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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Sep 02. 2021

EP2. 바티칸시국의 가이드

강렬했던 그 남자의 기억

  쌍꺼풀 없는 찢어진 눈, 검게 그을린 피부, 일정한 두께로 성의 없이 밀어 버린 듯한 짧은 머리, 매서운 눈빛과 시종일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바티칸에 대해서 설명하는 모습은 마치 시범을 보이는 숙달된 조교의 그것같았다.


바티칸에서 많은 예술품을 구경했지만 그것들보다 가이드가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혀있다. 유로 자전거나라를 통해서 바티칸 전일 투어를 예약했는데, 현지 가이드로 내 또래의 젊은 가이드가 배정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가이드의 인적인 이야기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게임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왔다가 너무 좋아서 눌러앉아 가이드가 됐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만난 그 어떤 가이드보다 열정적이었고 이탈리아 역사 예술 지식해박했다. 당시 나도 이직을 여러 번 했던 터라 회사를 그만두고 적성을 찾는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보다 그것을 설명한 가이드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니 아이러니하다.

 

사진 속에서 가이드 연락처와 블로그 주소를 발견했다. 우리가 길을 잃을 때를 대비하여 비상연락망본인의 연락처를 사진으로 찍어두라고 했다. 혹시나 해 사진 속에 있는 블로그 찾아봤다.


6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 전문 가이드가 되어 있었다. 구독자 2만 명이 넘는 유튜브를 운영하, 이탈리아 전역을 아우르는 관광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인과 결혼하여 '이태리 부부'라는 브랜드로 활동하는 중이다. 더 놀라운 것은 2020년부터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 매거진도 발행하고 있다는 것.

유로 자전거 나라 바티칸시국 가이드(2015)


신념에 가득 찬 청년은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당시 나는 어느 정도 그를 얕잡아 본거같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가이드'하다니 그걸로 먹고살수 있을까? 잠깐 여행 좀 하다가 한국 돌아와서 현실의 벽에 부딪히겠지... '라고  말이다.(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먹고사는것에 집착했다.)


이탈리아 전문 가이드가 되고 싶다던 그는 오래전에 내뱉은 말대로 되어있었다. 카페에는 수백 개의 이탈리아 관광 정보가 업로드되어 있으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베네치아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국내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 여러 번 이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직장은 밥벌이일 뿐이.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가 부러웠다. 언제가는 다시 이탈리아 가이드를 부탁하고 싶다.


바티칸 박물관에 유명한 예술품들이 많다. 그리스도의 변용, 라오쿤 군상, 아테네 학당,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등 거장들이 목숨을 빚어 만든 작품들이다. 바티칸에 가면 꼭 한 번은 봐야 할 법한 명작들이다. 그런데 이런 유명 작품보다 가이드가 가장 좋아한다던 요한 벤젤 피터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각난다.

Adam and Eve in the Garden of Eden

바티칸의 작품 관람 순서는 대부분 회화관-조각관-지도의회랑-시스티나 소성당-라파엘로의 방 순서인데 처음에는 화려한 작품에 압도되었다가 서서히 익숙해진다. 그리고 급기야 방대한 양과 압도적인 색채에 피곤해진다. 집중력 서서히 흐려질 때쯤 마지막 방에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작품이 걸려있는데, 이 그림은 낙원(에덴동산)에 온 듯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준다. 중앙에 인간 커플은 자연 앞에 수많은 동물들 중 하나일 뿐이며,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도 중 하나일 뿐이다. 이좋게 모여있는 동물들 너머로 산과 구름이 아름답게 흘러간다. 자식들이 바티칸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다른 작품보다 이 그림 감상을 꼭 추천하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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