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그 무렵 나는 직장을 옮겨 종영이가 다니는 회사와
5분 거리인 성형외과 홍보팀에 들어가게 됐다.
가까이 있다 보니 점심도 자주 함께했고,
종영이 회사는 회식이 잦아서 회식이 없는 날엔
당연하다는 듯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회식이 있는 날에도 그는 종종 집 앞까지 와선
“얼굴만 보고 갈게.”
하고는 잠깐 나를 보고 돌아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불처럼 사랑했다.
온 마음이 다 타오르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뜨거움 속에서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결혼한 아주머니와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소문, 김해에 건물도 샀다는 이야기.
잘 살고 있다더라.
5년 전 몰래 결혼한 뒤 연락을 끊고 지냈으니
다시 연락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래도 친척오빠에게 아빠 번호를 받아 며칠을
고민하다, 마침 부산 엄마 집에 내려가는 길에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했다.
“웬일이고.”
아빠의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미안함도, 반가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투에 순간,
‘내가 왜 전화했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도 나는 그리웠던가 보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주르륵 흘렀다.
“아빠…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김해에서 보기로 하고 누리끼리한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하얀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아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마저 어색했다.
차 안에는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슨 일로 아빠를 다 찾았노. 연락 한 통 없더만.”
아빠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아빠도 연락 안 했잖아.”
내 서운함이 고스란히 묻어난 말이 튀어나왔다.
아빠는…
아직도 가족의 애정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내게는 너무 익숙하고, 그래서 더 아팠던 모습.
아빠 집에 도착해 들어가니, 중국 국적의 아주머니가 나를 맞았다.
그리고 집 안 곳곳—
입구, 거실, 벽장 위까지
아빠와 그 아주머니의 결혼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내 안에 눌려있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소리가 날 만큼 울음이 터져 나왔고,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왜 그리 울고 그러노.”
아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내가 왜 우는지,
무얼 잃어버린 채 자라왔는지,
이 나이에 들어도 아물지 않는 감정이 무엇인지.
곧 서른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어린 날의 나와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아빠를 찾아온 게 잘한 일일까—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