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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델 Jul 16. 2021

미술작품들에서 "깊이감"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하여


19세기 이전까지 화가들이 골몰하였던 문제들 중 하나는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와 큰 관련이 있었습니다. 특히 회화라는 영역에 들어서면 이 문제는 3차원의 대상을 어떻게 2차원의 표면에 담을 수 있을까라는 구체적 문제, 즉 깊이감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비록 대상의 재현이라는 문제가 모든 시대에 공통적인 제 1 과제는 아니었지만 그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려야 할 대상이 존재해야 하고 그것을 특정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이 중의 과제가 있기 때문에 깊이감을 어떻게 묘사할까라는 문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화가, 장인들이 겪었던 공통의 숙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동, 서양의 미술가들이 깊이감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했나를 바라보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원근법부터 직관적으로는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의식하기는 쉽지 않은 겹치기의 원리까지 원근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기존의 미술사에서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빈번하게언급되는 화가들은 당연 르네상스 화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본다는 것을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무엇을 모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넘어 합리적인 혹은 수학적인 체계 내에서 대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러한 생각의 연장으로 대상을 묘사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발명합니다. 이 때 화가들에게 넘어야할 과제 중 최우선의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깊이감의 표현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이 문제를 합리적 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각 장치의 발명으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대상이 가진 상징적 의미에 따라 크기를 변화시키는 중세 회화를 넘어 새로운 시각 체계를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나온것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각 체계인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지해야할 점은 르네상스 화가들만이 이러한 고민을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르네상스 이전에도 중세 화가들 심지어는 이집트의 장인들이나 구석기 시대의 이름 모를 벽화에도 깊이감을 표현하려는 여러 노력들이 드러납니다. 또한 비단 수학적 방법이 아니더라도 경험에 의해 혹은 여타 다른 환경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아 깊이감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래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방법들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죠.


1. 겹침의 원리


몇 명의 사람들이 나란히 있고 그것을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우리는 어떠한 다른 지식이 없이도 측면의 전부가 보이는 사람 그러니까 관찰자의 시점에서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보다 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뒤에 있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측면의 일부분만 보이게 될테니 관찰자보다 보다 더 멀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테고요. 미술 혹은 과학에 대한 별 다른 교육이 없어도 이런 점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식 가능한 원근 구별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림을 그렸던 많은 사람들은 일찍이 이러한 원리를 채택해 깊이감을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수풀 속의 새 사냥>, 기원전 1400-1350년경, 프레스코, 영국 박물관.


이 이집트 벽화는 사실성과 상징성의 결합이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새 사냥을 하고 있는 인물은 이 그림의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파라오입니다. 이집트 사회에서 파라오는 사회 최상층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림에서도 실제 크기와 상관없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반면 파라오를 제외한 기타 인물들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작게 묘사되어 있어 그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온전히 상징적인 요소가 지배한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새의 묘사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그림에서는 이집트 미술에서 일반적으로 도외시되어왔던 원근의 문제를 장인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가령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는 장면에서 감상자는 새들이 마치 오와 열을 맞추어 한 평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겹침의 원리를 활용해 나름의 깊이감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바의 정원, 기원전 1400년경, 프레스코, 영국박물관.


겹침의 원리를 이용한 원근의 표현은 비단 한 작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닌 이집트 벽화 전체에서 나타납니다. <네바의 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품은 원근법이 없는 그림이 대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나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그림이 원근 표현을 배제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른쪽 위에 나타나는 인물과 나무의 표현은 이 그림이 일정부분 겹침의 원리를 표현해 원근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겹침의 원리는 원근을 묘사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비교적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법입니다. 또한 이 방법은 시대를 막론하고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용되는 원근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아래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도 이러한 원리를 부분적으로 차용해 원근을 표현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악도, 6세기 말, 프레스코,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2. 상하의 원리


겹침의 원리가 대상을 나란히 있다는 상황을 가정해 원근을 표현했다면 상하의 원리는 화폭의 2차원성을 십분 활용한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차원 표현에 있어 화면을 뚫고 들어가 깊이감을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하단을 보다 앞에 있는 것으로 상단을 뒤에 있는 것으로 보이게끔 화면을 설정해 일종의 환영 효과를 연출하는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했을 때 이것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 으레 화폭의 하단을 그 공간 속의 전경이라 인식하고 상단을 후경으로 인식합니다. 그렇기에 풍경화에서 멀어지는 자연의 모습은 회화 표면상으로는 상단에 그려진 것에 불과함에도 멀리 지평선 너머로 후퇴하는 풍경으로 인식합니다. 또한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 프리드리히가 중경을 삭제하고 전경의 수도승과 후경의 바다, 하늘을 바로 맞닿아 그렸을 때 그는 상하의 원리를 역으로 이용해 숭고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바닷가의 수도사>, 1808-1810, 캔버스에 유화, 베를린 국립미술관.



이처럼 상하의 원리는 깊이감 표현에 있어 겹침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직관적인 묘사 방법입니다. 그러나 감상자의 입장에서 과연 상하의 원리를 적용한 회화가 화가가 의도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인식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서양 회화의 경우 이러한 원리가 원근법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경우가 많았기에 이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상하의 원리에도 익숙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원근법에서 벗어난 회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상하의 원리는 깊이감을 표현한다기 보다는 높낮이를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령 동거파의 대표적 인물인 거연의 회화에서 깊이감은 앞서 보았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상하의 원리로 표현되었지만 작품 속 산세의 모습은 깊이감을 표현했다기 보다는 산의 높이에 따라 중첩적으로 대상을 묘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회화 속 공간은 당초 의도했듯이 뒤쪽으로 후퇴한다는 느낌을 주기 보다는 급격하게 위로 상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표현은 원근법에서 대상의 상승을 막아주는 요소인 소실점의 존재가 없을 때 나오게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각과 시각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르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시각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시선(sight)과 관련 있는 생리적 의미의 바라봄에 대한 것이고 시각성은 이렇게 얻어진 대상에 대한 시각 정보를 인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해 인식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전자의 경우 단순 생리의 기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 당대의 사회 문화적 양식 혹은 특정 집단이 바라봄을 인식하는 방식들이 어떠한 역사적 궤적을 그려왔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느껴지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지적했듯 현대인들의 시각성은 원근법적 세계를 보다 잘 인지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에 이것에서 벗어나는 회화를 바라볼 때면 그것이 구현한 대상을 못그린 것으로 오해하거나 심지어는 무시해버리곤 합니다. 가령 한국에서 20세기 중후반만 하더라도 서양의 사실성대 동양의 관념성이라는 이분법적 도식 구도에 의거해 동양 미술의 몇몇 장르에서 나타난 독특한 방식의 재현 체계를 단지 사실적 재현 기술의 서투름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거리도의 경우 이런 편견으로 점철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 속에 나타나는 마름모꼴의 역원근법 묘사는 분명 원근법과는 다른 혹은 원근법에서 변형이 가해진 또 다른 시각체계임에도 묘사의 서투름이나 숙련된 기술의 부족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나 원근법적 시각체계 속에서 이러한 인식은 민족미술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 작업과 결합해 해학, 자유분방함과 같은 수사적 문구와 결합하여 정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당대 시각 체계의 규명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3. 명암의 원리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 수업 시간을 떠올려봅시다. 첫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시켰던 것은 원형 혹은 입방체의 물건을 하나 놓고 4B 연필로 그리는 것이었을 겁니다. 이 과정 통해서 학생은 대상의 윤곽을 선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명암 처리의 기본 원리들을 습득합니다. 이 간단한 수업은 당시에는 매우 지루하고 의미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실은 깊이감 표현의 여러 원리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명암의 원리는 이 수업을 통해서 가장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표현 방법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떤 물체를 볼 때 그것의 크기나 질감뿐만 아니라 색감과 명암 또한 인지합니다. 그리고 색감과 명암은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대상의 깊이감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달 분화구를 찍은 사진들입니다. 분화구 안쪽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대상이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림자를 통해 깊이감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착시 현상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달의 분화구 사진을 180도 돌려 보면 분화구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동산처럼 보인다는 점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착시는 때때로 작품을 감상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부조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그림자의 존재는 대상이 저부조인지 고부조인지 아니면 환조인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특히 직접 대상을 찾아가서 보는 것이 아닌 한 쪽 방향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작품을 바라볼 땐 이러한 시각 정보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4. 대기 원근


대기 원근은 명실공히 동서양의 모든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깊이감 표현 방법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군의 화가들부터 남송시기 마하파의 화원화가들까지 지역과 시기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사용한 방법입니다. 이는 대기 원근이 어떤 발명이나 창작이라기 보다는 자연 세계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을 관찰해 체득한 표현 방법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전세계의 어느 산에 올라가도 원경의 대상은 왜곡이 일어나고 세부 사항은 사라지며 색채는 보다 희미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멀리 있는 대상일수록 대상의 색채는 지구에 가득한 대기의 영향으로 보다 푸른 색조에 가깝게 됩니다. 물론 멀리 있는 대상의 색조는 그곳의 여러 기후 조건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가령 서울의 대도시에서 멀리 있는 풍경은 스모그, 황사 등의 영향으로 인해 푸른 색조라기 보다는 황갈색에 가까운 색조를 띄게 되겠죠. 또 시간에 따라서도 차이가 존재하는데 해가 뜰 때나 지고 있을 때 멀리 있는 풍경은 붉은 색에 가까운 색채로 인지될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태고지>, 1472, 캔버스에 유화, 우피치 미술관.
마원, <고사관수도>, 11세기, 지본수묵, 개인소장.


대상의 거리에 따라 색조가 변한다는 점을 인지한 화가들은 이를 깊이감 표현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했습니다. 서양미술사의 경우 대기 원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특히 즐겨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14세기 이전에 이와 비슷한 원리들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양의 경우 수묵화의 재료적인 특성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비슷한 원리가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남송 시기 강남의 습윤한 대기는 이러한 표현 방법을 보다 더 부추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남송 시기 화원 화가들의 그림은 몽롱한 느낌을 주는 대기 원근이 두드러지게 등장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효과는 중국 강남과 마찬가지로 습윤한 기후를 지닌 일본의 몇몇 수묵화에서도 나타나게 되며 이것이 일제강점기 한국화단에 정착해 현대 동양화단에 몽롱체(朦朧體)라 불리는 표현 수단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따라서 대기 원근은 단순히 중국 고유의 원근 표현이 아니라 삼원법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와이 교쿠도, <우카이>, 1950, 견본채색, 시마네 현립 미술관.


여타 다른 표현 방법과 마찬가지로 대기 원근은 이후에 등장하게 될 선원근법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선원근법이라는 강력한 대안이 등장했음에도 대기 원근은 줄어들기는 커녕 후대에 가서 더욱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선원근법이 재현하고 있는 세계가 지나치게 딱딱하다고 느껴지는 반면 대기 원근법의 깊이감 표현 방식은 보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는 화가들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하는 화가들의 차이는 이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후 풍경화가 역사화를 밀어내고 점차 그 입지를 넓혀가자 대기원근 또한 그에따라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 19세기 이르러 대기 원근은 현대 미술을 열어 젖힌 일군의 화가들에 의해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인상주의자들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클로드 모네의 런던 체류 시기 작품들은 대기 원근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와 빛의 변화를 화폭에 담으려 노력했는데 이로 인해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대기 원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워털루 다리, 런던>, 1903, 캔버스에 유화, 시카고 아트 인스튜티트.


5. 선 원근


마지막으로 살펴볼 깊이감 표현 방법은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선원근법입니다. 건축가인 브루넬리스키가 발명 혹은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고 이것을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알베르티가 그의 저작 『회화론』에서 이론화하면서 보편적인 재현 체계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사실 선원근법은 몇몇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미술 작품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고 이에 관한 문서도 불확실하며 설사 선원근법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수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원근법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에 선원근법이 나타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선원근법의 기본 원리는 회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들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하는 가상의 선들 위에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이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은 양안이 아니라 단안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알베르티는 자신의 글에서 새로운 재현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회화의 캔버스를 마치 투명한 창문처럼 생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원근법을 설명하는 유명한 비유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설명은 20세기 이후 투명한 창을 불투명한 하나의 물질로 인식하기 시작한 모더니즘의 대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양 미술사의 재현 체계를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으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주지해야할 사실은 원근법이 서양의 근대 미술과 그 시기 사람들의 바라봄의 방식을 설명하는 지배적인 원리일뿐 유일한 원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원근법은 인간이 대상을 바라볼 때 하나의 눈만을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깔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선원근법이 삼차원의 대상을 이차원으로 묘사하는 수학적인 방법 중 하나일뿐 절대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말해줍니다. 실제 선원근법이 태동하는 르네상스 시기 수 많은 과도기적 형태의 선원근법들이 존재했었습니다. 양안을 기준으로 소실점을 화폭의 양 끝에 위치시키는 이점투시도법이나 어떤 수학적 근거 없이 단순히 경험에 근거해 만들어진 예각사선원근법 등이 바로 이러한 것들입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대기원근법의 원리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도의 원리 같은 것들은 분명 원근법적 원리에서 벗어나는 시각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현대로 넘어와 안구 운동의 원리와 같은 지각 방식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진척되면서 고정된 시야를 상정하는 선원근법의 원리가 단지 창안에 불과하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미술사적으로도 에르빈 파노프스키 같은 학자들은 선원근법이 단지 관습에 불과할 뿐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라는 점을 규명해내기도 했지요.


페루지노,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네는 예수>, 1481-1482, 프레스코, 시스티나 성당.


이처럼 선원근법은 인간의 창안물이지만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세계가 오늘날 사람들의 눈에 아주 그럴듯해 보이고 심지어는 실제 대상처럼 자연스러워 보이기때문에 마치 선험적으로 도출된 원리인것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기실 동아시아의 여러 화가들 조차도 서양 미술이 가진 이러한 기법들을 능숙하게 사용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가령 아래에 있는 이필성의 <산해관외도>는 전형적 사례 중 하나입니다. 18세기 화원화가였던 이필성은 명암의 묘사나 공간 구성을 보았을 때 서양의 기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보여지지만 공간이 후퇴하면서 길이 전혀 좁아지지 않는다던가 명암 표현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점은 그가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이런 점을 단순히 동아시아의 화가들이 실력이 부족 혹은 정신성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것은 이 시기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동아시아의 시각장과 전혀 다른 체계를 적용하기 어려워했을 뿐이지요. 이필성의 작품에서 부감법과 같은 전통적인 깊이감 표현 방식은 능숙하게 처리되어 있다는 점은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필성, <산해관외도>, 1761, 종이에 담채, 명지대학교.



비단 선원근법뿐만 아니라 깊이감을 표현하는 여러 원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글에서는 나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4가지 원리와 오늘날의 시각 문화를 규정하는 한 가지 원리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실은 각지의 화가들이 개발한 수 많은 원리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들은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등장하게된 시대, 사회적 환경 등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어떤 작품을 보고 가치판단을 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반드시 해당 문화의 시각 체계가 우리와 다른 무엇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러한 태도를 지니지 못할 경우 감상 행위는 자연스럽게 우열의 구분 혹은 자국 문화의 우월성 재확인이라는 쳇바퀴 수준의 논의를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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