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가려고?”
“남자들도 겨우 드는 엔진을 옮기려고? 용감하시네!”
요트 엔진은 정말로 무거웠다. 배 위로 보이는 것은 플라스틱으로 덮여있는 헤드 부분이라 작고 가벼워 보이지만, 물속에 잠기는 배기 케이스나 하부 기어의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아니 그런데, 요트에 멀쩡히 붙어있는 엔진을 왜 떼서 들고 돌아다니냐고?
우리 팀이 타는 요트는 30년도 더 된 배라서 거의 타면서 수리를 하는 지경이다. 그중 최고봉은 엔진이라, 이 것이 제대로 작동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대회에 참가할 때면 아예 이 작동하지 않는 엔진을 떼어내서 콕핏(요트의 실내 공간)에 싣고 시합을 한다. 요트에 엔진과 앵커, 구명환 등을 구비하는 것은 필수 규정사항이기 때문에 엔진이 작동을 하건, 하지 않건 배에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는 기필코 엔진을 사용해서 해상으로 나가보고자 몇 달 전부터 대대적인 엔진 수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엔진 수리는 전문가의 영역이라 우리 팀원들이 직접 할 수는 없었고 요트학교 선생님들이 도와주셨다. 그렇게 여름 즈음 엔진 수리가 완료되었고 우리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통영 도남항부터 통영 앞바다 수역까지 나갈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그동안 엔진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상에 나갔을까? 전통적인 요트의 작동원리에 따라 세일(돛)을 펴고 세일에 바람을 안고 나갔다. 만약 바람이 없는 날이라면? 그리고 폰툰 쪽에는 장애물이 많아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을 텐데? 그럴 때는 인간의 노동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다. 크루들이 배의 좌우에 나눠 서서 왼쪽으로 배를 기우뚱하게 눌렀다가, 오른쪽으로 배가 기우뚱하게 눌렀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세일에 바람이 받는 순간이 온다. 흡사 시소나 널뛰기와 같다고 보면 된다.
“부릉~~~”
대회 첫날 우리 팀은 드디어 엔진을 켜고 통영 앞바다까지 나갔다. 어느 정도 나온 것 같아서 엔진을 끄고 엔진을 배에서 분리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약한 날에는 배의 뒷부분이 들리고 앞부분이 무겁게 눌러 앞으로 잘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배의 꽁지에 붙어있는 엔진을 떼서 배의 머리 쪽 콕핏에 넣어둔다.
엔진을 반쯤 분리했을 때, 갑자기 ‘빠앙~~~’하는 경적이 들렸다. 저 멀리서 범선이 오고 있었다. 범선의 속도는 우리가 탄 작은 요트의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분명 저 멀리 있었던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에 다가오곤 한다.
“다시 엔진 켜고, 여기서 빠져나갈게요.”
다급해진 스키퍼는 엔진을 켰다. 우리 배의 엔진은 키를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는 식이 아니라 줄을 힘껏 잡아당겨서 ‘털털털털’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려야 작동하는 옛날식이다. 몇 번이나 팔을 최대한으로 가동해서 줄을 잡아당겼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고, 범선은 점점 다가왔다.
“안 되겠다. 세일 올려. 세일에 바람 받고 피하자.”
“세일 올립시다!”
(쿵!! 푸웅덩~)
“악! 엔진! 엔진!!”
아수라장이었다.
반쯤 풀어놓은 엔진의 나사가 빠졌는지 배 뒤에 달려있던 엔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물에 쏙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맨 뒤에 있던 스키퍼는 재빠른 반응속도를 선보이며 엔진에 묶여 있는 줄을 낚아챘다.
“나 좀 도와줘. 혼자 못 들어.”
스키퍼의 간절한 외침에 크루 두 명이 더 달려가 엔진을 같이 잡았다. 엔진은 정말로 무거운데 비해 사이즈는 작고 뾰족한 곳이 많아서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 크루 두 명이 그 좁은 배 후면에서 엔진을 겨우 들어 올렸다. 다른 크루가 배 중간에 서서 엔진을 건네받았고, 나머지 두 명이 콕핏으로 들어가 엔진을 내려받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켜 놨다. 시합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신과 에너지를 쏙 뺐다. 그 줄을 잡지 않았다면 무거운 엔진은 바로 잠수를 했을 것이고, 그건 비싼 엔진을 새로 사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시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배에는 엔진이 구비되어 있다는 규정 위반이니 말이다.
대회를 마치고 항구로 들어와서 우리가 할 일은 물에 젖은 엔진을 꺼내는 일이었다. 바다에 빠졌기 때문에 분명히 내부로 염분이 들어갔을 것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복구할 수 없는 상태로 고장이 날게 뻔하기 때문이다. 엔진 꺼내기는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이라 배 하부에 두 명이 들어가서 엔진을 들어 올리고, 상부에서 두 명이 받아 배 밖으로 꺼냈다. 꺼낸 엔진을 수돗가로 가져가서 물을 뿌려가며 소금기를 빼내고 바람으로 말리기 위해 잘 펼쳐놨다.
대회 둘째 날 아침, 대회 규정 상 요트 안에는 엔진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작동하지도 않는 애물단지 엔진을 들고 요트로 향했다. 주변의 다른 남자 크루들이 무거운 엔진을 (번쩍 들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끌다시피 가져가는 우리를 놀랍고도 안쓰럽게 쳐다봤다. 무거운 엔진을 겨우겨우 싣는 고단한 과정을 거쳐 시합을 시작했다.
“요트 점검 왔습니다. 엔진, 앵커 확인하겠습니다.”
“저희는 엔진이 콕핏에 있습니다. 열어 드릴 테니 확인하세요.”
시합이 끝나고 폰툰으로 들어오자, 대회 관계자가 우리 요트로 다가와서 엔진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는, 규정을 위반하고 엔진을 떼놓고 시합을 나간 팀이 있어서 점검을 나온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대회 운영 상의 프로세스인가 보다 했는데, 우리 배만 확인하고 옆 배는 체크하지 않은 채 관계자는 떠났다.
우리 팀이 대회 중에 1등을 한 라운드가 있었는데, 다른 배들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나가는 것을 의심한 다른 팀에서 신고를 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우리 배가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엔진과 앵커를 빼놓고 탔다고 말이다. 저기요, 우리 5명 크루의 몸무게 다 합해봐야 겨우 250kg 정도거든요? 보기보다 가볍거등여?
이번 15회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는 11월 말에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부지방의 따뜻한 날씨와 약한 바람 덕에 가을에 요트를 타는 것처럼 포근했다. 바람이 약하면 속도감 있는 세일링을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우리 팀 같이 크루의 체중이 적게 나가는 팀에 유리한 조건이다. 바람이 약할 때는 요트의 무게가 가벼워야 약한 바람에도 반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통은 요트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5명 크루 중에 4명만 참가하는 식으로 크루의 체중을 줄여서 시합에 임하거나, 요트 안에 간식은 물론 생수조차도 싣지 않고 출발하기도 한다. 우리도 무거운 공구, 여분의 세일 등은 내려놓고 출발했다.
우리 팀은 이번 대회에서 최종 4위를 차지했다. 1,2위에는 요트 선수들이 탔고, 3위는 외국인 팀이었다. 그러니까 선수 한 명 없이 동호인만으로 모인 팀이 4위를 했으니, 아마추어 중에 최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 요트 인구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 여자여서 요트에 불리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팀은 확실히 선수들이나 남자들에 비해 파워가 약하다. 세일을 컨트롤할 때 사용하는 근력의 차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신 우리는 바람을 힘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약점을 인정하고 대체할 방법을 찾는다. 그게 우리 팀의 비결이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