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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Sep 22. 2021

EP8. 피렌체의 밤

집시밴드 'Rom Draculas trio'를 만나다.

 여행 5일 차, 테르미니역에서 트랜이탈리아를 타고 피렌체 역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트랜이탈리아는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하거나 출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꼭 그런 친구들이 있다. 약속시간에 항상 늦거나 갑자기 약속시간을 바꾸는 친구. 얄밉지만 손절하기 애매한 친구, 트랜이탈리아는 그런 친구였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숙소 체크인을 하고 시내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버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명품 아웃렛 매장 '더 몰'로 갔다. 양가 주요 인사들의 기념 선물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유서 깊은  예술품만큼이나 더 몰이 유명하다. 비싼 명품을 절반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계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데, 그날따라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더 몰은 마치 중국인들에게 점령당한 것 같았다. 어찌나 중국인들이 많은지 여기가 이탈리아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중국 관광객들은 매장 점원이 말리는데도 물건들을 진열장에서 마구 꺼내서 만져 보기도 하고 큰소리로 쩌렁쩌렁 울리게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매너는 정말... 대단했다. 결제를 위해서 줄을 서있는 동안에도 뒤에 서있는 중국인 아저씨가 내게 자꾸 말을 걸어서 "노 차이니즈"만 몇 번 말했는지 모르겠다. 내 외모가 중국스러웠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몰 보다 피렌체 미술관이나 시내를 한번 더 둘러봤으면 좋았을 것이다. 명품 아웃렛은 내게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했다. 국내에도 훌륭한 아웃렛이 많은데, 굳이 피렌체까지 가서 할만한 경험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좋은 경험일지도 모른다. 혹시 다음에 피렌체를 갈 일이 생긴다면 더 몰은 안 가봐도 될 테니까.




  더 몰에서 쇼핑을 하고 세금공제(텍스 리펀)를 받고 피렌체로 돌아오니 저녁시간이었다. 저녁 먹을 새도 없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피렌체의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피렌체의 밤은 황홀했다. 하얀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은 어둑어둑해지자 새하얀 자태를 뽐냈고 광장, 거리 골목마다 거리의 악사들이 흥겨 음악을 연주했다.


피렌체에는 유명한 집시밴드 '롬드라큐라스(Rom Draculas)'가 있다.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기타 이뤄진 3인조 밴드다. 한국인 관광객 '최진혁'씨와 즉흥적으로 연주한 'Atumn Leaves'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무려 2,100만 뷰가 넘는다.

 https://youtu.be/7t3xBqAWLaU


최진혁 씨는 신혼여행 중에 아내와 싸우고 따로 다니던 중에 아내가 '여기 콘트라베이스가 있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어'라전화 받 롬드라큐라스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연주를 구경하다가 본인도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라고 하자, 바이올린 연주자가 즉석 연주(JAM)를 제안협주를 하게 됬고 한다. 그리고 아내가 휴대폰으로 촬영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영상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연히 일어난 즉흥적인 사건들의 연속이 만들어낸 하모니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같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만나고, 자연스럽게 서로 리듬을  교감 즐기는 모습행복해 보인다.


광장에서 공연중인 집시밴드 롬드라큐라스

영상이 뜨기 5개월 전, 2015년 5월에 나도 그 밴드를 만났다. 밴드 오른쪽 편, 아저씨가 흥에 겨워서 춤을 추고 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롭게 춤을 추는 모습이 웠다.


지금도  나피렌체 하면 붉은 지붕, 미술품 등 보다 롬드라큐라스의 흥겨운 재즈음악이 먼저 떠오른다. 피렌체를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골목골목에서 그들의 음악을 들어봤을 것이다.


흥겨운 음악을 뒤로 하고 시내를 걷다 보면 피렌체 대성당이 나온다. 거대한 붉은색 돔을 이고 새하얀 대리석 벽체와 조각으로 마감된 아름다운 건물은 멀리서 부터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얀색 대리석검푸른 밤하과 대비되어 빛을 뿜어는 듯했다.


아내와 나는 대성당과 주변 거리를 한참을 구경하다가 근처 와플가게에서 와플을 사 먹었다. 여기서 아내와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저녁 때문이었다. 아내가 먹고 싶어와플의 크기가 꽤 커서, 저녁 이걸로 때우자고 말한 것이 사달이 났다. 

피렌체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베끼오 다리(전경, 내부)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아낄 겸 저녁 한 끼 정도는 와플로 간단하게 넘어가자고 했다. 당시 여행을 가볍고 때로는 조금 배고플 수도 있는  배낭여행같이 생각했는데, 아내 입장 에서는 인생 한 번밖에 없는 신혼여행이니 좋은 숙소와 음식을 기대한 것이다.


아직도 아내는 피렌체 와플 사건(?)을 종종 입에 올린다. 내가 너무 지독 했다고... 말이다. 나는 항상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는데 미안해.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예산이 빠듯해서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실제로 많이 반성하고 있다. 어쨌거나 인생에 단 한번뿐인 신혼여행이지 않은가.


화가 난 아내를 달래며 베끼오 다리를 건넜다.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베끼오 다리는 14세기에 건설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다리 위에 상점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것이 이색적인데, 면세였 때문데 꽤나 인기가 있었다 한다. 처음에는 정육점있었는데, 악취로 쫓겨나고 귀금속 상인들로 채워졌다. 내가 갔을 때는 늦은 시간이라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잔잔한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끼오 다리는 고즈넉했 어디선가 또다른 밴드의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선 : 로마 - 피렌체 숙소 -더 몰 - 피렌체 대성당, 베키오 궁 - 베키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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