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순수했던 우리 연애

by 엣지있는 김작가

술을 잔뜩 마시고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

다. 종영이는 언니와 내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고서야 돌아갔다.


그날 종영이는 자격증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잠도 거의 못 자고 시험을 치러 갔다고 했다.


저녁까지 언니와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그때 종영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해장 안 했어? 내가 진짜 맛있는 국밥집 아는데… 나올래?”


비틀비틀한 상태였지만, 이상하게 거절하고 싶지 않았

다. 잠도 못 자고 시험까지 보고 온 사람이 나를 챙기고

있다니, 그 정신력이 괜히 멋있어 보였다.


쓰린 속을 달래며 국밥을 겨우 반쯤 먹었고,

우린 자연스럽게 커피까지 마시러 갔다.

누가 봐도 연인이었다.

만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됐는데도 오래 알던 사람처

럼 편안했다.


커피를 마신 뒤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헤어졌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걸어 들어가며 바로 건 것 같았다.


“음… 만약에… 내가 사귀자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

나는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사귀자는 말을 너무 성의 없이 하는 거 아니야?”


“아냐. 지금 사귀자고 하는 건 아니고… 따로 말할 건데.

그냥 네 생각이 궁금했어.”


“난 좋은데?”


망설임 하나 없이 대답했다.

당황한 기색이 잠깐 스쳤고, 이내 종영이는 말했다.


“벌써 보고 싶다.

매일 봐도 보고 싶어.”


이전의 연애들과는 달랐다.

나는 늘 동갑, 늘 학생 신분의 남자를 만났고

어른의 연애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종영이는 달랐다.

정장을 입고 출퇴근하는 반듯한 직장인.

동갑인데도 왠지 든든하고 어른 같았다.

내가 기대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빠의 부재 때문인지

정장을 잘 입는 남자에게 유독 끌렸던 나.

종영이는 그런 모든 부분을 정확히 건드렸다.


우리는 정말 뜨거운 연애를 했다.

매일 퇴근 후 만났고,

내가 연수원 가는 날이면 수업 끝날 때까지 기다려줬다.


사귀기로 한 다음 날.

작가연수원에서 논현역에 9시쯤 도착했을 때,

종영이는 꽃다발을 들고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간단히 치맥을 먹고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집까지 데려다줬다.


버스를 타면 너무 빨리 도착하기에,

우린 그냥 걷기로 했다.

논현역에서 삼성동까지.


종영이는 내 가방을 들어줬다.

여자 가방을 들어주는 건 내가 처음이라며 장난스러운

말을 했다. 나는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걸어가는 내내 손을 잡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물여덟 살의 우리는

희한하게도 더 순수했다.


손이 스칠 때마다 ‘잡을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다.

끝내 잡지 못한 채 집에 도착했고,

원룸 현관 앞에서 종영이는 내 가방을 넘겨주며

내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금방이라도 도망가듯 뛰어갔다.


“집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그렇게 우리는

뜨겁고 순진한, 예쁜 연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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