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종영이가 누나와 형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는 이미 여러 번 인사를 했고,
언니들과도 제법 친해진 상태였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으니
자신의 가족도 나와 만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종영이에게는 열 살 차이 누나와 아홉 살 차이 형이 있었다.
누나와 형은 성이 ‘오’ 씨였고, 종영이는 ‘김’ 씨였다.
어머님이 재혼하면서 낳은 아들이 종영이었고,
누나와 형은 첫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이었다.
또 종영이의 친아버지 쪽에도 남자 형제가 셋 있었지만,
어릴 때 이후로 거의 왕래가 없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조금 복잡할 수 있는 가정사였지만,
그 시절 나 역시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을 겪고 있었기에
오히려 더 마음이 갔다.
외롭게 자라왔을 종영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누나와 형을 만나기로 한 전날,
나는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논현역 영동시장에서 술을 거하게 마셨다.
둘째 언니는 외출 중이었고,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종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고 싶어. 지금 올래?”
종영이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상황이었고,
다음날 가족 소개까지 앞두고 있어
늦은 시간에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아마도 이 시간에 나를 만나러 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나를 안 좋게 보실까 걱정되었던 것 같다.
“알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순간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그토록 울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쌓여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건지…
삶이 갑자기 너무 버겁게 느껴졌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밀려왔다.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다시 종영이에게 전화해
“죽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종영이는 너무 놀라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오겠다고 했다.
그때가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지금… 나, 죽을 것 같아. 아니… 죽고 싶어…”
취한 목소리로 애절하게 말했다.
그 말을 하고는 곧바로 둘째 언니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다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나 너무 죽고 싶어. 도와줘.”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조차 흐릿하다.
술기운과 슬픔이 뒤섞여
정말 위험한 상태였던 건 확실하다.
좁은 원룸을 서성이며 울부짖다가
어찌어찌 잠이 들어버렸다.
날이 밝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종영이었다.
화장도 지우지 못한 얼굴,
눈물 때문에 얼룩진 상태,
그대로 잠들었던 나는 꽤 초라한 모습이었다.
문을 열자 종영이가 나를 꼭 안았다.
“괜찮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미안함이 먼저 밀려왔다.
“미안해… 어제 너무 힘들었나봐.”
“둘째 누나는 어제 안 들어왔어?”
“그랬나봐. 내가 이상한 문자를 보냈는데… 언니가 보면 놀라겠지.”
그때마침 둘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뭐야?! 너 괜찮아?!”
아침에 문자 내용을 보고 기절할 만큼 놀랐다고 했다.
혹시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나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고.
새벽에 전화를 받지 못해 너무 미안해하며
친구 집에서 잤다고 했다.
별일 없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술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 종영이와 함께 누나 가족, 형 가족들을 만나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종영이는 밤늦게까지 나 곁을 지켜주었다.
힘들 때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
그게 바로 종영이었다.
그 일을 겪은 후, 둘째 언니는
지금 당장 결혼을 하진 않더라도
독립해서 종영이를 편하게 만나라고 했다.
내가 결혼 문제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삶에서 어느 것도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던 것 같다.
나는 결국 독립을 결심했고,
큰언니에게 보증금을 빌려
종영이 집 근처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함께 집을 구하러 다녔고
침대하나 들어가는 작은 방이라
종영이가 선물로 침대를 사줬다.
신혼집을 구하듯 그땐 마냥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