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휴스턴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드가 : 새로운 시각 Degas : A New Vision》은 드가의 사망 200주년에 맞춰 열린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이 전시는 1988년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작가의 회고전과 연구를 지난 30년간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다시금 개정하고 이를 통해 드가에 관한 새로운 사료들과 역사적 맥락들을 소개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드가의 회고전이 열린 것과 발을 맞추어 미술사학쪽에서도 작가의 여러 측면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굵직한 연구 서적이 출판되었다. 이 중에서 루틀리지 출판사에서 나온 『Perspective on Degas』(2016)은 오늘날 드가 연구의 경향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서문에서 편집자인 캐스린 브라운(Kathryn Brown)은 이 책이 새롭게 발굴된 사료들에 대한 분석과 작품들에 대한 방법론적 재검토를 통해 작가의 복합적인 예술세계를 다루고자 하는 목표에서 기획되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기존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방법론을 활용해 작가의 예술세계를 규명하겠다는 목적은 어찌보면 회고전 성격의 전시와 연구서적에서 당연한 미덕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점들이 동시대에까지 맞닿아 있는 복잡한 정체성 문제에 대한 재검토를 수반할 때 그것이 단순하게 연구방법론의 쇄신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 나아가서는 윤리적인 문제로 불거진다는 것이다.
Edmond and Thérèse Morbilli, 1865 // Mme. Michel Musson and Her Daughters, Estelle and Désirée, 1865
드가의 여성혐오라는 주제는 인종차별이라는 주제와 함께 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인상주의와 드가를 다루는 많은 글에서 드가의 여성혐오는 19세기 젠더 권력 양상과 그것의 승인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었다. (강간과 가정폭력, 부부 간의 소원한 관계를 암시하는) 가족 내 권력 위계, 동물과 같은 형상으로 묘사한 얼굴, 관음증적인 시선, 인간이라기보다는 사물처럼 대상화 된 누드 등 드가를 여성혐오자로 낙인찍을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동시대에 그와 함께 활동했던 비평가들과 동료들의 증언 또한 드가의 여성혐오를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1886년 인상주의 전시 당시 소설가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는 드가가 작품 속 여성들에게 모독과 굴욕감을 주며 여성 묘사 방식이 잔인하다고 평했을 정도다. 1880-90년대 드가가 목욕하는 여인이나 발레리나에 천착했던 시기 폴 발레리(Paul Valéry)와 조지 무어(George Edward Moore)의 증언은 그가 뚜렷한 여성혐오 성향이 있었으며 심지어 그런 점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점을 암시한다. 최종적으로 드가 사망 이후 스튜디오에 남은 작품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추악하게 그려진 여성 이미지들은 그의 이러한 성향을 재확인시켰다.
이러한 연유로 20세기 연구자들이 그를 지난 세기의 성차별적 양상을 드러내는 대표적 작가로 지목한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는 시작부터 여성혐오, 인종차별 등 오늘날의 기준에서 부도덕함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성향들과 손쉽게 연결되었다. 비록 앙부르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가 이러한 성향에 대해 변호하거나 조르주 리비에르(Georges Rivière)가 혐오와 상찬으로 양단할 수 없는 작가의 복잡한 사회적 인식에 주목한 바 있었지만 20세기 중반까지 드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증오와 연결되었다.
Scene of War in the Middle Ages, 1865
Young Spartans exercising, 1860
Sulking, 1870
Interior, 1868-1869
1960-70년대 페미니즘 미술사가 학계 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작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 또한 심화되었다. 이 시기 드가는 비단 19세기 프랑스의 젠더적 권력 위계를 시각화한 대표적인 화가로 인식되는 것을 넘어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도 검토되었다. 특히 13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친척들의 손에서 자라야 했던 작가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삶과 연결되어 작가의 여성에 대한 증오, 공포가 개인적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추정을 낳았다.
이처럼 70년대까지 드가와 젠더에 관한 문제는 작가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며 이를 언급하지 않는 사람들 조차도 이에 대해 애써 언급을 피하거나 모호한 언급만 남기는 방식으로 사실상 페미니즘적 분석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하게만 보였던 그의 성향이 논쟁의 영역에 들어선 것은 1977년 The Art Bulletin에 노마 부르드(Norma Bourde)의 논문 <Degas's "Misogyny">가 실리고 나서부터다. 논문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적 분석이 작가가 가진 다양한 예술적인 함의를 소거해버리며 오늘날의 이론으로 역사적 사실을 단순화 시킨다고 비판했다. 우선 작가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주목한 정신분석학적인 연구는 그가 어렸을적 함게 자랐던 여성 친척들과 깊은 교류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러한 점들이 1850-60년대 그려진 회화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특정 이론에 기댄 과도한 분석이라 보았다. 요컨대 가족 초상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 드가의 여성 친척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 깊은 교류의 측면은 전혀 검토되지 않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던 역사화 작품들(<중세시대 전쟁장면 Scene of War in the Middle Ages>(1865), <젊은 스파르타인들 Young Spartans exercising>(1860년경))은 논문에서 1862년 뉴올리언스에서 벌어진 잔학행위에 대한 작가의 연민 내지 남녀의 평등한 활동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되며 <퉁명스러움 Sulking>(1870년경>이나 <실내 (혹은 강간) Interior>(1868-1869)에서 드러나는 남녀의 긴장관계는 20세기 초 몇몇 감상자들의 해석이 정론처럼 여겨지며 작품의 모호한 의미를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묶어버린 사례로 지목된다.
Tub, 1886 // Crouching Aphrodite, BC 250-240
Women Ironing, 1884 // Michelangelo Buenarroti, Dying slave, 1513-1515
드가의 작가노트에 스케치 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나아가 저자는 전형적인 여성혐오의 사례로 거론되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분석을 시도한다. 가령 목욕하는 여인들을 그린 일련의 파스텔화에서 나타나는 관음증적인 시선과 대상화하는 묘사방식은 고전고대를 적극적으로 참고했던 그의 제작 방식이 작품 속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가령 오늘날까지도 여성혐오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목욕통 The Tub>(1886)의 경우 루브르에 전시되고 있던 헬레니즘 시기 회화 작품인 <쭈그려앉은 아프로디테 Crouching Aphrodite>(기원전 250-240경)에 현대적 옷을 입힌 결과이며 <다림질 하는 여인들 Women Ironing>(1884)에 나타나는 인물의 자세 또한 미켈란젤로의 작품 <노예상> 시리즈를 스케치한 드가의 노트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고전고대와 르네상스 작품들을 참고한 그의 회화들이 적어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명백한 여성혐오적 성향의 발현이라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고전적 형식에 현대적 옷을 입히는 드가의 작업 방식이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1863)에서 나타난 사실주의적인 측면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드가가 평생 자신을 자연주의자가 아닌 사실주의자로 위치짓고 싶어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요컨대 드가 작품의 신랄함은 사회적 현상에 대한 기록일뿐 특정 성향의 반영이 아니라는 것이다.
Little Dancer Aged Fourteen, 1878-1881
Diego Martelli, 1879
끝으로 여성 모델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대우(<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 Little Dancer Aged Fourteen>(1878-1881)의 모델이었던 마리아 반 구템과 초상화 모델을 선 동료화가 메리 카사트의 증언은 이를 뒷받침해준다)에 관해서는 그가 비단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모델에 대해서도 동일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페미니즘적 시각이 사료를 편향적으로 인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저자는 <아내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마네>(1865)에서 모델을 선 마네의 증언이나 <디에고 마르텔리 Diego Martelli>(1879)의 주인공인 디에고 마르텔리의 편지를 통해서 그가 젠더나 교유관계와 상관없이 모델들을 불친절하게 대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당대의 증언과 작가 전기 분석을 통해 기존에 여성혐오적 성향을 드러내는 회화들이 오해로 점철되었다고 주장하며 드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1980-90년대 드가의 여성을 주제로 한 회화들은 페미니즘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재검토되었다. 이제 연구는 드가가 여성혐오자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이 아닌 기존 연구에서 등한시 되었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라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1989년 테이트 리버풀에서 열린 전시 《드가 : 여성의 이미지 Degas: Images of Women》는 이러한 연구경향 변화를 반영하는 대표적 전시로 여겨진다. 비록 드가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던 노마 부르드는 1995년 Woman's Art Journal에 기고한 글에서 전시의 기획자들이 여전히 드가에 대한 편향된 시각 혹은 모호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오늘날의 고지에서 이 전시가 작가의 여성 이미지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시도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2016년 『Perspective on Degas』가 발간되었을 때 드가를 둘러싼 논쟁의 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그것은 서문에서 드가와 여성혐오라는 주제가 여전히 논쟁의 영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드가에 대한 논의가 이도저도 아닌 지지부진한 중간 영역에 봉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드가와 여성혐오에 대한 논란은 드가를 여성혐오로 바라보는 관점과 그렇지 않다고 보는 관점 모두에게 기존의 해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드가의 작품은 이제 그것이 내포한 시선의 정치학, 나아가서는 푸코 등이 주장한 생명정치의 측면을 주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페미니즘적 관점은 목욕하는 여인들을 묘사한 일련의 회화들이 비록 고전고대의 조각작품들을 참고했을지라도 그러한 작품들의 선택 자체가 이미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 개입된 결과이며 설사 그러한 목적성이 없었다 하더라도 작품이 선택한 구도는 명백하게 관음증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아래로 바라본 여성의 모습이 남성작가의 여성모델에 대한 우월감을 드러낸다던가 마치 망원경으로 바라본 듯 인물을 묘사한 방식이 관음증적인 당대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거나 은밀히 대상을 엿보는 듯한 구도는 그 자체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하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나아가 관상학, 골상학에 대한 관심과 이를 반영한 일련의 회화들은 그것이 내포한 차별적인 함의로 인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동시대의 젠더적 위계를 강화 혹은 승인해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이 과거와 다른 것은 일련의 분석들이 드가 개인의 성향을 특정한 무엇으로 단정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의 여성혐오에 대한 연구는 과거의 연구들과 달리 개인의 경험에서 기인한 무엇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도출된 무엇으로 인식된다.
한편 드가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복잡한 사회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작가의 사회학, 병리학 등 19세기에 사회 분석의 도구로 떠오른 일련의 학문 경향들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며 그의 여성 이미지 묘사가 동시대 사회적 편견의 수용 내지 개인의 신념의 반영이 아닌 사회적 모순에 대한 작가의 진단과 비판이 내포된 무엇이라고 판단한다. 특히 병리학과 사회학의 연관관계에 대한 조르주 캉귈렘(Georges Canguilhem)의 박사학위 논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Le normal et le pathologique』(1996)를 참고하여 여성 신체 묘사를 통한 강력한 사회비판 의식에 주목한다. 한편 또 다른 연구는 그가 가진 사실주의적 측면이 당대에 여성을 묘사하는 관행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적나라한 것이었는지 주목한다. 요컨대 여성의 얼굴이나 신체를 전혀 이상화하지 않고 심지어는 동물과 같은 무엇으로 그린 그의 작품들이 당대에 알렉산더 카바넬의 누드와 장르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우아함, 관능이라는 당대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여성성의 가치들을 화폭에 구현했던 카바넬과 다르게 드가가 묘사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관찰에 의거한 진실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상을 규정하는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심지어 그는 차별적 함의가 명백한 부르주아적인 가정관조차도 거부했다) 자체를 혐오했던 드가의 예술적 성향이 여성을 묘사함에 있어 반영되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며 이와 동시에 그의 동시대인들 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모순적인 태도(왜곡된 여성 이미지를 그림과 동시에 여성 화가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교류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상의 논쟁과정을 살펴보며 알 수 있는 지점은 작가의 성향에 대해서 우리가 함부로 단정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드가는 여성혐오자였을 수도 있으며 그 반대로 단지 자신의 예술적 목적에 충실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드가라는 인물의 실체라는 것은 어느 한쪽이 아닌 양자의 측면 모두를 포함하는 애매모호한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의 측면으로 작가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반대편에 위치한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 뿐더러 작품이 지닌 풍부한 함의를 지워버린다. 드가를 둘러싼 오해들과 이에 대한 해석들은 이러한 우리의 경향이 쉽사리 해석의 한계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 참고문헌
Anthea Callen, The Spectacular Body: Science, Method and Meaning in the Work of Degas, Yale University Press, 1995.
Carol M. Armstrong, Odd Man Out: Readings of the Work and Reputation of Edgar Dega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1.
Jessica Locheed, Degas: A New Vision at 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CAA review, 2017.
Kathryn Brown ed., Perspectives on Degas, Routledge, 2018.
Michelle Facos ed., A Companion to Nineteenth Century Art, Wiley-Blackwell, 2019.
Norma Broude, “Degas’s ‘Misogyny’,” The Art Bulletin 59, no. 1 (1977), pp. 95–107.
___, "Review of Dealing with Degas: Representations of Women and the Politics of Vision, by R. Kendall & G. Pollock," Woman’s Art Journal 16, no. 2 (1995), pp. 35–40.
Richard Kendall, Griselda Pollock, Dealing with Degas: Representations of Women and the Politics of Vision, Pandora, 1992.
※ 도판목록
도1. <Edmond and Thérèse Morbilli>, 1865, Oil on Canvas, Museum of Fine Arts, Boston.
도2. <Mme. Michel Musson and Her Daughters, Estelle and Désirée>, 1865, Watercolor, with touches of charcoal,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도3. <Scene of War in the Middle Ages>, 1865, Oil on Canvas, Musée d'Orsay.
도4. <Young Spartans exercising>, 1860,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London.
도5. <Sulking>, 1870, Oil on Canva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도6. <Interior>, 1868-1869, Oil on Canvas, Philadelphia Museum of Art.
도7. <Tub>, 1886, Pastel on Cardboard, Musée d'Orsay.
도8. <Crouching Aphrodite>, BC 250-240, Marble, Musée du Louvre.
도9. <Women Ironing>, 1884, Oil on Canvas, Musée d'Orsay.
도10. Michelangelo Buenarroti, <Dying slave>, 1513-1515, Musée du Lou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