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시도

by 엣지있는 김작가


큰언니 집으로 올라온 나는 당장 일을

구하기 어려웠다.


언니는 화성시청 근처의 외진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주변엔 허허벌판뿐이라 일할 곳이 없었다.


버스도 시청까지만 다녔고,

언니 집에서 정류장까지는 20분이상 걸어야 했다.

작가 일을 할 때도 일이 늦게 끝나면

형부가 데리러 오거나,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했다.


그 동네 택시는 독점이라 무섭기도 했고,

요금은 늘 바가지였다.


그 시절의 나는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그 무렵, 아빠가 우리를 찾아온다는 연락이 왔다.

외국에서 지내던 아빠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큰언니 집에서 마주한 아빠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보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며칠 후, 엄마에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빠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우리 가족이 다시 함께 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깊은 새벽, 모두가 잠든 거실에서

소리 내지 못한 울음을 삼켰다.


그렇게 며칠을 울던 어느 날,

삶이 너무 버거웠다.

모든 게 끝나버린 것 같았다.


그날 새벽, 형부의 넥타이를 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래, 더는 미련 없어.”

꿈을 이뤄도, 결혼을 해도

이제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산에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그 존재조차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내 죽음을 통해서라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주길 바랐다.


죽음을 마주한 그 순간,

무섭다는 생각보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언니들.”


죽음의 문턱 앞에서 떠오른 언니의 임신.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때였다.


언니는 4번의 유산 끝에 첫 아이를 가졌다.

언니의 옆엔 항상 내가 있었고,

난 언니가 회복을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일 아침, 내 모습을 보고 뱃속의 나의 첫조카가

잘못되진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뭐라고.. 나로 인해 언니가 아픔을 겪는건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죽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날 나는 주저 앉아 눈물을 쏟으며

죽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는 것 보다는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