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나 60kg 넘었어!!!”
“지금 1kg가 아쉬운데 무슨 소리야? 우리 네 명 합해도 240kg도 안 된다고. 400kg을 딱 채운 팀도 있는데, 큰일이다!”
대회 전 선수들의 몸무게를 재는 계체 시간이었다. 우리 팀이 출전하는 J-24 요트 클래스 룰에 따르면 승선인의 체중은 400kg을 넘지 않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강한 바람에 보트가 기울 때 적절히 발란스를 잡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무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팀 크루들의 몸무게는 그 기준의 반 밖에 채우지 못했다.
이번 대회는 팀을 꾸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보통 우리 팀은 6명의 선수가 함께 배를 타고 대회에 출전한다. 6명이 승선하면 활동 공간이 좁아진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400kg에 가까운 무게가 되어야 강한 바람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보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올 해는 4명. 한 명은 6개월의 인턴과정을 마치고 지난달에 막 정식 팀원이 된 멤버, 다른 한 명은 이번에 인턴과정을 시작한 멤버, 그리고 나와 스키퍼 언니. 딱 한번 합을 맞춰봤을 뿐이다. 우리 팀에는 인턴과정이 있는데 지정된 요트교육을 이수하고 일정 시간 훈련에 참여하는 등 합을 맞춘 후 팀 가입을 결정한다. 기존 팀원의 찬성을 받지 못해 합류하지 못한 멤버도 있었고, 그 보다 더 많은 수가 스스로 팀을 선택하지 않고 나갔다. 다른 동호회와 마찬가지로 누구든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 제한된 인원(=체중)만 탑승할 수 있다는 요트의 특성상 모두가 함께 배를 탈 수는 없다. ‘In the same boat, 한 배를 타다.’라는 관용어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 상황의 무게는 고스란히 스키퍼 언니가 짊어졌다. 스키퍼는 바우맨이 되어 주변의 다른 배를 보며 코스를 읽었고 피트맨이 되어 보트의 시스템 조절 명령을 내렸으며 트리머가 되어 세일 트림을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스키퍼의 역할로서 보트의 항로를 결정하고 운전했다. 지난 3년간 대회를 다니며 스키퍼가 항상 바우맨과 함께 바람과 조류를 체크하고, 항로와 전략을 상의한 후 매 시합을 임하는 것을 봐온 나로서는, 이것을 혼자 다 하고 있는 스키퍼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게를 덜어줄 만한 연륜과 능력은 나에게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내 역할에서 실수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신입 멤버들이 다치지 않게 도와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입을 닫고 몸을 더 많이 움직였다. 주위를 더 많이 살폈고 힘을 더 썼다.
“아, 빨리... 제발,,, 나 팔,,, 아파,,, 힘들어...”
그렇게 단단히 다짐하고 대회에 임했음에도 저절로 입이 열리며 신음이 흘러나왔다. 세일에 바람을 가득 안고 내려가는 풍하범주에서 배가 방향을 바꾸는 자이빙을 할 때였다. 이때는 바우맨의 역할이 중요한데, 얼떨결에 그 포지션에 서게 된 신입 바우맨은 동작이 익숙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건 우리 팀에서 가장 숙련된 크루들이 전담하는 포지션으로, 3년을 활동한 나도 못하는 동작이니까.
요트는 함께 힘을 합쳐 보트를 움직여야 하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한 부분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다른 파트에서 보완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만약 크루들의 손발이 맞지 않는다면, 최적의 항로를 이탈하거나 최악의 경우 배가 고꾸라질 수 있다. 바우맨의 동작이 완료될 때까지 트리머인 나는 세일을 붙잡고 힘으로 버티며 시간을 벌었다. 스키퍼 언니는 내가 힘들지 않도록 요트를 조정해줬지만 그래도 나는 힘에 부쳤고, 세일을 거의 놓쳤으며, 범주를 벗어나 거리를 한참 손해 본 스키퍼는 속이 많이 쓰렸다. 신입 바우맨은 특유의 침착성과 정확성을 발휘해 속도는 느릴지언정 실수 없이 자이빙을 완료해냈다. 빠르게 진행하다가 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느려도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요트를 타면서 배웠다. 어쩌면 인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이 지혜를 장착한 사람이었다.
첫날에는 세 경기를 했다. 8팀 중 5위, 5위, 3위. 몇 번 합을 맞춰보지도 않고 출전한 멤버끼리 3위를 했다는 것에 다들 기뻐했다. 이런 긍정적이고 흥 넘치는 사람들 같으니.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누구 몸에 더 멍이 많이 들었나 경쟁하듯 다리와 팔을 내밀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직장에서는 안경대를 올리며 날카로운 지적이 오가는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들이 대회만 나오면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유치해지곤 한다.
둘째 날에는 멤버 한 명이 더 합류했다. 60kg가 추가되어 300kg의 체중을 채운 것이 이렇게까지 기쁜 일이었다니. 구원자처럼 등장한 베테랑 크루 덕분에 이틀 차는 수월하게 지나갔다. 스타트 과정에서 실격된 경기가 한번 있긴 했지만 3등, 2등, 4등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바람과 조류와 코스를 읽을 수 있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을 갖춘 숙련된 크루 덕분에 스키퍼는 운전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스무스한 자이빙 덕에 더 이상 팔 힘으로 버티지 않아도 됐고, 고생하던 신입 멤버 두 명의 다리에 멍이 덜 들 수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분명 바람이 잦아든다고 했었는데, 마지막 셋째 날도 바람이 센 것은 마찬가지였다. 강풍이 세일에 닿으면 배가 기우뚱 기울어지는 힐이 생기는데, 그렇게 배가 기울 때마다 크루들은 높아진 배 쪽으로 올라가서 체중으로 배를 눌러 평평하게 전진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앞서 말한 400kg의 체중이 중요한 것이다. 힐이 생겼고, 크루들은 신속하게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저 좀 도와주세요.”
기운 배 아래쪽으로 신입 크루가 매달려있었다. 이미 하반신은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고 겨우겨우 난간을 잡아 버티고 있었다. 이 긴급한 상황이 무색하게도 다른 크루들은 배가 방향을 전환할 때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녀를 구해주러 갈 수가 없었다. 각각의 임무를 다하지 못해 배가 컨트롤되지 않을 경우, 배가 완전히 기울어 전원이 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크루가 그녀에게 달려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나는 안심하고 내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다.
“악!!!”
“안돼, 안돼. 배 세워!”
구조가 끝난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그녀가 여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올라오는 과정에서 다시 떨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얼른 뛰어나가 빨랫감을 건지듯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이번에는 인턴크루가 한 다리는 배 위에, 한 다리는 콕핏에 빠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녀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날 어디서 그런 헐크 같은 힘이 나왔는지 나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물에 빠지거나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만,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우리 팀에서 자체적으로 크루를 구해서 태워야 하는 것이 룰이다. 그냥 들어올려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이 난리를 겪고도 우리는 9번째 경기를 3등으로 골인했다.
“짝짝짝짝”
“잘했어요. 팀 레이디즈 파이팅!”
“빠아아 앙”
결승선 앞에 다가가자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스타트를 했고, 어떤 코스로 범주를 했으며, 어떤 위기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3일 차 마지막 10번째 경기를 1등으로 끝냈다는 것, 3일간의 여정이 부상과 사고 없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1등으로 들어왔다는 기쁨과 녹초가 된 서로를 기특해하는 안쓰러움이 버무려져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감사의 에너지를 발산하던 그 장면뿐이다.
그 1등 덕분에 우리는 총 8팀 중 최종 3위를 차지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종합 4위였고, 3위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던 우리 팀이 3위라고?
“아, 대박.”
“엥? 우리가 어떻게 3위가 된 거야?”
경기 결과표를 열자 3위와 4위에 동점이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순위를 매기는 방법은 이렇다. 토털 스코어가 동점인 경우 1등의 개수를 센다. 팀 레이디스는 팀 사랑해와 32점으로 동점인데, 1등도 각각 한 번씩 했으니 여전히 동점이다. 그다음에는 2등의 개수를 센다. 우리는 6번째 경기에서 2등을 했었다. 그래서 우리 팀이 최종 3등이 된 것이다.
“팀 레이디스, 1등 한다며?”
친한 사람들이 이렇게 놀리며 지나간다. 모든 팀에는 각각의 사정이 있고, 그 누구의 스토리도 간단하지 않다. 항상 순위권 안에 들던 팀이 이번 대회에서는 하위권으로 밀려나기도 했고, 실격을 당해 분위기가 완전히 쳐져있는 팀도 있었다.
2020년 5위, 2021년 4위, 2022년 3위. 지난 3년간 내가 참여했던 통영 이순신 장군배 국제 요트대회를 돌아봤을 때 가장 경력이 짧은 사람들끼리 나온 대회였지만 가장 좋은 성적을 얻었다. 실력이나 연습량으로 쌓아 올린 성적이 아닌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멤버들 특유의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며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난 3년간 단 한 대회도 드라마가 아닌 것이 없었고, 뭉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