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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델 Jul 24. 2021

엄마, 아빠 호칭 사용 자제 권고한 미 사립학교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10312/105848672/1


해당 기사를 보고 나서 든 단상. 문뜩 떠오르는 책이 있어 권미원, 『장소특정적미술』, 2013(원제 One place after another, 2002)을 살펴봤다. 어렸을 적 미국으로 이민, 이후 미술사 분야에서 활동하며 장소특정성을 포함한 일군의 경향들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며 해당 분야에서 중요한 미술사가로 알려진 분이다.




서지정보를 넘기고 서두에 들어가기 전 독자는 한국인이 아니면 알아보기 쉽지 않은 영어단어를 읽게 된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그것이 하나의 정체성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단어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의 부재로 읽혔다. 책의 최초 출간이 2002년으로 기억하고 저자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가 처음 미국에 이민 갔던 것은 70-80년대일 확률이 높으니 이런 경험은 비단 그녀의 경험이 아닌 비슷한 시기 미국 이민을 떠난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경험이었으리라.


물론 역사적 진실은 이러한 감상과는 배치되는듯 했다. 국가기록원에 홈페이지에 적힌 〈재외한인의 역사〉에 따르면 1965년 이민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의 발효 이후 한인 이주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65년의 이민법은 미국의 인구구성을 오늘날과 같은 다인종 국가로 변모시킨 중요한 법이다. 이 법의 주요 골자 중 하나는 할당 이민 제한법의 폐지에 있었는데 이로 인해 이민자의 백인 쿼터가 줄고 아시아, 중남미계 이민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이 법으로 생긴 가족 초청 제도가 비유럽계 이민자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다고 한다. 


법의 제정 이후 한인의 미주 이민은 크게 늘어 1970-80년대에 연간 3만 명이 이민을 갔다. 이 시기 한국은 멕시코, 필리핀과 함께 3대 이민국 중 하나였는데 과거 주로 블루칼라 이민자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대도시 생활을 경험한 화이트칼라 이민자들이 대거 미국에 유입되었다는 것이 이 시기 이민자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층 성분은 자연스럽게 이민 2세대들의 사회 계층 상승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책 출간 당시 UCLA의 교수이자 한국어판 번역자들의 제자이기도 했던 권미원 선생 사회적 배경은 이러한 이민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2013년 한국에서 해당 책이 번역되었을 때 서문을 펼쳐보니 이 구절만큼은 저자의 의도에 맞게 번역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번역자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엄마와 아빠에게 바치는 저자의 헌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가 단지 동일한 '장소'나 근접한 위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 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론을 통해, 그리고 실제를 통해, 부재와 거리, 단절에 기반을 둔 새로운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p.281



c.f) 국가기록원의 홈페이지는 1965년 이민법이 한국 이민사의 중대한 사건임을 언급하지만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미국 이민법의 양면성과 그것에 대한 역사적 비판을 담은 글이었는데 제반 지식의 부족한 상태에서는 꽤 흥미로웠지만 이것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내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었다. 글의 결론부만 인용하여 덧붙여둔다.


1965년 개정 이민법 통과로 지적받고 있는 ‘의도하지 않았던 개혁’의 중대한 문제점은 이민 개혁안을 찬성하고 주도하였던 어떤 의원도 문화 다원주의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고, 추후 도래할 미국 다문화주의에 대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1965년 개정 이민법의 가족 초청 이민의 조항이 멕시코와 아시아 이민자들의 증가로 이어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하였다. 1965년 개정 이민법은 유럽 이외의 지역에 공평한 쿼터를 부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며, 이미 미국 내에서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법안을 상정하고 주도하였던 의원들은 이러한 변화에 다양한 가능성을 상정하고 이에 따른 대비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록에 기록되어 있는 그 어떠한 의원도 미국이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발전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았으며, 동화주의와는 대비되는 다원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다.


임현식, 「케네디 동화주의의 양면성과 1965년 개정이민법의 한계」, 『이주사학회』 15, 2016, pp. 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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