공간은 왜 안일하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과 사용자가 만들어낸 삶을 담은 공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에, 아무렇지 않게 허무는 행위가 과연 옳은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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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이 최선의 선택이라면 그대로 진행하는 게 맞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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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된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아눅 앞산’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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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지만 그대로 남겨둔 가파른 계단, 지금 당장이라도 연기가 나올 듯한 굴뚝, 페인트가 벗겨지고 일부분 금이 간 벽. 이 모든 것들이 40년간 두껍게 쌓인 세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자연스레 녹이 스는 재료를 사용해 앞으로 쌓일 시간을 기록하게 했으며, 그 당시에 없었던 옆 건물 기와지붕을 풍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창문을 뚫는 등, 현대인의 섬세함도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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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며, 낡고 오래된 공간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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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주택은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만, 우리 삶과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그런 소중한 그릇을 깨트리기 전에, 이 공간을 방문하셔서 다시 한번 신중하게 그것을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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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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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구 앞산순환로 459
매일 10:00 -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