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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Sep 16. 2021

EP7. 바람은 고요히, 산타 루치아

안녕. 나폴리

  감브리누스 카페에서 달고 쓴 스트라파차토를 한입에 털어놓고 가이드를 따라갔다. ‘움베르트 1세 갤러리’ 복합쇼핑몰에서 ‘스폴라루체’(조개빵)를 아내에게 사줬는데, 사실 나는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아내의 반응이 재밌어서 아직도 기억난다.


"음~~ 너무 맛있다."

그녀는 별거 아닌 작은 빵을 한입 베어 물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사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두발로 방방 뜨며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절을 했다.


아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취향이 소박하다. 달콤한 과자나 초콜릿, 빵, 작은 인형, 오르골 따위를 좋아한다. 그날, 빵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내의 표정은 선명하다.


쇼핑몰을 나와 '스파카나폴리'로 향했다. 스파카는 '자르다'라는 의미인데, 길고 좁은 길이 나폴리 구도심을 반으로 가른다. 위에서 보면 마을 전체가 절반으로 잘린 모양이다. 골목 양옆으로 아파트며 상점 등이 밀집되어 있어 유럽 특유의 번잡한 느낌이다.

스파카나폴리

그 작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지중해가 보인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비릿한 바다내음과 갈매기가 내는 소음, 뜨문뜨문 떠있는 작고 하얀 배들이 보인다. 비릿하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해변가 도로를 걸었다. 아름다운 항구가 보인다. 산타루치아 항구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불러 봤을 노래 '산타 루치아' 에 그 아름다움이 잘 묘사되어 있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아름다운 동산 행복의 나폴리
산천과 초목들 기다리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 나폴리 민요, <산타 루치아>

교과서 버전 가사는 직역과 조금 차이가 있지만 우리 정서에 더 잘 맞게 번역됐다. 산타루치아 항구는 바람은 고요히, 아름다운 동산의 나폴리였다.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릴만 했다.


산타루치아 항구를 바라보며 해변가 도로 하염없이 걸었다. 하얀색 돌로 만든 '거인의 분수'를 지나쳐 걷보면 누런색 성이 보인다. 오보성(달걀 성)이다. 마침 로마행 버스를 타기 전까지 여유시간이 있어서 성을 둘러봤다. '오보'는 성을 지을 때 시인이자 마법사인 비르질리오가 깨뜨리면 재앙이 온다는 '달걀(Uovo)' 묻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산타루치아 항구

오보성 전망대에서 지중해와 산타루치아 항구를 제대로 감상했다. 멀리 있는 배수비오 화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해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지중해는 더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바람도 더 청량했으며, 산타루치아 항구에 정박된 배들이 더 많이 보였다. 오보성을 가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다.




저녁 늦은 시각, 로마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피렌체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에서 몇 시간만 쉴 수 있었다. 굳이 비싼 숙소에서 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저렴한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그 아파트는 독특했다. 4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문이 자동으로 닫히길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주인과 통화를 하고 나서야 문이 수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숙소는 꼭대기 층이었는지, 나무로 된 지붕의 속살이 다 보였다. 겉모습과 다르게 따뜻한 조명과 인테리어가 아늑했다.


집주인은 금발에 화려한 외모를 한 수다스러운 40대 여성이었다. 식료품 배달원과 함께 나타나서 물건을 내려놓으라고 지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과도하게 환대했는데, 아내한테는 너무 날씬해서 좋겠다며 칭찬을 해주고 나에게는 이탈리아 전통술이라며 레몬술을 선물로 줬다. 맞춤 서비스가 대단했다.


저녁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식품을 먹기로 했다. 미리 집주인에게 허락도 받고, 전자레인지로 데우고 나서 개봉을 했다. 잠시 후 그녀는 이게 무슨 냄새냐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달라고 방을 찾아왔다(집주인은 옆방에서 살고 있었다. 거실을 같이 공유하는 상황). 여러 모로 민망했다.

로마, Bed & Breakfast 에어비앤비 숙소

여행 중에 나와 아내는 누가 먼저 곯아떨어지면 사진을 찍어서 전리품으로 남기는 장난을 쳤다. 이날 내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 위에 쓰러져 자고 있는 사진이 있는 걸로 봐선 내가 졌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나폴리 여행여운을 곱씹을 새도 없이 그렇게 끝났다.




<동선 : 움베르트 1세 갤러리 - 스파카 나폴리 - 오보 성 - 산타루치아 항구- 로마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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