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뷰 세일링 대박.”
“아니야~ 이건 요새 그렇게 핫하다는 더현대 서울 뷰야~ 더현대 배경으로 셀카 찍자!”
작년에 요트대회를 하러 처음 통영에 갔을 때 통영 앞바다의, 그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감탄했던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매일 보는 한강 뷰에 넋을 놓고 있었다.
“한강이 이렇게 넓은 강이었던가? 다리로 건너보기나 했지 강에 들어와서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높은 건물에서 한강 뷰를 내려다보는 것은 해봤어도 한강 안에 들어와서 건물을 올려다보는, 그러니까 서울 도시를 조망해볼 기회는 없었다.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과, 안에 들어앉아서 내다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안에서 둘러보는 한강은 중간에 밤섬이 가로막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만큼이나 끝없이 펼쳐지는 듯했고, 강남과 강북의 특색 있는 건물들은 홍콩이나 상해의 마천루 못지않았다.
내게 2호선은 차가운 철재 의자에 지치고 고단한 직장인들을 태우고 가는 통근열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한강에서 올려다보는 2호선 열차는 영화 속 환상열차처럼 보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와중에 칸칸이 조명을 켜고 당산역과 합정역 사이를 달리는 열차가 장난감처럼 보였다. 힐튼호텔의 크리스마스 시그니처 장식인 호텔 로비를 빙빙 도는 그 열차 말이다.
런던에 단기 연수를 갔을 때 아침마다 템즈강변을 달렸었다. 꼭 운동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빡빡한 교육일정 중에 어떻게든 런던을 구경할 시간을 내고 싶어서였다. 교육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런던 구석구석을 (내가 좋아하는 카페나 베이커리 위주로) 눈에 담고 향을 느끼고 맛을 보며 탐험했었다. 과연 런더너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침 일찍부터 템즈강변을 많이 뛰었다. 템즈강은 관광객의 시각으로 외국인을 구경하고 도시의 활기를 느끼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런던이니까 멋져 보이지만 며칠 보니 뭐 한강만 못하네. 달리기에도 한강변이 더 잘 되어 있고. 여긴 고수부지처럼 치맥 할 데도 없고 말이야.’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렇다. 한강은 달리기, 자전거 타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그 정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세일링 하기에도 좋다. 서울 한가운데에 위치해있으니 접근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그만큼 시설도 잘 되어있다. 보통의 마리나들은 주변에는 뭐가 없이 덩그러니 요트들만 정박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마리나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파스타를 먹고 커피를 마시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이번에 한강에서 열린 대회는 2021 대한요트협회장배 요트대회 및 2021 코리아 세일링 챔피언십이었다. 바다가 아닌 강에서 이루어지는 대회이기 때문에 대형 요트들 대신 4~6명의 크루가 탑승 가능한 사이즈의 J24, J70, ALT 클래스의 요트로 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강이 크다 해도 바다만큼 경기수역이 넓지는 않아서 이번 대회의 코스는 마크를 돌아오는 것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었다. 코스를 한 바퀴 돌기 위해서는 갈 때는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고, 돌아올 때는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을 타게 되는데, 요트는 바람을 안고 갈 때와 거슬러 올라갈 때 사용하는 세일이 다르다. 이를 위해 크루들은 재빠르게 세일을 올렸다 내리며 교체하는 작업을 해야 하고, 그래서 한 바퀴의 코스가 짧고, 여러 바퀴를 돌게 되면 크루들이 빨리 지친다. 우리 팀 크루들은 남자 선수들만큼 강한 근력을 갖고 있지 못해서 세일을 올리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많은 연습으로 쌓아 올린 팀워크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코스를 여러 바퀴 도는 코스를 두려워하지 않고 장점으로 여길 정도가 되었다.
“나이스. 1등!”
“수고했어. 이번에도 우리 팀워크 좋았어!”
한 라운드가 끝나고 자축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물었다.
“팀 레이디스, 왜 두 바퀴 돌았어요? 한 바퀴였는데요?”
“네? 뭐라고요?”
“크으~ 두 바퀴 돌고 그 정도면 잘했네!”
요트 대회에서는 매 라운드마다 경기위원회(RC)가 신호기를 올린다. 수역에서 퍼져있는 요트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깃발로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이를테면 출발 5분 전을 나타내는 신호의 깃발, 부정출발을 한 요트를 리콜하는 신호의 깃발 같은 것이 정해져 있고, 코스를 몇 바퀴 도는지를 나타내는 신호의 깃발도 있다.
세 번째 라운드가 진행될 때, 우리는 모두 앞 두 라운드와 마찬가지로 두 바퀴를 돌아오겠거니 생각을 했었다. 한 바퀴를 돌라는 신호의 깃발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미 앞 두 라운드로 체력이 소진됐지만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세일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두 바퀴를 돌고 1등으로 피니시를 했다. 가파른 호흡과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축하를 나누고 있는데, 어랏, 이 라운드는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네?
우리 팀이 선두로 달리고 있으니 뒤따라오던 모든 배들은 우리 배만 보고 똑같이 두 바퀴를 돌았다. 오직 한 팀만이 신호기를 제대로 보고 한 바퀴를 돌았다. 노련한 그 팀은 실제로 속도는 빠르지 않았을지언정, 한 바퀴만 돌았기 때문에 1위로 피니시를 했고, 1등인 줄 알았던 우리 팀은 두 바퀴를 돌고 들어와서 2위가 되었다.
힘들게 두 바퀴를 돈 것이 억울하긴 했지만 그래도 2등을 해서 괜찮았다. 문제는 뒤따라오던 다른 팀들이었는데, 이들은 실격되었다. 요트 경기 룰 중에는 ‘피니시 윈도’라는 것이 있다. 첫 번째 배가 결승점을 통과하고 일정 시간 내에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실격이 된다는 규칙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 기준이 10분이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배가 피니시를 한 후 10분 내에 들어오지 못해서 실격을 당한 것이었고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총 45분의 경기 시간 내에 두 바퀴를 도는 경기에서 추가 한 바퀴를 10분 내에 돌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팀을 믿고 따라오다 그렇게 됐으니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팀이 정말 빨랐다는 뜻이다. 다른 팀보다 한 바퀴를 더 돌았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이 있으니 창피해서 어디 가서 이런 말은 못 하지만...... 이런 실수를 딛고 우리 팀은 이번 대회에서 J24 클래스 1위를 차지했다.
소수의 인원이 팀별 요트 위에서 거리를 두며 즐길 수 있다는 특성 덕에 요트가 코로나 시대에 각광받는 스포츠가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작년에 취소됐던 요트대회들이 올해에는 하나둘씩 다시 열리고 있다. 다음 주 김포에서 올해 마지막 요트경기가 열린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