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TVI
한국 전통 건축에서 자연 경치를 감상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빌릴 차(借)'에 '경치 경(景)'을 쓰는 '차경'과 '마당 장(場)'에 '경치 경(景)'을 쓰는 '장경'이 그것이다. 경치를 빌리는 차경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좋은 경치가 있는 부분으로 창을 뚫고 감상한다. 마당에 있는 자연과 관계가 깊기 때문에, 주인공은 집안에서 풍경을 감상하다 작품으로 들어가 풍경과 하나 될 수 있다. 하지만 마당의 경치로 해석되는 '장경'은 주인공이 작품에 개입할 수 없다. 마당의 경치이니 당연히 차경과 동일하게 관객이 풍경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 마당은 장이며 무대다. 마당에서 각종 행사가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 관객은 오롯이 관람석에서 무대를 감상만 해야 한다. 따라서 차경은 마당에 있는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지만, 장경은 사람들이 개입할 수 없는 마당 뒤에 있는 자연, 산, 바다, 하늘을 무대 삼아 경치를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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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공간은 장경을 잘 활용한 '그릿비'다. 건물의 형태는 두껍고 육중하며 어긋난 높이가 수평선을 깨고 있다. 효율적이지 않은 두 개의 삼각형 매스가 만나 마름모를 만들어내는 평면은 내부에서 예상치 못한 동선과 공간을 만들어낸다. 삼각형의 선을 따라 진행하는 동선과 그 일부가 외부 공간으로 바뀌는가 하면, 꼭짓점에서 확장되는 공간의 끝에는 갑작스레 펼쳐지는 바다가 공연의 클라이맥스를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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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카운터에서도 메뉴를 고르며 푸른 바다가 펼쳐진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지만, 그 경험은 2층만 못하다. 들어오는 빛이 2층 내부보다 너무 강한 것도 있겠고, 앉아있는 좌석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는 바다를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고 내부를 디자인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말할 수 있겠다. 2층의 메인 공간은 공연장 같다. 바다를 무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게 디자인한 관람석,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을 것같이 뚫린 벽 구멍이 영화관 내지 공연장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기존의 경험이 중첩되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영화나 연극을 감상하듯 관람석에 앉아서 바다를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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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무대 삼아 경치를 감상하는 기법에 더해 메인 공간으로 향하는 동선을 일부러 늘어뜨리고 시선은 일부 차단해, 똑같은 바다일지언정 이런 과정을 거쳐 보게 된 그 모습은 새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보이고 경험은 더 풍성해져 똑같은 바다임에도 좋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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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과 장경은 풍경을 감상하는 데 있어 차이가 있지만, 자연의 경치를 빌리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빌린다는 것은 남의 것을 가져다 사용하고 그대로 돌려준다는 의미이기에,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선조들의 가치관이 잘 묻어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곳 또한 바다를 정복의 대상이 아닌, 빌려서 가져다 쓰는 것으로 여기고 바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부 공간을 디자인했기에 '그릿비'는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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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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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해안1길 4
매일 10:00 -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