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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y 06. 2021

요트를 즐겁게 타는 방법



“시트 당겨!”

“아니 아니, 풀어야지!”

“이제 당기고! 더 더”

“아니 아니, 응, 이제 됐어.”


요트를 타며 많이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이것이다.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시트 당기라면 당기고 풀라면 풀고 하는 게 다야.”


시키는 대로 하는 세일링 장면에서는 위와 같은 일방적인 대화가 연출되기 마련이다. 단순한 명령, 혹은 타박이 불편한 사람들은 팀 세일링에 흥미를 잃고 1인용 요트만 타거나 세일링을 하지 않기도 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요트를 10년 이상 타고도 여전히 바람과 세일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데, 사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바람과 세일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요트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취미 운동인데 세상에나, 양력이 뭐고 항력이 뭐고, 나아가 비행기의 운항 원리까지 공부해야 한다. 요트 한번 타려면 세팅(범장)하고 끝난 후 원상복구(해장)하는데만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데, 그 방법 하나하나를 매듭 묶는 방법까지 공부해야 한다. (레이저 딩기를 몇 달을 타면서도 혼자서 범장을 못하는 나에 대해 이렇게 핑계를 대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요트를 타기 위한 기본 작업이니 이해를 하겠는데, 수능 이후에 다시는 볼 일 없던 과학, 그것도 물리학이 웬 말인가.


그게 다가 아니다. 시합에 나간다면 이번에는 레이싱 룰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 룰이라는 것이 책 한 권으로 묶여 배포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세일링 룰은 4년마다 개정되고, 2021년은 The Racing Rules of Sailing 2021-2024이 적용되는 첫 해이다.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영어로 봐야 한다. 각 깃발과 신호가 의미하는 것, 약어가 의미하는 바, 페널티를 수행하는 방법 등이 세세히 정해져 있고 그걸 알아야 유리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 아니, 몰라서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일링 룰로 무장을 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배를 타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가슴 깊이 공감한다. 세일링은 내가 즐거우려고 하는 것이고, 골치 아픈 것 생각하지 않고 재미만 있어도 되는 것이니까. 취미생활은 그런거다.   


그런데 여기서 “왜?”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알고 싶다는 마음이 몽글몽글 생겨난 사람들은 공부를 시작한다. 배 공부, 바람 공부, 바다 공부, 룰 공부 등등. 요트팀에 들어간 첫날 크루 포지션별 역할이 정리된 표를 받았다. 요트학교의 정규 교육을 마치고 팀에 합류한 것이었지만 바다처럼 넓은 세일링의 영역 중에 극히 기초적인 내용만 습득한 수준이라는 것을 팀 선배들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들은 세일링에 필요한 공부는 함께하건 혼자서 하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코로나로 줌 화상회의가 일반화된 덕분에 우리 팀도 온라인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동안 세일링을 마친 후 모여 앉아 조금씩 이론 공부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이미 세일링을 하느라 녹초가 된 몸에 공부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았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었다. 평일 저녁에 집에서 편하게 만나는 모임은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고 효과가 좋았다. 이번 주 세미나는 내가 진행했는데 주제는 ‘세일 트림’이었다. 의식을 갖고 하는 세일 트리밍과 시키는 대로 하는 트리밍의 차이를 경험한 후, 더 알고 싶은 갈증이 있던 내용이다.



작년 가을 통영의 레가타(요트 대회)에 참여했었다. 나의 포지션은 세일을 조절하는 트리머였는데, 작년에 나의 수준으로 말하자면, 당기라면 당기고 풀라면 푸는 수준을 막 넘은 그다음 단계로서, 요트의 진행 방향에 따라 세일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이론적으로 습득하여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매뉴얼대로 기본 동작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정교한 스킬 구사는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세일링에서 중요한 것으로 포인팅과 스피드를 꼽는다. 포인팅은 목적점까지 정확하게 나아가는 방향과 코스 설정을 의미하는데 주로 스키퍼가 러더(핸들)를 잡아 조절한다. (덧붙이자면, 러더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그 대신 세일 트리밍으로 미세하게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거리상 손해를 최소화한다는 것을 지난주에 배웠다. 러더만의 영역이 아니니, 트리밍도 잘 해야한다는 뜻인데 그걸 이제야 알았다......) 스피드는 말 그대로 얼마나 빠르게 목적점까지 도착하느냐를 말하고, 여기에 필요한 것이 정교한 세일 트리밍이다.


바다에서 세일링을 할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리 팀은 바다에 나온 김에 경기 성적과 상관없이 경험을 쌓아보자는 의미로 포지션을 바꿔가며 시합을 했다. 경험이 많은 멤버가 스키퍼와 트리머를 각각 맡아 펼친 경기에 거둔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트리머를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르고 정확한 코스의 세일링이 펼쳐졌던 것이다.


“포인팅은 스키퍼가 알아서 잘할 거라 믿고 나는 텔테일 하나만 봤어.”


트리머가 말했다. 그제야 그동안 나는 ‘텔테일을 봐야 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으나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니까 정교한 세일 트리밍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경기 이후 시키는 대로 혹은 매뉴얼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텔테일을 보며 섬세하게 의식 있는 트리밍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번 세미나를 위해 공부를 할 때 일관적으로 언급된 가장 중요한 세일 트림 방법 역시 ‘텔테일’이었다. 다만, 차터(대여)하는 요트에 텔테일이 제대로 붙어있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세일이나 붐의 각도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 등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기본은 ‘텔테일이 제대로 날리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텔테일이란 무엇일가? 말 그대로 말을 해주는 tell 꼬리 tales이다. 무슨 말을 해주냐하면, 세일이 제대로 세팅되었는지, 배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 같은 것들을 말해준다. 세일을 세밀하게 튜닝할 수 있게 해 주고, 러더를 잡은 사람이 코스를 정교하게 잡을 수 있는 표지가 되어 준다.


그 중요성에 비해 생김새는 비교적 소박한데, 대부분 실로 만든다. 혹은 세일 천을 길게 잘라 만들기도 하는데, 이 sailcloth는 실보다 가볍고 예민하고 눈에 잘 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물에 젖어 세일에 붙어버리면 떨어지기가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내가 주로 본 것은 빨간색, 초록색 털실이다. 빨간색과 초록색을 한 쌍으로 세일의 양면에 붙이며, 같은 간격으로 세일의 러프를 따라 세 세트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 세트의 털실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날리는 것을 보면, 높이에 따라 바람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이 아날로그적인 털실 텔테일보다 더 민감하면서도 효과적이고 직관적으로 인디케이터 역할을 하는 장치는 없다고 한다. 세일의 양면에 붙은 텔테일이 소용돌이치지 않고 뒤를 향해 잘 날리고 있다면 바람이 세일 양면에 부드럽게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텔테일이 소용돌이치며 우는 쪽으로 세일을 보내준다.’는 원칙을 새기는 것이다. 안쪽 텔테일이 울면 세일을 안으로 당기고, 바깥쪽 텔테일이 정신없이 날리면 세일을 바깥으로 풀어준다는 말이다. In, let it in! Out, let it out!


 

“아 이거 결국 머리 좋은 순으로 요트 잘 타는 거네!”


세일 트림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좌절했다. 세일링은 감각의 문제라 생각했는데 트리밍은 아무리 봐도 지능의 문제였다. ‘텔테일을 보면서 세일을 트리밍 한다.’ 까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세일을 조절할 것이냐의 단계로 넘어오니 Angle of Attack, Camber, Draft, Twist라는 세일 컨트롤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건 (문과생인 내 기준으로) 엄연히 물리학의 영역이다. 이 머리 지끈지끈한 정의들을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번 팀 세미나에서 나는 생전 처음 듣는 이 개념들에 대해 (100% 소화하지 못한 채로) 발표를 했고, 그걸 선수 출신 팀원들이 세일링 경험에 비추어 생생히 부연설명 해주었다.


이론으로서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는 것과, 이걸 세일링에 적용해서 소화하는 것, 그리고 실전에서 몸으로 느끼고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지 모른다.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이번 주에도 마리나에 요트를 타러 나간다.   






글: Edi (https://instagram.com/edihealer)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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