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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pr 21. 2024

미아리 고개에 깃든 한의 정서

이해연 '단장의 미아리 고개' (1956)

 '미~아리 눈물 고개~'로 시작하는 절절한 노래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2019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에 출연한 가수 송가인이 불러 2020년대에 다시 한번 회자된 곡이 있습니다. 1956년작 '단장의 미아리 고개'인데요. 제목의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슬픔은 얼마나 큰 슬픔일까요? 분명한 것은 차마 글로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곡은 한국 전쟁의 처절한 이별과 아픔을 노래로 담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입니다.


(좌) '단장의 미아리 고개' 앨범 커버와 (우) 현재의 미아리 고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한국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아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고, 수백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기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은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미아리 고개는 한국 전쟁 당시 서울의 마지막 방어전이 펼쳐졌던 미아리 전투가 일어났던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과의 이별의 장소로 기억된 고개입니다.


KBS1 가요무대 중 이해연 '단장의 미아리 고개' (1988)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1956년 작사가 반야월과 작곡가 이재호가 만들었으며, 가수 이해연이 부른 곡입니다. 가사를 쓴 원로 가수 겸 작곡작사가 반야월은 인민군이 서울을 포위하자 급히 피란을 떠났다가 9.28 수복 이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 5살 난 어린 딸은 아내와 미아리 고개를 넘다 화약연기와 영양실조로 사망하여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어린 딸을 잃은 이별의 슬픔을 절절하게 그리며 노래의 가사를 쓰며, 듣는 이들에게 당시 전쟁으로 인한 이별의 깊은 슬픔을 전해줍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하오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간주에는 노래를 부른 이해연이 내레이션을 녹음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세요
어린 용구는 오늘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에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 오세요
네 여보 여보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전쟁 직후 1956년에 발매되면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곡이지만, 1983년에 다시 한번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1983년 KBS1에서 방송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헤어진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방송을 통해 재회했고, 7월 30일 이산가족 3000 가족 상봉 기념으로 진행된 '잃어버린 30년 되찾은 30년' 특집 방송에서 가수 김연자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부르며 전 국민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KBS1 '잃어버린 39년 되찾은 30년' 특집방송 중 김연자 '단장의 미아리 고개'


 트로트 노래 중 하나를 넘어서, 분단된 민족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그리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한국 전쟁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과거를 회상하고, 잃어버린 가족을 그리워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노래로 하여금 전쟁이 남긴 아픔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들으며, 다시는 이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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