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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Sep 10. 2021

EP5. 폼페이, 박제된 도시

손님을 맞이하는 석고상들

  폼페이, 그곳은 마치 회색과 붉은색 벽돌이 뜨문뜨문 떨어져 있는 황량한 사막 같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강렬한 태양광선 아래, 그늘 한점 없 고대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은 고된 일이었다. 고대 도시의 신비, 유적지에 얽혀있는 역사 등등,  가이드가 설명하는 내용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선글라스와 버프로 무장을 해도 느껴지는 강렬한 햇볕 때문이다.


2000년 전, 폼페이는 10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생긴 화산재로 도시 전체가 여버렸다. 폼페이는 휴양지이자 상업, 항구도시였다. 당시 로마보다 향락에 앞섰던 폼페이 시민들은 미래의 사람들에게 '관광'당하게 될지 랐을 것이다.


훗날 대한민국 강남, 이태원, 캐리비안베이(?) 같은 곳이 화산재에 덮이고, 2000년 후 사람들이 보면 이런 느낌일까?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이렇게 기억할까? 이런저런 망상을 하며 가이드 뒤를 따랐다.


폼페이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웅크려 있는 사람(석고상)

발굴된 유물 보관 중간웅크리고 있는 사람이다. 여행 당시 '사람 화석도 많이 발굴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화석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석고상이다. 화산 폭발 당시 웅크리고 있던 사람에게 뜨거운 화산재가 덮치고 육신은 부패되어 없어지고 텅 빈 공간만 다.


석고상으로 만들게 된 유래가 재밌는데, 1860년대 발굴 책임자가 건물이나 도로, 물건 등의 보존상태는 매우 좋은데, 사람의 흔적이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겼다. 그 후 건물마다 발견되는 빈 공간에 의문을 가지고 석고를 부어보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웅크린 사람'은 사람이었다가, 빈 공간으로, 빈 공간에서 사람의 손에 의해 다시 석고상으로 태어나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폼페이 은 그렇게 유물 보관함 창살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당시 폼페이 시민들의 양식을 보았다.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 집약되어있는 도로, 대중목욕탕, 대부호의 집, 검투사 훈련소, 대중목욕탕, 술집(Bar), 창녀촌, 원형극장 등이었다. 그중 몇 가지가 재밌다.


폼페이 초호화 대중목욕탕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여러 가지 조각이나 사치스러운 대리석 분수 꾸며져 있다. 재밌게도 채광창에 빛이 들면 벽면 속의 남자가 보인다.

대중목욕탕 채광창 아래 벽면 부조


빛이 들어야만 볼 수 있는 아저씨를 왜 여기다가 새겨놓은 것일까? 만약 내가 거기서 목욕한다면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물에 신 포세이돈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물의 신의 가호를 받으면서 목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창녀촌으로 가는 방향이 도로에 표시되어 있어요."

도로에 새겨진 남자성기(창녀촌 가는 방향 표시)

가이드가 마시던 생수를 갑자기 바닥에 뿌리자 남성의 성기 모양의 폼페이 최첨단 표지판(?)이 드러났다. 로마시대 성은 문란하기로 유명한데, 폼페이도 마찬가지였다. 젖어야 드러나는 표식이라... 중의적이다. 폼페이 시민들이 의도한 유머인지, 당시 표준 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성기가 향한 방향을 따라가면 창녀촌이 나온다.


폼페이는 14세기에도 고대 유적이었다. 그리고 21세기인 지금도 고대 유적이다.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은 여전히 이 고대 유적을 발굴하고 있으며, 당시 생활상을 파악하기 위해 력하고 있다.

드로잉 중인 고고학자

폼페이 원형극장은 로마에서 실컷 보고 온 터라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검투사 훈련소잔디가 없는 맨바닥으로 나오는데, 지금은 곱게 잔디가 깔려 있다. 어떤 버제대로 된 고증일까.


빈 중앙광장, 드문드문 남아 있는 거대한 기둥 너머로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을 보며  화산이 폭발했을 때 남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피하였지만 대략 1-20% 정도는 폼페이에 남아 석고상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화산 폭발이 무섭지 않아서? 노예들이 남은 것일까? 고향을 떠날 수 없었을까? 어떤 이유 든 간에 남은 사람들은 석고상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는 그 신비로움보다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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