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건축 스케치전(SOUL SCAPE)
"우리는 선 하나를 긋더라도 신중해야 해요"
설계 스튜디오 크리틱 중,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 선은 공간의 경계를 짓는 선일 수도 있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는 선일 수도 있다. 선의 용도가 어떻든, 나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건축가에게 '선'이라는 것은 오롯이 자신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담장의 선을 긋든, 벽의 선을 긋든, 하물며 손잡이의 선을 긋든, 모든 과정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불편해하지 않을지, 답답해하지 않을지, 이게 맞는지, 더 좋은 대안은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를 절벽까지 몰아세우며 그런 순간에도 '이게 옳아'라는 확신이 들 때, 선을 그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디지털로 표현된 도면에는 건축가가 얼마나 공간에 대해 고민했는지 알기 어렵다. 그나마 평면도를 보며 '공간 배치를 잘했네', '도면이 깔끔하네'라고 평가하며 그 사람의 건축 수준을 가늠하지만, 그게 운인지, 아니면 많은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건축 드로잉, 스케치는 건축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번 '승효상 건축 스케치전'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건축학과 수업에 건축 드로잉이라는 수업이 있다. 건축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과목이다. 도면부터 건물의 외형, 내부 인테리어, 가구까지. 눈에 보이는 것과 자기 생각을 스케치로 표현하는 방식을 배운다. 먼저 연필을 손에 쥐고 가로 세로로 직선을 긋는 연습부터 한다. 그다음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선을 그리는 연습, 선만 사용해 면에 패턴을 입히거나 물체에 음영을 주는 연습까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순차적으로 배우고 연습한다. 특히 직선을 긋는 연습은 다른 과정보다 아주 많이,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건축에서 수직 수평은 너무 중요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올곧게 그려진 도면과 건물의 형태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그것들을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 드로잉에서는 미술 회화와 달리, 덧그려서도 안 되며 색칠하듯 음영을 넣는 것도 안된다.
하지만 승효상 건축가의 스케치는 달랐다. 중간중간 끊어져 있는 선이며 올곧지 않은 직선은 불안하고 두려워 보였다. 그리고 공간에 음영을 넣는 방식은 자신의 그림을 부정하는 듯했다. 이미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반열에 오르신 분이, 많은 작품을 남기고 많은 건물을 그려낸 그런 분이, 스케치는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가 집필한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소수적 의견이 다수의 관습과 규례를 벗어나기에 항상 불안한 것이다. 그렇지만 건축가라면 그래야 마땅하지 않을까? 더구나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설계를 부탁하는 이들에게 관습과 규례로만 설계된 도면을 주는 것은 건축가의 직능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또한 내가 설계한 집에서 살게되는 이들이 혹시 설계가 잘못되어 잘못된 삶을 살면 어떻게 하나 초조하고 불안하여,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 지우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 승효상의 '묵상' 중에서
소수가 되어, 집이나 고향에서 비난받더라도 자신을 밖으로 추방하여, 광야에 홀러 선 채 세상을 직시하는, 성찰적 삶을 지켜내려 노력한 그의 모습이 스케치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게 맞는지, 최선의 선택인지 계속 질문하며 그 질문에 표현된 불안에 떤 선은 '이게 옳아'라는 확신이 들 때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불안 속 마무리된 공간이 정말 옳은 행위였는가를 다시 한번 질문하며 그림자를 새겨 넣었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부정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겠다.
많은 책과 수업에서 드로잉은 올곧으며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그림들은 이미 지어지고 이미 완성된 물체를 잘 그리기 위한 방법을 설명해 줄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로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 스케치전이 우리에게 옳은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전시는 3월 12일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95-3 갤러리 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