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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Dec 16. 2020

이 사람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만나도 될까?

<오! 발레리아>

“또 <섹스 앤 더 시티> 리메이크 구만!”

<섹스 앤 더 시티>와 함께 20대를 보냈다. 그녀들이 입는 옷이 내 패션의 기준이 되었고, 여자 친구들과 함께하는 브런치가 일상에 자리 잡았다. 남자 친구 고르는 방법마저도 그녀들에게 배웠으니 나에게 <섹스 앤 더 시티>는 2-30대 여성의 삶의 표본이자 교과서였던, 특별한 작품이었다. 그러니 그 아류작처럼 보이는 <오! 발레리아>를 접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섹스 앤 더 시티>의 인기와 더불어 비슷한 콘텐츠의 시리즈가 많이도 생겼다. 이를테면 한국의 <로맨스가 필요해> 라던지 중국의 <오드 투 조이>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모르는 일본판, 프랑스판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넷플릭스의 추천으로 <오! 발레리아>를 보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네 명의 20대 후반 여성들의 일, 사랑, 우정에 관한 고군분투가 주제인 시리즈물이었다. 뻔한 스토리라 생각하면서도 계속 ‘다음화’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은 일, 사랑, 우정 그 어느 것도 여전히 완성해내지 못한 나의 상황 때문일까. 그것들이 현재 진행형의 내 인생의 끝나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일까.

작품에는 여자 친구들 여럿이 모이면 으레 하나씩 있을법한 자유연애주의자이자 섹스주의자 롤라, 잘 나가는 광고기획자이지만 남자 앞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연애 숙맥 카르멘이 등장한다. 여기에, 능력 있는 변호사이지만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못하고 있는 레즈비언 네레아와 주인공인 무명작가 발레리아도 있다.

발레리아는 일찍이 20대 초반에 한눈에 반한 사진작가 아드리안과 결혼해 살고 있다. 사진 찍는 작가와 글 쓰는 작가, 예술가 부부의 불타오르던 사랑은 시간이 흐르며 으레 그렇듯이 미지근해졌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갈등이 생길 때마다, 서로가 서로의 잠자리를 거부할 때마다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때 발레리아 앞에 등장한 건축가 빅토르는 불덩이처럼 뜨거운 사람이었고, 포기할 줄 모르는 정열가였으며, 무엇보다 바람둥이라 불러도 될 만큼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남자였다. 고백하자면 나로 하여금 ‘다음화’ 버튼을 쉬지 않고 누르게 한 가장 강력한 이유 역시 빅토르의 눈빛과 미소, 그리고 나긋나긋한 말투였다.


발레리아는 처음부터 유부녀임을 밝히고 다가오는 빅토르를 밀어내려 하지만, 빅토르와  만남,  잔의  이후 술술 써지기 시작하는 에로틱한 소설은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을 반영한다. 빅토르와의 아슬아슬한 밀당은 그녀의 상상력을 자극해 어마어마한 에로틱 소설로, 대작으로 탄생한다. 아마도 시즌 2에서 그녀는 유명 작가가  것이다. 당신이 발레리아라면,  곁에 있는 한때 더없이 사랑했던 남편 아드리안을 떠나 자꾸만 생각나는 빅토르에게  것인가?

<! 발레리아> 20년도   <섹스   시티>보다 수수하다. 캐리가 사랑하는 모피나 뉴욕 매그놀리아의 컵케익, 캐리가 미스터 빅으로부터 받는 마놀로 블라닉의 하이힐 선물은 없다. 스니커즈를 신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마드리드 시내를 걸어 다니는 발레리아가, 섹시한 집주인의 눈빛에 넘어가 뜨거운 원나잇을 꿈꾸며 비싼 렌트하우스를 계약하는 순진한 카르멘이, 얽매이는 것이 싫다며 유부남과의 섹스만 즐기는 롤라가 실은 외로움에 흘리는 눈물이, 커밍아웃을   직장도, 집도 잃은 레아  많이 공감이 간다.

넷플릭스를 통해 스페인어 시리즈물에 입문했다. <검은 욕망>, <종이의 >, <엘리트> 등을 보며 문화권이 달라진다고 이렇게까지나 새로울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정도로 흥미롭고 신선한 작품들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의 유교 문화나 미국의 청교도적 사고방식과는  다른 자유로움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적 개방성에 충격적을 받기도 했고, 그것이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지금의 코로나 상황은 다른 국가는커녕   앞에도  나가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넷플릭스를 타고  세계 어디든   있다. 유럽 영화를 타고 유럽식 사랑을  수도 있고, 미드를 타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도 있으며 다큐멘터리를 타고 남극을 탐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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