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직감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대표와 함께 떠난 출장.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긴 했지만, 차에 타는 순간부터 마음 한구석이 계속 저려왔다.
가까이에서 말을 섞기 싫어 가는 내내 자는 척만 했다.
목적지는 경상북도 영주시.
도착 후 양계농장을 둘러보고 저녁 식사 자리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처음 과장님을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마치 내가 이전 비서의 빈자리를 채우는
또 다른 사람인 것처럼.
불쾌하고, 짜증스럽고, 그냥 모든 게 부담이었다.
‘이 일… 오래 못하겠다.’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었다.
저녁을 마치자마자 대표에게 먼저 말했다.
“저는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내일 다시 농장으로
갈게요.”
그리고 바로 택시를 탔다.
낯선 도시의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분당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대표가 점심을 먹자며 불러냈다.
불길한 예감은 늘 맞았다.
“오늘까지만 일하고 그만 나갔으면 좋겠다.”
“네??”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사무실에 남자친구 부르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에이그, 그러길래 왜 그랬어.”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누구 때문에 남자친구를 불렀는데.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이렇게 정확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모멸감이 훅 올라왔다.
하지만 이 사람 밑에서 계속 버티는 게 더 끔찍했다.
급여를 많이 준다 한들, 매일 불안에 떠는 삶이
정상일 리 없었다.
“그럼 오늘 일까지 정리하고 나가겠습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마음만은 후련했다.
대표는 그 후에도 연예인과 사귀었다는 둥,
음주운전 후 도주했다는 둥 기괴하게도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들을수록 역겨웠다.
표정관리조차 되지 않을 만큼.
그만둔 후 들은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내가 나간 뒤 들어온 여직원과
또 바람이 나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얘기.
지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 사람 아내와 아이들이 불쌍할 뿐.
‘그만두길 정말 잘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
다시 갈 곳이 없어진 나는 큰언니 집으로 들어갔다.
그 즈음 언니의 시누이가 구몬학습 교사를 제안했고,
나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그 일을 맡았다.
대부분 연세가 있는 선생님들이었기에
나는 언제나 예쁨을 많이 받았다.
잘 웃고 목소리 톤도 편안해서,
유아 엄마들도 좋아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유아 수업은 과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집 방문 때마다 20~30분씩 머물며 집중해야 했다.
아침 9시 교육, 준비, 그리고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수업들. 빨리 끝나면 저녁 8시, 늦으면 11시.
저녁도 못 먹고 돌아오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살은 빠지고 체력은 바닥나고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수업시간이 저녁 무렵이면 복도 끝에서 밥 냄새가 났다.
주방에서 밥을 짓는 엄마의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부드럽고 따뜻한 일상의 풍경이 늘 부러웠다.
좋은 아파트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부자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있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
회원 가정들을 매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따뜻한 집에서 자랐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 묵혀 있던
바람이 올라왔다.
‘나도 이렇게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