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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Dec 15. 2021

크리스마스는 요트에서


“우와~ 우리 요트 크리스마스트리 됐다~”

“크리스마스에 최적화되어 있는 레드 요트니까~”

“근데 이 산타모자 쓰니까 진짜 따뜻해~”

“아 귀여워~”


요트 대회 날 아침, 다른 팀들이 비장하게 범장(요트를 세팅하는 것)하는 동안 우리는 빨간 선체에 크리스마스 장식 스티커를 붙이고, 요트 뒷부분의 백스테이(세일을 달기 위해 우뚝 선 마스트를 고정해주는 사방의 지지대 중 요트 뒷부분에 달린 것)에 반짝이 장식을 하고 산타 모자를 쓰고 셀카를 찍느라 분주했다.


오늘 경기는 우리가 항상 요트를 타는 김포에서 개최되는 김포시장 배 요트대회이고, 그래서 다른 지역으로 요트를 운반하고 세팅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일 년 내내 연습하는 곳에서 열리는 경기이니, 평소와 똑같이만 하면 되지 뭐! 우리는 원정경기에서도 1등 하는 팀이잖아? 그러니 오늘은 즐기자~ 축제!


스포츠 심리학 용어 중에 ‘홈그라운드 효과’, ‘홈 어드밴티지 Home advantage’가 있다. 경기를 개최한 홈팀이 원정팀에 대해 우수한 성적을 거둘 때 쓰는 용어로, 우리에게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한 것으로 익숙하다. 진화심리학은 이를 자기 영역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본능의 발동으로 분석한다. 홈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더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대표적인 남성호르몬으로 공격적 성향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홈 어드밴티지엔 호르몬뿐 아니라 익숙함에서 오는 심리적 여유나 안정감이라는 이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성팀이라 테스토스테론 레벨이 낮은 건가, 홈 어드밴티지가 통하지 않는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에게 연구를 의뢰해봐야 할 것 같다.


스타트를 잘못해서 벌칙 수행하느라 꼴찌로 출발하기, 마크를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되돌아와서 마크 라운딩 하기, 마크를 돌면서 마크를 건드리는 마크 터치로 벌칙 수행하기, 다른 배와 컨택을 일으켜서 벌칙 수행하기, 뒷배가 멀리 있기에 여유 부리면서 가다가 추월당하기, 뭐 이런 것들이 이틀 대회 일정의 일곱 경기를 하는 동안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익숙한 곳이라 코스 읽기, 바람 체크, 조류 확인 등을 소홀히 한 자만은 결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지난 대회 때 1등을 했던 우리는 다양한 실수를 다채롭게 펼쳐 보이며 3등을 했다.


사실 이번 요트 대회는 팀을 구성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통상 요트 동호인들은 11월 초면 시즌을 마감하고 겨울 휴식기를 갖는다. 겨울바람을 가르며 배를 타는 것은 너무 추우니까. 코로나 때문에 연거푸 연기되던 대회가 전례 없이 늦은 12월 중순에 개최되다 보니, 일정상 시합에 참여할 수 있는 멤버들이 많지 않았다. 이번 주말같이 바람이 센 날에는 5명, 바람이 없더라도 4명은 있어야 대회 팀을 구성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해도 멤버 구성이 안되니, 팀 내에서 이번 대회에는 참가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요트를 타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요트 팀에서는 함께할만한 기본 훈련이 되어있는 크루가 없어서 팀 구성에 애를 먹는다. 이건 흡사 기업에서는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하지만, 젊은이들은 채용하는 회사가 없다고 좌절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이번 대회는 못 나갈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고 있는 찰나, 스키퍼는 짜잔~하고 게스트 크루를 섭외해 왔다. 그것도 무려 20살의 선수 두 명으로! 요트에는 종류가 많아서 이 게스트들이 타는 요트는 우리가 타는 J-24와는 다른 것이고, J-24와 같은 크루저요트는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바람을 읽고, 코스를 선정하는 것,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은 동일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한 번도 맞춰본 적이 없는 팀워크가 우려되기는 했지만...... 두 명의 게스트 크루들은 처음 타보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J-24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우리와 호흡을 맞췄다. 명불허전 선수는 선수이다.     


익숙한 멤버만으로 갈 것이냐 새로운 게스트를 영입할 것이냐의 문제,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것. 이번 대회는 익숙함과 새로움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그래서 홈경기와 원정경기를 번갈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움에 긴장도 해보고 익숙함에 안도도 해보는 경험, 손님으로 갔다가 손님맞이를 하기도 하는 경험을 모두 해 보는 것이다. 시합이기 때문에 이기기도 지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여겼던 이번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교훈을 얻었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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