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 처음 간 것은 5년 전 2017년 여름이었다. 호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서핑을 접하고 그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찾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서핑 스폿이 양양이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의 서핑숍과 몇 개의 식당 밖에 없었던 이곳은 몇 년 새 화려한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캠핑장, 줄줄이 이어진 레스토랑, 카페, 바, 새 리조트까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서핑하러 양양 가는구나?”
“아니, 요트 타러 가.”
“양양에서 요트를 탄다고?”
요트는 서핑처럼 보드 하나만 빌리면 체험해볼 수 있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여름휴가로 요트를 타러 간다는 이야기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다들 서핑보드 탈 때 나는 요트를 탄다? 오~ 나 좀 힙 한 것 같은데! 후훗’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지만 혼자 우쭐했다.
양양이라는 장소가 주는 휴양지의 이미지 때문인지 휴가 가는 마음으로 가볍게 대회 신청을 했다. 신청은 가볍게 했으나 사실 <한국 레이저 챔피언십 2022>가 가벼운 대회는 아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한국 레이저 협회장배 대회로서 레이저요트 대회 중에 가장 큰 규모이고,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하지민 선수도 출전을 하는 대회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난생처음으로 1인용 딩기요트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고, 동해에서 처음으로 요트를 타는 것이었으며, 심지어 그동안은 강에서만 딩기요트를 타봤지 바다에 배를 띄워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 레이저 요트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야.”
“잉~ 너무 무서워. 그냥 스키퍼 언니가 운전하는 배에 같이 탈걸. 괜히 혼자 나와서 이게 무슨 고생이람.”
“아, 바닷물 왜 이렇게 차. 몸도 다 젖고 이게 뭐야. 엉엉엉”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바다 위 요트에 덩그러니 떠 있는 내가 중얼거린 혼잣말들이다. 바다에 나오자마자 머릿속은 후회로 가득 찼다. 바닷바람은 왜 이렇게 센 것이며, 파도는 금방이라도 내 요트를 뒤집어 버릴 것 같았고, 일렁이는 너울은 지난 부산 바다에서의 멀미를 생각나게 했다. 찰싹 내 몸 위로 덮친 파도에 옷이 홀딱 젖고 나니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첫날 총 4개의 게임을 펼쳤다. 첫 번째 경기는 아무 기억이 없다. 처음 접하는 파도와 바람에 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겠다는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전진했다는 것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경기코스를 다 돌고 결승선 피니시 라인에 들어갈 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네, 맞아요. 저는 피니시 라인이 아닌 스타트 라인으로 들어갔습니다. 번뜩 깨닫고 돌아나가려는 찰나 내 요트가 바람에 밀리기 시작해 경기위원회 배인 RC정(Racing Committee)에 붙어버렸다. 바람을 받은 내 요트가 RC정을 밀게 되었다.
“여기는 뭣허러 들어와?”
“피니시 하려고요......”
“그러니까 왜 여기로 피니시를 하냐고!”
경기 규칙도 숙지하지 않고 시합에 나왔다고 혼나면서 피니시를 했다. 피니시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13척의 ILCA6 종목 보트 중 7위로 들어왔다.
두 번째 경기는 스타트가 문제였다. 출발 1분 전에는 스타트 라인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경적이 울리면 바로 출발을 해야 하는데, 나는 스타트라인에서 수십 미터 뒤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요트 경기에서는 스타트 신호 후 4분 이내에 출발하지 못하면 DNS(Did Not Start)로 채점된다. 일종의 실격이다.
‘아 진짜 내 배만 왜 이렇게 안 나가지.’
발을 동동 구르며 겨우 스타트 라인을 통과했다. 내가 지나가자마자 ‘빵‘ 하는 경적이 울렸다. 이제 모든 보트가 출발했다는 뜻이다. 이미 다른 배들은 시야에서 사라져있었다.
‘그래도 실격당하지 않고 4분 안에 출발한 게 어디야. 이정도면 잘했어!’
그렇게 정신승리로 버틴 두 번째 경기는 총 13척 중 8위를 했다.
2번째 게임이 끝나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아침부터 해상에 나왔는데 물에 안 빠지겠다고, 안 죽겠다고 아등바등 배를 타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나있었다. 경기 운영 측에서 김밥 두 줄과 생수를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나눠줬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배 위에서 먹는 김밥이구나!. 바닷물 젖은 김밥은 우리 팀 멤버들의 고등학생 선수 시절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이다. 김밥을 막 먹으려고 은박지를 까면 파도가 덮쳐서 물에 젖고, 한 손에 들고 있다가 바람이 불어서 보트가 휘청하면 김밥이 물에 빠져서 물에 젖은 김밥을 먹었다던 그 무용담들.
김밥을 이제 막 세 개, 네 개쯤 입에 넣었는데 ‘빵’ 경적이 울렸다. 곧 경기가 시작되니 모이라는 신호이다. 한 줄 반이나 남았는데…… 배 위에 내려놓으면 100% 물에 젖을 테니, 구명조끼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소중하게 김밥을 끼워 넣고 오후 경기를 시작했다. 상체를 숙여 요트의 진행 방향을 전환하다가 가슴에서 김밥이 빠졌다. 요트 위로 굴러 떨어진 김밥 위를 기다렸다는 듯 파도가 덮쳤다.
“아, 나의 소중한 김밥아. 잘 가. 더 먹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그래도 세네 개라도 김밥을 먹고 나니 힘이 생겼는지, 파도가 약해진 것인지, 바람이 잦아든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내 몸이 적응을 했는지, 세 번째 라운드부터는 경기가 수월해졌다. 앞 두 경기에서의 실수로 스타트 라인도, 피니시 라인도 제대로 확인했겠다, 배가 뒤집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나니 과감하게 조종을 할 수 있었다.
혼자 뒤처져 쓸쓸하게 세일링을 하던 앞 두 경기와는 달리 세 번째 라운드부터는 내 옆에 함께 경쟁하며 가는 ILCA6, 레디얼 남자 선수가 있었다. 올림픽에서 레디얼은 여자선수들의 종목이지만, 일반부에서는 남자, 여자 구분을 두지 않고 오픈 레이스를 펼친다. 올림픽 남자 종목인 ILCA7 레이저 스탠다드 종목의 경우는 이상적인 선수의 몸무게가 80-84kg이고, 올림픽 여자 종목인 ILCA6 레디얼은 선수의 이상적인 몸무게가 66-70kg이다. 적정 몸무게의 의미는 배가 기울어지는 힐을 체중으로 눌러 배가 곧게 갈 수 있도록 하기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반부 오픈 레이스에는 체중이 85kg 보다는 70kg에 가까운 남자들이 레디얼로 출전하기도 한다. 여자도 몸무게가 80kg에 가깝다면 레이저 스탠다드 오픈부에 참가할 수 있겠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어쩌다 보니 내 배가 점점 빨라지며 둘 사이에 거리가 벌어졌다. ‘넘어지지 않기’가 이 경기의 목표인 나는 상대편이 나를 견제하며 공격할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제발 먼저 가세요. 저는 순위에 연연하지 않으니 저를 이기세요.’ 라며 코스를 방해하지 않으려 했고 속도를 줄이기까지 했다. 순위가 비슷한 팀을 만나면 공격적인 레이스를 펼치곤 했던 우리 팀의 경기 스타일이 떠올라서이다. 그렇게 상대와 거의 동시에, 하지만 순위를 내주며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13척 중 6위.
마지막 레이스가 되었다. 이제 한 게임만 더 하면 숙소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대 욕심내지 말고 물에 빠지지 말자. 무조건 안전이다.’라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내 옆에는 이번에도 그 남자 선수가 있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코스를 돌고 있었다. 이번에도 ‘절대 무리하면서 경쟁하다가 물에 빠지지 않는다.’를 목표로 의연하게 경기에 임했다.
물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경기수역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니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매우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보통의 여자들과 달리 배가 뒤집어지는 캡사이즈 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체중과 체력이 평균 이상이다 보니 스스로 버티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는 바다이고, 파도가 전혀 없는 한강에서 배를 세우는 것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겨우 배를 세웠더라도 바람이 한 번, 또 파도가 한 번 치면 세워놓은 배가 속절없이 넘어지는 여러 배들을 구조정이 도와주러 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안전 세일링을 했는데 운 좋게도 옆에 경쟁하던 남자 선수를 제치고 5위를 했다. 순위가 올라가고 나니 괜히 이제 몸이 풀리는 것 같고, 한 게임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첫째 날 경기가 끝나고 축하만찬으로 삼겹살 파티가 시작되었다. 함께 참가한 요트학교 멤버들과 저녁을 보내고 있을 때 성적이 올라왔다. 레디얼 종목에서 6위를 했다. 시상은 전문선수부와 오픈부로 나누어하는데, 레이얼 종목에 전문선수 3명이 참가했으니, 어라? 그렇다면 내가 오픈부 3위인데? 물에 빠지지 않기, 완주하기가 목표였던 소박한 목표의 참가자의 마음속에 갑자기 순위 욕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팀에서 배운 대로 점수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앞 순위를 추월하거나 뒤 순위에게 역전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략을 짜야하기 때문이다. 오픈부 1, 2위는 모두 레디얼로 출전한 남자 선수들이었다. 따져보니 두 남자 선수들과 내 점수 사이에는 차이가 꽤 있어서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내 뒤 순위와 내 점수 간의 차이도 꽤 되어 이변이 없는 한 역전되는 일은 없을 것임을 확인한 후 신나게 저녁을 즐겼다.
둘째 날, 태풍 힌남노가 영향권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양양에도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첫날의 화창한 하늘과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무색하게 흐린 하늘에 비가 내렸다. 예정된 시간에 경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1시간 동안 연기한다는 의미의 깃발인 AP기가 올라갔다. 1시간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비가 사그라졌다. 하지만 바람도 함께 사라졌다. 결국 AP기가 내려간 후 경기 종료를 알리는 A기가 올라갔다. 이렇게 대회 종료.
“그거 봐. 내가 너 잘 탄다고 했잖아.”
“아니, 잘 타는 것은 아니고. 그냥 끝까지 기권을 안 하고 완주를 한 것뿐이지.”
“그게 실력이지. 스포츠에서 체력이 곧 실력인 거 몰라?”
얼떨떨한 나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은 이번 대회에 함께 참가하자고 제안한 친구였다. 무섭다고 할 때마다 잘한다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코칭을 해주고, 요트 운반부터 세팅까지 모두 도와준 친구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경기를 할수록 점점 더 힘이 생겼다. 첫 번째 경기에서는 처음 타보는 파도에 놀라 정말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고 온 몸이 긴장해 세일을 당길 힘도 없었다. 그런데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이 풀리고 힘이 생기며 안정적이 되었으니 말이다.
스스로 가장 뿌듯했던 점은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바다에 이기려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갖고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파도는 강하고 바람은 요트를 부수고 사람을 바다에 처박을 수 있음을 되뇌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체구가 작은 여자선수들, 특히 대학생, 고등학생 선수들이 날렵하게 요트를 타고 있었고, 더 나아가 몸무게가 2~30kg 밖에 안 나가는 초등학생들이 즐겁게 옵티 요트를 타고 있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그들은 전문선수이거나 전문선수가 될 재목들이지만
‘저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경기에 임했다. 사실 기권을 하고 난 후의 후속처리를 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경기수역에서 홀로 빠져나가 요트를 육지로 올리는 슬립웨이까지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긴 거리를 혼자 가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을까 봐 두렵기도 했고, 혹시라도 대회 관계자가 한 명도 나와 있지 않다면, 혼자서 요트를 올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기분 좋게 시상식에 참여하고, 처음 신청 때의 마음처럼 휴가지 양양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즐기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만의 2박 3일의 요트 휴가였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