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만나기 위해 경계를 허무는 일
농사짓기를 꿈꾸면서부터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삶에 가장 중심 가치로 세웠다.
지속가능성은 서로 연결되는 일이다. 과거와 지금, 그리고 앞으로를 연결해야 가능한 일.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각각의 색이 서로를 물들여 새로운 색이 되기도 하지만 온전히 개별의 색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각각의 색을 드러내고 연결되어야만 안전하게 오래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교 텃밭에서는 농사의 기술이나 작물의 재배방식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농사를 이용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물론 농사의 기술을 익히고 작물의 재배를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구와 몸을 쓰는 법, 삶에서 마주할 다양한 일들에 나의 관점을 갖게 되고, 교과서에서 그림으로만 있던 배움들이 더 생생하게 소화되는 멋진 일들도 일어난다.
그러나 '농'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려 하는 가장 큰 가치와 배움은 밭에서 할머니와 그곳의 생명들에게 배운 지속가능하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학교텃밭에서 첫 번째 약속으로 우리는 서로가 가진 모양과 꼴, 색을 그대로 존중하며 함께 배우는 장이길 바랐다.
'서로 존중하자'라는 말으로는 그것들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서로'의 범위부터 '존중'의 의미까지 모두가 생각하는 모습이 다르니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텃밭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작물과 풀, 학교의 안과 밖, 학교와 농장이라는 자연스럽게 그어져 있는 경계들을 허물어내고 함께 재정의하는 일을 했다.
알게 모르게 경험으로 단어로 실제의 목적과 이상과는 다르게 작용하고 있는 것들을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처음 텃밭시간을 진행했을 때, 글을 쓸 때면 '나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아이들이 정작 '나는'을 채우고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났다.
작은 그룹을 나누어 각기 다른 씨앗들을 나누어주고 어떻게 자랄지 상상해서 그려보자고 했다.
씨앗이라는 시작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또한 '씨앗'이라고 흔히 가두어놓은 경계를 허물고 가지각색의 씨앗들을 만지고 그리며 자세히 만나게 하는 일, 항상 먹어왔지만 씨앗과 만남을 통해 새롭게 관계 맺을 수 있게 하려 했다. 소독이나 코팅을 하지 않은 직접 농사지어 채종한 토종씨앗(씨앗에서 씨앗으로 돌아오는)이었기에 가능했다.
깊이 있게 씨앗을 만나게 하기 위해 상상하고 그려보자 제안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궁금해하며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선뜻 그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상상하자는 말인데도 아이들은 두려워했다.
첫 번째, 틀릴까 봐.
마치 시험을 앞둔 것처럼 이것을 정확히 맞추는데 급급했다. 아무리 애써 들여다봐도 무엇인지 모르겠으니 답답해하다 울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에에?? 왜 울고 있어?!"
"모르겠어요. 이거 뭔지 모르겠는데 이이잉"
"당연히 모르지! 처음 만나는 건데, 맞추기 위한 것도,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것도 아니야. 이 씨앗은 어떻게 자랄까 신나게 상상해 보자는 거야"
설명과 안내가 충분하지 못했구나 아차! 싶어 모두에게 서둘러 안내했다.
"자! 여기사 10년 이상 농사 지어본 사람! 손!"
몇몇 짓궂은 친구들이 손을 들었지만 10살이 안된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니 1살 때부터 농사지었냐며 낄낄거리다 이내 손을 내렸다.
"봐봐, 아무도 없지?! 씨앗을 만나는 일은 이게 뭔지 맞추기 위한 게 아니야, 여기 아무도 모르는걸. 또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게 아니야. 우리는 이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는 게 아니야. 잘 못 그려도 괜찮아. 처음 만난 이 씨앗친구랑 친구가 되어보기 위해 자세히 만나보는 거야. 상상해 보는 거야, 틀려도 괜찮아."
몇몇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그리기 시작했다.
울던 친구는 울음이 그치지 못하고 말했다.
"이거 틀리면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혼자 그려보고 나누고 싶은 친구만 나눌 거야. 네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도 네 그림을 보지 않을 거야. 괜찮아. 엄마든 선생님이든 친구든 맞고 틀리고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네가 생각하기에 이 친구는 키가 클까? 작을까? 맛있는 열매가 있을까? 꽃은 무슨 색일까? 마음껏 그려도 돼."
그렇게 조마조마해하던 아이들은, 이미 옆에서기 보다는 위아래로 세워지는 것이 익숙해진 아이들은 틀리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마지못해 "몰라 꽃"이라며 옆 친구들과 비슷한 모양의 꽃을 그리는 것으로 활동을 마쳤다.
생각하고 만나보고 경험하고 경험이 다시 소화되는 동안 내면에서 내지르게 되는 즐거운 탄성은 어디로 갔을까. 틀리는 게 두려워 시작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두 번째. 다를까 봐.
그룹별로 나누어준 씨앗을 관찰하며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씨앗일지 이야기 했다. 그러나 각자가 생각한 걸 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따라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물으면 우물거리거나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미 남들과 달랐을 때 만나게 되는 불편한 상황을 겪어본 터였다.
토마토는 빨간색, 감자는 하얀색이 라고 생각한 것에서 다르면 아이들은 대번에 이상해요 썩었어요라고 말했다. 얘는 여자애인데 힘이세요 얘는 남자애인데 잘 울어요 같은 이야기를 놀리듯이 말하는 것과 같았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를 때, 생각한 것과 혹은 대부분의 '보통'이라는 것과 다를 때 아이들은 잔뜩 움츠러들었고 여과 없이 비난하듯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청년여성이 농사를 지을 때, 여성스럽다는 기준을 벗어나 힘이 세거나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할 때, 남들과 다른 삶의 가치관을 드러낼 때 내가 겪은 일과 다르지 않았다.
텃밭에서 다양한 작물들을 심는 건 그 다양성 덕분에 내가 누리는 직접적인 풍요로움과 그 덕분에 지속가능하게 살아온 농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일찍 드는 논감자는 풋것으로 감자밥을 해 먹고, 흰 감자 중에서도 분질감자는 포근하게 쪄먹기 좋고 점질감자는 반찬을 해 먹기 좋다. 그렇게 다양하게 심으니 어느 해에 감자가 덜 들더라도 아예 못 먹게 되는 일이 적어진다. 이는 감자도 내게도 이어지는 지속가능성이다.
그 지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아이들은 늘 다름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낯설어했다.
씨앗을 만났을 때는 그 일이 더 두드러지고는 했다. 감자를 늘 먹어왔어도 감자씨앗이 어찌 생겼는지 모르는 이가 많고, 토마토를 늘 먹어왔지만 토마토 씨앗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보다 다른 이들의 말과 생각을 가지고 오고, 정작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를 표현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다 보면 교육 늘 통해 세워져야 할 '자립' 나를 세우는 일이 줄어들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고 힘들어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그것은 때로는 고집스럽지 않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세상을 한결 다채롭게, 안전하게 살아가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텃밭에서는 모두 스스로가 정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작은 문턱이 되어 이미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경계가 되는 것이 불편했다.
호칭을 넘어 서로 배우는 것을 모두 안다지만 중요한 가치와 이상은 멋들어진 문장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 구체적인 방법과 실천으로 실현된다고 생각했다.
이슬선생님, 이슬쌤, 텃밭쌤이 아닌 '이슬'로 불러달라고 했다.
텃밭에서는 빨간 토마토도 노란 진안토마토도 여러 가지 용도가 좋은 수미감자도 할머니들로부터 내려온 눈이 많은 논감자도 각자의 꼴로 자라 모두 소중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배워야 했다.
교육은 때로 스스로 깨쳐야 하는 일인데도 교육의 주체인 아이들이 배제된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옳고 그름과 함께하는 방식을 가르치기 위해 앞서 나가며 크게 쟁기질을 해줘야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칫 욕심부리다 과하게 거름을 더해주기도 하고 이미 살고 있는 생명들과 그 관계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과 같다.
대안학교를 다니며 실험적인 환경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때로 어릴 때니까 이런 풍성한 경험을 가지고 이내 경쟁사회로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나 역시 아버지 할머니의 기대로 자라지 않아 서로가 힘들 때가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만나기에는 끊임없이 경쟁하지만 함께 살아내는 각자의 존재를 만나는 텃밭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말,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것 무엇이든 좋아요. 앞으로 텃밭에서는 별명을 부를 거예요.
이름은 누가 지어줬을까? 맞아요. 가족들이 선물한 멋진 이름도 좋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내가 정해보는 거예요.
간혹 나는 브로콜리인데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너는 토마토야! 할 때도 있어.
너는 토마토잖아. 얼른 빨간 토마토를 줘!라고 그럼 브로콜리는 마음이 어떨까?!
아니 나는 브로콜리라서 토마토를 줄 수가 없는데?! 브로콜리가 갑자기 토마토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는 나만 결정할 수 있어. 그러니 내가 누구로 불릴지 내가 결정해 보자.
별명을 짓고 나서는 친구가 정한 별명을 부르고 인형을 주고받는 놀이를 했다. 텃밭시간에 자연스레 그 별명으로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 텃밭에 가기 전에 부러 여러 번 놀이를 통해 연습했다. 그 놀이의 이유는 단순히 친구의 별명을 기억하기 위한 게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연습이었다.
별명을 정했어?! 돌아가며 들어보자.
친구들이 웃어대는 게 좋은 아이들은 코딱지나 손가락, 혹은 게임 캐릭터 같은 별명을 정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고기를 먹을 때 기분이 좋다고 고기라고 불러주길 바라는가 하면 텃밭에서 불릴 별명으로 바람, 해님, 이상한 토마토나 까마중처럼 텃밭에 있는 것들로 별명을 정하기도 했다.
친구의 별명을 잘 기억하고, 별명을 부른 뒤 그 친구가 받을 준비가 되면 인형을 던져주는 거야.
'나는 이슬입니다.'
'나는 코딱지입니다.'
'나는 브로콜리입니다.'
친구가 내가 누구일지 결정했다면 우리는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자.
그러니 마음대로 바꿔 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불러주자.
인형 던지기 놀이는 그런 연습을 하는 거야.
때로는 장난처럼, 약속은 오간데없이 한바탕 난리를 치게 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며 인형을 던지는 단순한 놀이를 아주 좋아했다. 한 개만 주고받던 인형이 두 개, 세 개 동시에 불려지고 던져지 고를 반복하니 한바탕 신나는 놀이가 되었다.
서로 그렇게 놀이로 별명이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매번 인형 던지기 놀이를 하기 전과 후에는 이 놀이를 왜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짚어주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는 누가 결정해요?
나! 요
나만이 내가 어떻게 살지 누구일지 결정할 수 있어요.
그렇게 내가 결정한 만큼 다른 친구들이 결정한 걸 지켜줄 거예요.
우리는 왜 그렇게 정했는지 서로 궁금해하고 들어보고 나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불러주는 일은 친구의 결정을 지켜주는 일이고, 우리는 그 연습을 하려고 이 놀이를 하는 거예요.
텃밭에서 만나는 다양한 작물들, 만나지 못했던 식물의 온전한 한살이 이전에 우리는 서로를 통해 다름을 만난다. 그렇게 다름을 만나는 일이 불편하고 차별받는 경험이 아니라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나누고 싶었다.
다름을 존중하는 방식,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여러 방법이 있다.
그러나 아 빨간색이야? 나는 노란색이야 하는 것으로는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평화롭게 존중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존중'이 새겨지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어떤 빨간색인지, 어떨 때 더 붉어지는지, 내가 가진 노란색과는 어떻게 달라서 빨간색인지
묻고 답하고 부딪히고 받아들이며 더 붉어지고 더 노랗게 색이 두드러지는 과정이 그렇게 서로의 색을 주고받아 더 붉고 노랗게 물드는 것이 다름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닐까.
텃밭에서 '이슬'로 불러 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참이슬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결정을 존중해 주자 하는 배움에서 벗어났다거나 어른에게 지켜야 할 선을 넘어 버릇없게 키우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이 들었다.
간혹 학부모님을 만나게 되면 아이가 이슬이슬! 하고 이야기해서 깜짝 놀라 아이를 혼냈더니 이슬이 그렇게 불러달라 했다는데 사실이냐, 왜 그렇게 하느냐 하고 걱정 어려 묻는다.
텃밭에서 서로 배우는 관계를 위해, 단어하나에 작은 문턱 때문에 쉽게 느끼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질문했으면 좋겠어서 문턱을 없앴다고 설명드렸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함교에서 집에서 함께 지켜야 하는 사회의 약속들을, 그 너머 나다워져도 되는 시간과 공간을 아이들과 함께 잠깐의 텃밭시간에 만들 뿐이다.
설명하지 못한 한 가지. 사실 교육적 설계 같은걸 너머 아이들과 내가 온전히 친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13년 농사지으며 당연해지던 것들을 아이들은 내게 질문으로 그 놀라움을 다시 만나게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으레 어떤 활동을 해야겠다 하고 싸들고 가면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아이들은 다른 활동을 그 자리에서 펼쳐내기도 한다.
그렇게 처음에는 조금만 힘이 들면 이슬 이거 해줘라고 말하다가 시간이 더해지면 외려 이슬 이거 어떡해 해? 하고 더 지나면 이슬 이거 내가 해줄게!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채워지기까지 아이들은 선생님으로 나를 대하는 게 아니라 이상한걸 많이 알고 있는, 농부인데 젊고, 여자인데 힘도 세고 목소리도 굵고, 긴 머리에 앞치마를 했지만 팔뚝에는 모닝빵 같은 알통을 가진,
우리와 가장 다르지만 그게 그냥'이슬'인 친구로 만난다.
그 덕에 서로에게 처음 만나는 '다름'들을 선물하는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