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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Sep 07. 2021

EP4. 이탈리아 남부 환상투어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포지타노

  여행 삼일차 오전, 우리는 로마에서 포지타노로 가는 전세버스에 앉아 있었다. 전날 무리해서 바티칸 시국과 로마를 둘러본 덕분에 아내의 다리는 퉁퉁부어있었다. 우리는 걷는 데이트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따금씩 아내의 종아리를 마사지 해주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아이고 남사스러워레이 쟈들 뭐꼬?"

"남사스럽게 주물락 주물락 거리는 것좀 보소, 어이구?"


경박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전세버스 뒷좌석에서 울려 퍼졌다. 남편인지 애인인지 모를 옆자리의 중년 남성한테 하는 말이다. 중년 여성은 내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또다시 얘기했다.


"아따마 내도 다리가 아픈데, 좀 주물러보쇼"


중년 여성은 마치 텅 빈 극장에서 '방백'중인 한물 간 배우 같았다. 유일한 청중은 옆자리의 중년 남자, 그는 결국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시달리다 못해 원치 않은 마사지를 간헐적으로 해야 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킨 채 조용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중년 커플이 투닥거리는 사이 버스 창밖으로 눈부신 지중해와 깎아지는 절벽 위 해안도로가 빠르게 지나가는 중이었다.

아말피 해안 도로

바티칸에 이어서 이틀간의 일정도 유로 자전거나라의 '이탈리아 남부 환상 투어'를 선택했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이탈리아 남부는 한국인 가이드와 전세버스가 있는 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코로나 전까지 인기있는 관광상품임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남부를 검색하면 한국사람들 죄다 이 투어를 선택한 것 같다.(지금은 여행지 순서가 반대로 바뀌었다.) 유사한 일정에 심지어 구도까지도 비슷한 사진들이 블로그에 널려 있다. 그래도 가이드는 친절했'이탈리아 남부 환상 투어'는 이름처럼 '환상적'이었다. 이탈리아 남부를 처음 간다면 추천할만하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소렌토 전망대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쏟아냈다. 가이드는 간단한 설명 후, 익숙하게 사람들을 줄 세우고 차례차례 사진을 찍어주었다. 쏘렌토 전경은 끝내줬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쏘렌토 전경

지금도 정규 음악교육과정에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배우는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 열심히 부른 기억이 있다. 이 노래는 아름다운 가사와 달리 정치인에게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 1900년대 이탈리아 수상이 소렌토 지역을 방문했을 때 시장이 우체국 건립을 요청했고 수상이 약속하자, 작곡가를 불러 노래로 만들라고 했다.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가사는 연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상에게 고향과의 약속 지키란 의미였다.


쏘렌토 전망대를 지나 포지타노에 버스가 섰다. 포지타노는 예쁜 원색의 건물들이 제비집처럼 경사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과 레몬 내음, 따사로운 햇볕, 관광객을 반기는 작은 상점 주인들까지도 사랑스러운 마을이다. 지중해의 보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마을은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이기도 한데, 그들이 왜 좋아하는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가이드는 몇 가지 상점과 식당을 추천해주곤 반나절동 자유시간을 주었다.

  

비탈진 마을 상부에서 시작하는 작은 길을 따라 걸어내려 가면 특산물인 레몬 사탕을 파는 상점부터 레몬이 그려진 작은 그릇을 파는 상점까지 원색의 건물들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다. 실컷 상점 구경을 마치고 몇 가지 기념품을 사니 허기가 졌다. 일단 가이드가 추천해준 식당에 갔다. 해변보다 살짝 높은 지대에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창밖으로 지중해가 보이는 테이블을 본 순간 여기서 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포지타노 Buca di Bacco 식당

옆 테이블의 노년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하얗다 못해 은색 빛의 반짝이는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 노년의 백인 부부는 다정했다. 천천히 우아하게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해산물 파스타가 나왔다. 이 역시도 매우 짰다. 해산물과 넓적한 파스타면으로 조리된 파스타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문 실수였다.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면 해산물 튀김요리나 일반적인 파스타 요리가 맛있어 보이던데, 나는 왜 그랬을까.


아말피행 배를 기다리는 선착장 근처 가게에서 레몬 셔벗을 먹었다. 커다란 통 레몬의 속을 파고 그 안에 레몬 셔벗을 가득 채운 뒤 뚜껑을 닫아 언뜻 보면 그냥 레몬처럼 보였다. 냉동실에서 갓 꺼낸 듯 겉에는 살얼음이 서려 있었다. 한 숟갈 퍼먹으니 새콤하고 시원한 게 아까 먹은 파스타의 짠맛과 더위가 싹 가셨다. 지금도 여름철이면 가끔 생각날 정도로 맛있었다.


포지타노가 작은 어촌마을이었다면 아말피는 중소도시같았다. 건물도 훨씬 큼직큼직하고 골목길도 상대적으로 넓었으며, 선착장, 주차장 등 규모가 제법이었다. 아말피에 비하면 포지타노는 귀여운 느낌이랄까.  

아말피 전경(좌),  가판대에 진열된 레몬제품들(우)


아말피 역시 아름다운 마을이였지만 포지타노만큼 감동을 주지 못했다. 짧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취향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레몬으로 만든 상품은 질린 상태여서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마을 내부보다 배를 타고 아밀피에 접근하며 보았던 아치형 다리,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 반대편 지중해에 돛이 여러개 달린 중세양식의 범선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말피까지 투어를 마치고 배를 타고 살레르노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해풍이 세게 불어닥치는 와중에도 배위의 관광객들은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배를 타고 이탈리아 남부를 누비는 경험은 특별했다. 그 기억을 오랫동안 되새김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동선 : 로마 - 소렌토 전망대 - 아말피 해안도로 - 포지타노 - 아말피 - 살레르노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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