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텃밭에서는 되도록 다양한 작물을 심는다.
다양한 작물을 심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부터 만들어진 선을 흩뜨려 트려 다름을 이상하거나 나쁜 것이 아닌 새롭고 평범한 일로 만든다.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단번에 '무슨 농사지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퍽 난감했다.
농사를 지어 돈으로 바꾸는 상업농이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단일작물로 무엇을 재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하지만 농업이전에 농사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직접 재배하고 사용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한두 가지 작물을 대량으로 심어 자본의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생산, 관리, 판매하는 상업농의 방식은 불과 40년이 되지 않았다.
본래의 농 이가진 경제적 가치, 환경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담아 농사를 지으면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삶의 지혜와 생태계의 연결은 놀랍다.
그런 가치와 과정을 직접 만나기 위해 학교텃밭에서는 고추도 수비초와 화천재배, 토마토도 진안토마토, 옥발토마도, 그린지브라 등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 재배특징과 쓰임을 가진 다양한 작물을 심는다.
진안토마토는 진안 안천면에서 수집된 재래종으로 일반적인 빨갛고 둥근 토마토와 달리 호박 같은 모양새와 짙은 노란색을 가진다. 토마토를 주로 생으로 먹는 우리 식문화에 맞춰 개량된 개량종들은 생으로 먹기 좋게 이미지로 노출될 때 가장 흔하고 익숙한 빨간색의 둥근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진안토마토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와 더불어 익혀 먹었을 때 풍미가 더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토마토!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이미지.
빨갛고 커다랗고 둥글고 탐스러운 그 그림과 다를 때 사람들은 당황하고 불편해한다.
처음 진안토마토를 만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상해요" "토마토 맞아요?" 같이 낯설어한다.
다른 색과 모양에 먹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씨앗에서 시작해 싹이 트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낯섦을 지나 진안토마토를 만난다.
진안토마토와 관계를 맺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아마 평생 먹어왔지만 만나 본 적 없는 '토마토'와 다시 관계를 맺게 된다.
토마토는 빨갛기도 노랗기도 초록색줄무늬가 있기도 하다. 둥글고 길고 작거나 아주 커다랗기도 하고 시고 달고 부드럽고 딱딱하기도 하다.
우리처럼 말이다.
토마토 하나로부터도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치우친 생각과 상은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알고 있던 것, 익숙한 것, 보통이라고 생각한 것을 벗어났을 때 아이들은 이미 불편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내가 달랐을 때 경험한 불편한 경험 혹은 소외감 같은 것들은 불안을 만들고, 그 경험들은 여자는, 남자는, 가족은 같은 어느샌가 짜 맞춰진 박스 안에 생각들을 가두게 만든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보통' 혹은 '평균' 같은 것들은 각자의 색을 지우고 숫자로 계산해서 만들어진 개념에 불과하다.
이미 보통과 일반에 속하지 않은 색을 가족을 가진 아이들에게 그것만큼 폭력적인 일이 있을까 생각한다.
조금만 다르면 튄다, 나댄다 같은 표현들로 공격받고, 그로 인해 내가 남과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것에 주눅 든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바탕에는 그런 생각과 경험들이 있다.
나다움을 드러내는 일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 불안하고 두려운 사회, 보통과 평범의 잣대로 평가되고 재단되는 것들, 그렇게 서로를 성장시키는 경쟁이 아니라 누군가를 짓밟아야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경쟁으로 내몰리는 것이 아닐까.
할머니와 농사를 지을 때 똑같은 메주콩하나도 한 가지만, 한 번만 심는 일이 없었다.
장을 담그려면 꼭 필요한 메주콩은 스스로 질소를 고정하니 땅이 퍽 비옥하지 않아도 잘 든다며 편히 기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콩이 가진 영양가만큼이나 콩은 인기가 아주 많다.
할머니들이 콩세알을 심은 것은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경험에서 차곡차곡 쌓인 지혜다.
빼꼼빼꼼 싹이 틀 때면 달큼하고 부드러우니 산비둘기면 온갖 새들이 와서 콩을 빼먹는다.
조금 더 자라면 한여름 억세진 풀들 사이 곱디곱게 부드러운 싹을 대니 고라니가 와서 열심히 베어 물고 간다.
겨우 살아남아 꽃을 좀 피워 콩이 좀 열릴라 치면 여지없이 떼거지로 날아드는 톱다리 개미허리 노린재가 주둥이를 꽂고 채 여물기 전 콩을 쪽쪽 빨아먹는다.
콩은 뿌려지기 전부터 거둘 때까지 함께 먹는 이가 많은 작물이다.
게다가 물을 좋아하는 콩은 심는 시기의 기후에 따라 어떤 때는 가물어 아예 싹이 나지 않기도 하고 겨우 낸 싹이 비에 녹아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같은 메주콩도 생육시기에 다라 올콩과 늦콩을 나누어 심었다.
어느 해에는 올콩이, 어느 해에는 늦콩이 살아남아 매년 메주를 띄울 만큼, 명절에 두부한판 만들 만큼, 씨앗 할 만큼의 콩이 남았다.
토마토 역시 그렇다.
종묘상에서 사 오는 큰 토마토는 생으로 먹기 좋고, 진안토마토는 익혀 먹기 좋고, 산마르자노나 로마, 안틴코뉴 처럼 길쭉하고 씨앗 적은 토마토는 소스를 만들기 좋고, 블랙체리, 미친 토마토처럼 작고 더위에 비교적 강한 방울토마토들은 간식으로 먹기 좋다.
모두 다르기에 만날 수 있는 풍요로움이다.
모양과 특징에 따라 '잘 먹는 일'이 가능해진다.
한 가지 종만 심으면 절대 만날 수 없는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만나는 것이다.
다름을 넘어 관계를 맺기 위해서 씨앗으로부터 시작해 씨앗으로 돌아오는 온전한 한살이를 경험한다.
토마토는 씨앗에도, 잎에도, 줄기에도, 꼭지에도 털이 보송보송하다.
토마토 씨앗을 심고 싹이 나고 코딱지만 하던 새싹이 어느새 나보다 큰 키로 자라는 것은 매년 만나도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여름 기후에 애써가며 토마토가 열리면 아이들과 하나라도 더 먹기보다 가장 처음 씨앗을 받는다.
씨앗은 살아있고, 심지 않으면 사라진다.
머나먼 해외에서 뉴스에서 일어나는 기후위기와 멸종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의 선택과 밥상에서 만난다.
그렇게 한해만 함께 하면 금세 아이들은 깨닫는다.
나와 다른 친구도 소중해요 같은 상이 아니라 이상하고 썩은 것 같던 진안토마토가 시간을 들여 돌보고 만나고 먹어보니 '나쁘지 않네?' 혹은 '나는 진안토마토가 더 맛있어' 하고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그린지브라토마토로 샐러드를 해 먹고, 옥발토마토를 베어 먹어보면 다른 게 나쁜데 아니구나.
토마토는 빨갛고 노랗고 줄무늬가 있구나. 하고 경험하면 내 주변의 많은 것들도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열린다.
그런 배움의 끝은 기르는 일, 먹는 일에서 끝내지 않고 씨앗으로 돌아와 나누고 다시 심는 연결의 과정까지를 포함한다.
우리가 먹지 않았다면 일어났을 일, 토마토가 본래 자연에서 하던 일을 흉내 내어 씨앗을 받는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돌아오는 일은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따뜻한 곳에서 물렁해진 토마토를 헹구고 가라앉혀 씨앗을 받는다.
영락없는 음식물쓰레기 같이 보이는 토마토를 조물 거리고 씨앗으로 돌아오면 솜털이 보송 거리며 마르면 반짝거리는 토마토 씨앗으로 돌아온다.
처음 우리가 심었던 그 코딱지만 한 씨앗이 훨씬 많아졌다.
토마토 씨앗을 받던 날, 코를 틀어막고 멀찍이 있던 아이들은 새삼 신기해한다.
한 친구는 믿을 수 없다며 말했다.
"이게 토마토 씨앗이라고요?"
"응! 우리가 심었었잖아! 밭에서 따서 지금 씨앗을 받았는걸?!"
":0!!! 이게 토마토 씨앗일리 없어!"
"응?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토마토를 평생 먹었는데, 토마토는 씨앗이 없었어요!"
"먹는 동안에는 초록색 젤라틴에 쌓여 있어서 몰랐을 수 있어. 이게 바로 토마토 씨앗이야. 우리 토마토에도 털이 많았잖아? 여기 봐 털 보여?!!"
생명의 시작인 씨앗까지 만나야 비로소 토마토와 관계를 맺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양성의 시작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교과서에서 어떻게 이야기할까.
제 아무리 쉽고 구체적인 언어로 다뤄도 "존중"이라는 함께 살아갈 지혜를 나누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텃밭에서는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토마토는 지주를 해줘야 하고, 상추는 좁은 공간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 감자는 추운 시간을 사니까 3월에도 심지만 따듯한 시간을 사는 고구마는 여름이 가까워져야 심을 수 있다는 것, 28점 무당벌레는 감자를 칠성무당벌레는 다른 초식곤충들을 잡아먹는다는 것.
제각기 다르게 살아가고 그 덕에 건강해지는 텃밭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다름을 존중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머리가 아닌 경험으로 만난 자연스러운 환경은 아이들이 나도 노란색토마토여도, 혹은 줄무늬를 가진 토마토여도 괜찮겠다 하는 마음을 만드는 것 같다.
어떤 새로운 친구를 만나도 경험하기 전에 판단하지 않는 것, 우리 모두 다를 수 있고, 정해진 박스가 없다는 걸 끊임없이 이야기하게 된다.
그건 모두 토마토다 다른 덕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성은 풍요롭게 하고 지속가능하게 하고 안전하게 한다.
텃밭에서 우리는 그렇게 안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