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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델 Jul 16. 2021

송대 산수화의 전파로 보는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도1) 이성, <청만원사도>, 960년, 넬스 앳킨스 미술관.


(도2) 마원, <산경춘행도>, 1190 ~ 1225년, 대만 고궁 박물관.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동아시아 미술 전통에서 송나라가 가지는 입지는 엄청나다. 오늘날 우리가 산수화 기법이라고 불릴만한 거의 모든 기법이 송나라 연간에 탄생하였고 동아시아에서 미술을 하는 사람이 큰 전거로 삼았던 사람들도 다름 아닌 송대의 거장들이었다. 또한 중국 자체의 미술사를 살펴보더라도 이들의 영향은 지대하다. 일례로 남송 멸망 이후 원나라에 발생한 일련의 화풍 변화들도 그 근원은 송대 회화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기 5대 10국 시대의 회화 기법을 추구하며 원말 사대가라 불렸던 황공망 ,왕몽, 오진, 예찬 또한 송대 회화 전통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다. 이렇듯 송나라의 미술이 동아시아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실상 중국 회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각국의 미술사를 온전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특히 회화의 영역에 있어서는 그러한 영향이 두드러지는데 오늘날 북송, 남송대의 작품들이라고 하면 대부분 회화 작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회화의 영역에서 송나라의 화풍이라는 공통의 코드는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기능한다. 아무리 기록물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화풍에 있어서 송대의 흔적이 보인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작품을 접했다는 것이고 이것은 문물 교류의 흔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화풍을 논함에 있어서 우연의 일치를 언급한다. 즉,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같은 화풍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연의 소산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연은 아쉽게도 미술사의 큰 역사에서 존재하는 경우가 없다. 혹여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기법을 탐구했다고 하여도 그 표현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표현 방식마저 일치한다면 이것은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교류의 소산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큰 역사의 흐름 속에 우연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시각적인 결과물의 일치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때문에 스타일에는 우연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차이를 읽을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간극만이 있을 뿐이다.


송대 회화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송대 회화의 전개 과정은 하나로 묶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송대가 북송과 남송으로 나뉜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결정적인데 이 둘의 차이가 단순한 통치 체제의 차이가 아닌 지역적인 차이를 의미하며 그것이 화풍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나 동아시아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인 산수화는 근본적으로 자연을 사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여기서 사생이라는 것은 19세기 인상파들이 그러하였듯 이젤을 들고나가 직접 사생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산수화의 정경(正經)을 구축했던 문인계층은 이러한 사생을 자주 하지 않았다. 17~18세기 진경산수라는 산수화풍이 등장한 것이 미술사 개론서에 한 챕터로 구분되어 있음을 기억해두자. 실경을 그린다는 것이 17~18세기 이전에 없었다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류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산수화라는 것이 자연에 대한 직접 사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문인들이 자연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산수화가 사의화의 성격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결국 물질적인 자연의 투영 없이는 화폭에 표현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문인화 이론에서도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인데 가령 원대 문인회화의 기틀을 닦은 조맹부(趙孟頫 1254 ~ 1322) 같은 사람도 형사에서 사의의 단계를 언급할 때 사의를 "사물"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생각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자연은 당연히 그들 주변의 산천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송 대와 남송 대의 화풍을 이곽파와 마하파로 따로 구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북송과 남송은 기본적으로 화북 지역과 강남 지역이라는 각기 다른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건조한 화북 지역과 습윤한 강남 지역의 생태는 송나라 연간을 살았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산과 나무의 표현 대기의 표현에서도 그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도판1과 도판2는 각각 북송 대와 남송 대 그려진 회화들로 환경의 차이가 어떠한 화풍의 차이를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기 표현이다. 도판1의 풍경은 한눈에 보아도 건조한 대기로 표현된 풍경임을 알 수가 있다. 도판2의 경우 후경이 거의 여백처럼 처리되고 그나마 남아있는 산의 형상도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어 습윤한 느낌을 주는데 비해 도판1의 풍경에서는 후경까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 그것을 방증해 주고 있다. 또한 나무의 표현에 있어 도판1은 화북산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해조묘라고 불리는 잎사귀 없이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표현은 북송 이곽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후경의 거대한 산의 표현 또한 주목해 볼만하다. 미술사적 용어로 흔히 운두준이라고 표현하는 바위 표현과 마치 비석처럼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산의 표현은 화북의 지형을 회화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서로 자신만의 뚜렷한 특징이 있는 두 화풍은 중국 내의 회화 전통에서 청대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형성한다. 후일 원대에 들어와서는 여기에 동거파라 불리는 궁중양식이 결합되며 중국 회화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며 명대에 이르러서는 이곽파와 마하파가 결합한 화풍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절파화풍(The Zhe School)이다. 하지만 송대의 화풍이 여타 주변국, 가령 한반도의 왕조국가들이나 일본의 국가들로 유입될 때는 혼합되는 경향보다는 하나의 화풍이 전래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조선의 경우 동시대 명대의 절파화풍 내지 동거파의 영향이 뚜렷한 문인화풍이 아닌 북송대의 이곽파가 전래되었지만 일본의 경우 무로마치 연간에 조선과 마찬가지로 명대의 화풍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이들이 받아들인 것은 이곽파가 아닌 남송대의 마하파였다.


조선과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회화는 단지 그 화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미술을 받아들인 계층의 측면에서도 둘은 차이를 보였다. 조선의 경우 중국의 미술을 받아들인 계층은 엄연히 사대부들이었다. 사대부 양반 계층은 주로 화첩을 통해서 중국의 미술, 특히 송대의 미술을 접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의 화풍이 이곽파의 화풍과 유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전기 안견(安堅 ? ~ ?)의 <몽유도원도>와 전칭작인 <사시팔경도>를 보면 이곽파에 대한 조선 문인들의 이해가 북송대 문인화가들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조선 전기에 받아들인 이곽파의 화풍은 안견대에 들어와서는 조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발전되며 후일의 문인화가들의 화풍에서는 안견파라는 새로운 화풍의 등장으로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했다. 다만 이후 조선의 회화사에서 원말 사대가, 특히 예찬을 흠모하여 모사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남종문인화 이론에 기반한 그림들이 늘어나는데 17세기 무렵부터 조선에 들어온 <고씨화보>, <십죽재서화보>, <개자원화전>과 같은 화첩에 영향을 받은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영정조 시대에 들어서 절정을 맞이하는데 특히 미점산수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鄭歚 1676 ~ 1759)의 등장은 조선의 산수화풍이 북송의 이곽파 일변도가 아닌 남송대 마하파, 원말 사대가 화풍, 절파화풍 등 다양화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안견, <몽유도원도>, 1447년, 덴리대학 중앙도서관.


전 안견, <사시팔경도>, 15세기 중엽, 국립중앙 박물관. (도1, 도2와 나무. 바위 표현을 비교해볼 것)


다음으로 일본은 산수화풍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사대부계층이 아닌 승려들의 도움 또한 지대했다. 이것은 일본에서 과거와 같은 사대부 계층을 형성하고 유지시켜줄 제도가 부재했기 때문에 문인계층에 의해서 널리 발달했던 산수화가 일본의 지식계층인 승려들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중국의 회화를 받아들임에 있어 초기에는 선종화를 들여왔다. 선종화는 남송대 유행한 종교화로 주로 깨달음을 주는 목적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북송대 회화 양상에서 산수화가 문인들이나 궁정 화가들에게 많이 그려지면서 정형화되는데 비해 선종화는 특유의 파격성을 특징으로 다양한 화풍이 등장하게 된다. 남송대 선종화를 이루는 수많은 화법 중 일본이 선종화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수묵화라는 새로운 방식의 회화 기법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과 달리 가마쿠라 막부 시대 일본은 산수화와 수묵화가 동시에 들어온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시차를 두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독특한 사회 구조 다시 말해 사대부 계층이 부재하여 불교계에서 문화, 지식의 전파, 흡수를 담당했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 산수화를 문인화의 전유물로 이해했을 때 일본에 있어 문인화 전통이라는 것은 이처럼 선불교의 영향 아래서 탄생했던 것이다. 즉, 관료 문인들이 산수화를 주도했던 한국,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불교 선승이 산수화의 주도 계층이었던 것이다. 수묵화의 중국 유입은 무로마치 시대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더욱더 촉진된다. 특히 이 시기는 일본 미술사에 있어 문화가 융성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회화 분야에 있어서도 오산선문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잔문학(五山文學)이 발달하고 셋슈 토요라는 기라성 같은 화가들이 연이어 출연하는 문화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는 가마쿠라 막부대 보다 수묵화가 융성하게 되며 문인화로서의 수묵화 또한 이 시기에 유입되게 된다.


일본이 받아들였던 산수화풍은 조선과는 달리 마하파 화풍이었다. 왜 일본이 마하파 화풍을 받아들였나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가능하지만 확실하게 하나의 이유로 단정할 수는 없다. 강남의 습윤한 대기와 일본의 해양성 기후의 유사성이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고 남송대에 유행했던 선종화의 영향이 산수화를 받아들일 때도 유지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영향을 받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마하파를 그들의 산수화풍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 그 자체다. 또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문인화의 영역으로서 산수화를 받아들일 때 문인화의 여러 특성들 중 기법적인 특성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이곽파가 받아들여질 당시 이러한 화풍을 도입한 주요 계층은 사대부 계층이었다. 이들은 문인화풍을 받아들일 당시 단순히 화풍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이 화풍이 가진 정신적인 의미 또한 받아들였다. 오늘날에도 조선의 그림을 이해할 때 널리 쓰이는 시서화삼절(詩書畫 三絶)의 경지의 추구나 무성시(無聲詩)라는 개념들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러한 것들은 기본적으로 유교적인 사상 하에서 전개된 화론들이었기 때문에 조선에서 이곽파 화풍을 받아들인 것이 사대부 계층이었던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화풍을 수입해오는 주요 계층은 불교 계층이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시서화삼절의 경지는 존재했다. 이미 무로마치 연간에 유행한 한시, 시화축와 같은 개념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계층의 차이로 인해 그들이 인식한 문인화 자체는 결국 기법적인 측면에 기울어 있었다. 이것은 무로마치 연간이 아닌 후일 남화가 등장하는 에도 시대의 산수화풍에서도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으로 한국, 중국과는 다른 일본의 계층 구조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죠세츠의 <표점도>는 일본에서 마하파 화풍이 어떻게 선종화와 결합되어 나타났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인물이 강조되고 한쪽으로 치우친 변각구도를 보여주며 후경이 안개가 낀 듯 뿌옇게 처리된 모습은 전형적인 마하파의 특징이 드러난다. 하지만 마하파에서 보이는 자연을 통한 정신의 고양은 불교적인 깨달음이라는 주제로 변경되어 있다. 전경의 남자가 표주박 속에 물가에 있는 메기를 넣으려고 한다. 과연 남자는 어떻게 하면 메기를 잡을 수 있을까? 선불교의 수행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이 선문답은 일본에서 수묵산수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나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의 마하파 산수는 셋슈 토요, 쇼케이와 같은 화가들에 의해서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그 기법만을 받아들인 일본의 마하파 화풍은 기법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경직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죠세츠, <표점도>, 1415년, 타이죠인.


마지막으로 무로마치 연간에 특별히 주목해야 할 화가가 있다. 지금까지의 회화 교류가 중국에서 일본, 중국에서 조선으로의 교류였다면 죠세츠의 제자인 덴쇼 슈분(天章周文 ? ~ 1444)의 몇몇 작품들은 조선과 일본의 교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사계산수도>에서 보이는 화풍은 이곽파와 마하파 어느 한쪽의 화풍이라고 말하기 매우 어려운 복합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마치 꺾인 듯이 표현된 소나무의 표현은 마하파의 전형적인 나무 표현이며 중간의 대기 표현 또한 습윤한 강남의 분위기를 묘사할 때 쓰는 주요한 방법이다. 하지만 화면의 중간에 비석처럼 우뚝 서있는 봉우리는 엄연히 이곽파적인 산의 묘사다. <수색만광도>에 이르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더 두드러진다. 한눈에 보아도 전경의 구도는 한쪽으로 치우쳐 저 있어서 마하파의 변각구도를 연상케 하지만 뒤편의 산세 표현은 이곽파의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 양식의 혼합을 우연으로 치기에는 슈분의 행적 또한 심상치 않다. 슈분이 1404년 조선을 방문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추측컨데 슈분은 화공 내지 사대부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았거나 화첩을 통해 조선의 그림을 접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배운 그림들은 오늘날 안견파라 불리는 조선 전기 이곽파의 화풍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조선의 산수화풍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귀국하여 막부의 궁정화가가 되는데 그때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 당시 배운 기법이 화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화풍의 혼합은 비단 일본의 화가에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흔히 도일(渡日)화가라고 불리는 일군의 화가들이 바로 그런 것을 증명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소유되어 있는 문청의 작품이나 실제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들을 남긴 이수문 같은 사람들이 일본과 조선의 문화 교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슈분, <사계산수도> , 무로마치 시대, 도교국립박물관.


슈분, <수색만광도>, 1445년, 도쿄국립박물관.


화풍의 전파라는 측면에서 놓고 보면 동아시아 삼국은 활발한 문화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양상에 있어 단순히 중국에서 주변국으로의 일방향적 전파가 아닌 한국에서 일본 혹은 일본에서 한국과 같이 다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화첩을 통해서 화풍이 전파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사람을 통해서 화풍이 전파가 되는 등 전파의 수단에 있어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삼국의 문화교류는 단선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글에서 주로 다룬 10세기부터 15세기 사이의 동아시아는 비록 많은 정치적인 격변이 존재했던 시기였지만 일부 시기를 제외하면 끊임없이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17~18세기에 들어서 더욱더 심화되는데 특히 이 시기는 그 공간적 범위에 있어서 동아시아 삼국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화까지 유입된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일찍이 서양의 화법이 전해서 궁중미술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고 일본의 경우에도 다색판화를 통해서 그러한 경향이 드러난다. 한국의 경우에도 서양 화법에 대한 관심이 사행단을 통해 들어온 서책으로 이루어지는데 표암 강세황의 작품에서 이러한 흔적이 드러난다. 한편 동양의 요소들이 서양에 전파되는 것도 존재했는데 유럽 궁정 문화에 널리 퍼진 시누아즈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동아시아와 서양 문화의 교류는 동아시아 삼국의 교류와는 달리 비교적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후대에까지 연장되지 못했다는 것은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p.s 이 문제와 관련해 참고하면 좋은 책들


James Cahill, Hills Beyond a River: Chinese Painting of the Yuan Dynasty - 중국미술사계의 곰브리치라 불리는 제임스 캐힐의 저서는 영미권 동양미술사 연구의 주요 저작 중  하나다. 그 중 원대 문인화에 대한 책인 Hills Beyond a River에는 중국 산수화의 변천 과정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할 것.


Susan Bush, The Chinese Literati on Painting : Su Shih to Tung Ch'ich'ang - 제임스 케힐과 더불어 문인화 분야의 권위자이자 문인화이론 분야에 있어 뛰어난 저작을 남겼는데 소개되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후기 중국화론'이라고 말하는. 남송대 신유학을 화폭에서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함.


마이클 설리반, 최상의 중국 예술 : 시.서.화 삼절 - 동아시아 회화에서 드러나는 시, 서예, 그림의 조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품에 나타나는지 밝힌 책.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측면에서 산수화를 이해하고 싶다면 큰 도움이 되는 책. 설리번의 다른 저서들 중에서는 서양 문화와 중국 문화와의 교류에 대해 쓴 논문도 있으니 찾아 읽어보면 해당 방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1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분량도 큰 장점)


아키야마 데루카즈, 일본회화사 - 오래된 책이지만 일본 미술에 대해서 여전히 탁월한 입문서. 회화 분야에 국한되어 있어서 조각, 특히 가마쿠라시대 전성기를 누렸던 종교 조각들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일본 미술의 중요 개념인 선(Zen)이 미술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


안휘준, 한국회화의 이해 - 조선으로 전래된 문인화의 수용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 특히 조선 전기 안견을 중심으로 하는 일군의 화풍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책 자체로는 조선 전기 부분이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논문을 읽을 것이 아니라면 책에 언급된 정보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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