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이라 금방 퇴원을 하고 조리원으로 갔다.
파워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던 덕에, 조리원에서 가장
큰 VIP방을 저렴하게 내주었다.
넓은 방에 나 혼자.
조용하고, 너무 넓고, 내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신랑은 첫째를 돌봐야 해서 조리원에 올 수 없었고,
아기는 여전히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새벽이 되면 신랑은 집 근처 절에 가서 절을 올렸다.
나는 조리원 침대 위에서 눈을 감을 때도,
눈을 뜰 때도 같은 기도를 반복했다.
제발… 아이만 살려주세요.
모유수유를 하러 가는 산모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아기는 어디 있냐”고 물을까봐
나는 사람들을 피했다.
아기의 면회는 매일 딱 한 번, 12시.
나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시간만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들려오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폐를 펼 수 있는 약물이 세 번까지 가능한데,
아기는 두 번을 이미 썼고, 차도는 없다고 했다.
희망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몸조리? 그런 건 없었다.
하루는 온통 눈물이었고, 밤은 기도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정상태아로 잘 자라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계획에 없던 임신이라 주변의 축하도 받지 못했었다.
그 때문인가.
이사를 했을 때 언니가 아는 점집에서
“대장바우 방향으로 가는 건 아기가 아플 수 있다”고
말했던 것도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미신이라고
화를 냈는데, 지금은 그런 말조차 마음을 찌른다.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다.
아기만 무사하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이름이 있어야 세상과 이어진다고 믿었다.
김지오.
작고 연약한 그 이름을 부르며
나는 끝없이 빌었다.
살아만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