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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델 Jul 16. 2021

비잔틴제국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 1455~1460, 패널에 유채, 팔라초 두칼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5 - 1492)는 르네상스기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주로 종교와 관련된 제단화를 많이 제작했고 아레초와 우르비노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위의 그림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는 예수가 로마의 총독에게 심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우르비노에서 제작되었다. 이 그림은 수많은 미술사학자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는데 그것은 그림 속 장면이 전형적인 그리스도 성화의 도상을 따르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20세기 중반부터 많은 학자들이 그림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는데 특히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에 착안하여 그림을 해석한 견해가 꽤 흥미롭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그림을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운데의 코린트식 기둥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흔히 묘사되는 그리스도의 수난 중 총독 앞에서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우측에는 알 수 없는 등장인물 3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마치 좌측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기존의 성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구도에 약간은 의구심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왜 성화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쪽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있는 것일까? 수상한 점은 또 있다. 바로 뒷모습으로 처리된 터번을 두르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의 어느 구절을 보아도 저러한 인물이 등장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구심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알면 단번에 풀리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의 그림은 비잔틴 멸망에 대한 상징화다. 


만약 비잔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박식한 사람이라면 위의 힌트를 보자마자 바로 위 그림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오른쪽의 세 사람은 각각 비잔틴, 기독교, 서방세계를 상징한다. 이는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자세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좌측의 인물이 입고 있는 의상은 비잔틴 제국의 의상이고 우측에 있는 인물은 서방세계에서 귀족들이 입는 복장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가운데는 크리스트교를 상징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자연스럽게 왼쪽의 인물들에게 시선을 가게 한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해서 봐야 할 인물은 바로 예수다. 그의 자세와 우측에 인물군에 있는 사람의 자세를 비교해보라. 똑같은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하고 있다. 즉, 가운데의 인물은 크리스트교, 더 정확하게 말하면 크리스트교를 믿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좌측의 인물군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더 타당성 있게 다가온다. 터번을 두르고 있는 사람이 예수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보았을 때 오스만튀르크의 공격에 박해받고 있는 크리스트교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해석을 했다면 좌측의 인물군과 우측의 인물군이 가지고 있는 연관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오른쪽의 인물군과 좌측의 인물군은 원근법적으로 보았을 때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절대로 기법상의 실수가 아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미술가이기도 하지만 수학 자였기도 했다는 것을 상기하자. 또 우측의 인물군에서 크리스트교를 상징하는 인물은 나머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는 듯 그저 공허하게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두 인물 간의 대화에 아직 참여하지 않았거나 "참여하지 못한 것"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그림의 백미는 그림 맨 좌측의 앉아있는 빌라도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연구들은 성경의 텍스트에서 빌라도였던 그림 속 인물이 당시의 정치, 사회적 관점을 도입하면 비잔틴 황제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그의 모습을 한번 보라. 힘없이 떨구어져 있는 손과 망연자실한듯한 그의 표정이 자신의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에는 이미 콘스탄티노플은 이슬람교도의 손에 떨어졌지만 이 그림은 단지 찬란했던 제국이 스러진 것에 대한 아쉬움만 가지고 그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 세력의 맹위에 대한 작가 자신의 두려움을 투영한 그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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