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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28. 2022

우리는 요트로 피크닉 간다


“그냥 쉬엄쉬엄 봄바람이나 쐬다 오는 거야~”

“한강 한가운데서 김밥 먹고 과일 먹고 뱃놀이하자고!”


겨우내 꽁꽁 언 얼음에 갇혀있던 요트가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3월 어느 날 우리는 봄소풍을 가기로 했다. 요트를 타고 한강으로 말이다.


갑문을 향해 들어가는 중, 수위 조절을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요트는 김포에 위치한 아라마리나에 정박되어 있는데, 이곳은 한강의 김포대교와 행주대교 사이에 남쪽으로 물길이 나있는 곳이다. 이렇게 수로를 가로질러 보를 쌓은 경우에는 보의 상하류 사이에 수위 차가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갑문이라는 것이 있다. 수위가 다른 두 개의 수면에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수위 차를 조정하는 장치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한강의 메인 물줄기로 나가기 위해서는 갑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까 요트를 타고 싶다고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항만운영정보시스템’ 이라는 곳에 접속해서 신고와 신청을 하고 무전기를 들고 교신을 하며 갑문을 나가야한다. 무전기를 들고 통신을 하다보면 내가 항해사가 된 듯한, 선장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요트 피크닉

오늘의 코스는 행주대교, 방화대교, 마곡대교, 가양대교, 월드컵대교, 성산대교를 지나 선유도 앞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선유도까지 가는 경로는 순항이었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세일에 받아서 요트는 편안하게 밀려갔다. 당연히 속도도 빨랐고, 원래 이렇게까지 멀리 올 계획이 아니었는데 센 바람이 세일을 안정적으로 밀어주니 힘을 들이지 않고 순조롭게 밀려왔다.


소풍엔 김밥!

문제는 정면에서 오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돌아가는 길이었다. 봄바람은 확실히 강했다. 여긴 분명히 한강인데 파도가 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탄 요트는 큰 럭셔리 요트가 아니라 날쌘 스포츠 요트였기에 파도가 몸으로 그대로 덮쳐왔다. 바람이 찰까 봐 바다에 나갈 때 입는 방수 세일링 복을 입었음에도 온몸으로 한강물을 쫄딱 뒤집어썼다.


한강에 파도가 치고 있습니다?


“이제 저 다리만 지나면 다 온 거 맞지?”

“아닌데? 저거 가양대교야.”

“아직 가양대교밖에 안 왔다고? 나 힘들어 죽겠는데?”

“도대체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 거야? 그냥 잔디밭에 누워서 맥주나 마실걸! ㅋㅋㅋ”


분명히 선유도로 놀러 나갈 때는 금방이었는데 돌아오려니 이렇게 한참을 가도 끝이 안보였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


“가양대교까지 왔으니 엔진 켜고 들어가자. 메인 세일부터 내리자고!”

“메인 세일 내립니다.”


이렇게 세일을 다 접고, 엔진을 켜고 요트를 보트처럼 활용해서 목적지에 들어가려던 계획이었다.


‘덜덜덜덜, 피융~’

“어? 엔진 왜 꺼지지?”

“아까처럼 안 켜지는 거 아니야?”

“그래도 아까는 켜지긴 했잖아. 다시 해보자.”


이렇게 팔의 가동범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돌아가면서 엔진의 시동을 걸었다.


‘피융’


엔….진…..알 수 없는 너.

사실 출발할 때도 엔진은 문제를 일으켰었다. 갑문을 통과할 때, 수위를 맞추느라 갑문 사이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있다. 갑문으로 이동을 하는데 엔진이 수차례 꺼지자, 무전이 왔다.


“요트에 문제가 있습니까?”

“어,어, 잠시만요! 시동이 꺼졌는데요, 한 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아, 그러면 안 되는데, 갑문 예약 딱 맞춰서 한 거라 꺼지면 안 돼, 엔진아 켜져라 켜져.”


 다행히 엔진은 켜졌고 무사히 갑문을 통과해 한강으로 나온 터였다.  


우리는 강풍에 파도치던 한강 물을 쫄딱 맞고 젖어 덜덜 떨며 빨리 복귀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야속한 엔진은 이런 우리 상황도 모른 채 켜지지 않았다.


이미 메인 세일도 다 내려버렸는데 이걸 어쩐다? 세일을 올릴 때는 바람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올려야 한다. 세일에 바람이 안기기 시작하면 그 무게가 어마어마해서 세일을 올리는 게, 그러니까 돛을 펴는 게 쉽지 않다. 설사 힘들게 세일을 올린다 해도, 반쯤 올리자마자 바람을 받으면 배가 기우뚱하게 되어 컨트롤이 힘들어진다. 이미 우리 요트는 강풍이 부는 강 한가운데 서 있었고, 크루들은 지쳐있었기에 세일을 다시 올릴 수는 없었다.



평화롭게 선유도로 향하던 길


마리나에 구조요청을 했다. 그리고 강 한가운데서 가만히 서서 하염없이 구조선을 기다렸다. 아니, 기다리기만 하고 싶었으나 강풍에 요트가 자꾸만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었기에 나름 밀리지 않기 위해 배의 방향을 이리저리 움직여야만 했다.


문제는 구조요청을 한다고 보트가 바로 달려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우리가 아침부터 해왔던 모든 절차, 그러니까 갑문을 예약하고, 신고하고, 갑문의 수위 조절을 기다렸다가 우리가 온만큼 오는 것을 그대로 보트가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덜덜덜덜

치아가 부딪힐 정도로 떨렸다. 전용 세일링복을 갖춰 입었음에도 이미 손발이 다 젖었기에 몸은 떨리고 체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까는 그렇게 아름답던 서울의 풍경이, 낭만적이던 행주산성이 황량하게 느껴졌다. 바람을 가르며 강 위를 날 듯 요트로 미끄러져 갈 때는 그렇게 날렵하고 섹시하던 요트가 이제 보니 그렇게 초라하고 작아 보였다. 작고 하얀 보트 위에 앉아있는 무기력하고 미약한 인간들.


더 급한 것은 이미 우리는 마리나를 떠난 지 5시간이 지나있었고 신나게 음료와 과일과 김밥을 먹으며 왔다는 것, 그러니까 화장실을 한 번도 못 갔다는 사실이다. 레이싱 전용 요트 J70은 오직 시합을 위해 설계된 보트라 내부에 화장실 같은 시설은커녕, 이동식 화장실을 실을 공간마저도 마땅치 않은 요트이다. 그렇다고 우리 요트인들이 강 한가운데에서 볼일을 해결할 수도 없고?


구조되는 중입니다

부웅~

저 멀리서 구세주 고무보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늘 타고 나온 J70의 선주와 요트학교 팀장님이 함께 나오셨다. 이것은 뭐랄까, 아빠 차 빌려서 데이트 나갔던 아들이 차사고 내서 아빠가 데리러 오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두 분은 여기까지 데리러 나오시면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 걱정을 얼마나 하셨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니, 메인 세일을 내리면 아무것도 못하지. 그걸 올리고 돌아왔어야지.”

“아니, 왜 이 좋은 새 엔진을 못 켜고 그래? 요트 처음 타는 사람들도 아니고?”


아버지의 잔소리를 묵묵히 들으며 우리의 요트는 고무보트에 끌려서 마리나로 복귀했다.


그렇게 우리의 럭셔리한 소풍, 요트 피크닉은 안전하게 마무리되었고 2022 세일링 시즌이 시작되었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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