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을 때, 현관에 대표가 서 있었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자,
그는 거실 의자에 털썩 앉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편의점 가서 소주 좀 사다 줘.”
상황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지쳐 보여 아무 말 없이 법인카드를 들고
오피스텔 안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소주 두 병을 사와 건네자
그는 바닥에 앉아 술을 따르고, 이내 눈물을 보였다.
“사실 너 들어오기 전에 비서가 한 명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막장 드라마 같았다.
“그 아이가 오늘 자살시도를 했어.”
순간 귀를 의심했다.
죽지는 않았지만, 골반뼈가 으스러지도록 크게 다쳤다
며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이 얘기를 왜 새벽에, 나한테 하는 걸까?’
애가 셋이나 있고 멀쩡한 아내도 있는 사람이
왜 이런 이야기를 새벽에 나눠야 하는 건지,
속으로 짜증과 한숨이 밀려왔다.
그날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에서 술을 마셨고,
나는 듣기 싫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야 했다.
‘아… 인생 왜 이렇게 꼬이냐, 진짜…’
며칠 뒤,
그 내연녀는 다리에 장애를 얻게 되었고
대표는 차를 사줘야 한다며 나에게 서류를 챙기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진저리치게 현실이 싫어졌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나는 내 일이나 잘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이 끝나면 카페 알바를 하고,
알바가 끝나면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며 웃었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 있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토목과를 다니며 취업 준비로 바쁜 그 사람,
장거리 연애로 자주 볼 수도 없었다.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그와의 거리도 함께 멀어졌다.
남자친구는 나와 결혼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나를 이렇게 외롭게 한다면 미래에 니 옆엔
내가 없을거라고 그렇게 난 이야기했다.
“우린 여기까지 인거 같다. 나는 현재가 중요한
사람이야.취업 준비 열심히 해서 꼭 좋은 직장
구하길 바랄게. 미안해.”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그는 2년 동안 술만 마시면 전화를 걸었다.
“니가 했던 말, 이제야 알 것 같다.
한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없을까…”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식어버린 뒤였다.
그렇게 연애가 끝나고,
나는 카페에서 새로 만난 사람과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평범하고 다정한,
내 나이 또래의 남자였다.
그와 함께 웃고 있을 때면
세상의 무게가 잠시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평온은 늘 오래 가지 않는다.
대표는 여전히 예고도 없이
주말 새벽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나는 일부러 남자친구에게
주말 아침엔 내 집에 와 있으라고 부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가 말했다.
“우리, 1박 2일 출장 가야 돼. 영주에 있는 양계장인데
너도 매일 통화하는 분이고 하니 가서 인사도 드리고
어떤 곳인지 한번 봐야지~”
굳이? 내가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때 든 생각.
‘… 왜 불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