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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Dec 13. 2022

진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진수식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의견을 내주세요.”

“진수? 진수식이 뭐예요?”


進水. launching ceremony. 새 배를 물에 띄우는 것, 그러니까 새 배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영국 캐서린 왕세자비가 로열 프린세스 호의 진수를 축하하는 행사에서 가위로 리본을 커팅하자 샴페인 병이 줄을 타고 내려와서 배에 부딪혀 깨진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렇다면 우리도 샴페인을 준비하자!


우리 팀에 새 요트가 생겼다. 스키퍼 언니가 J70을 구입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팀의 보트는 J24에서 J70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니까 11월에 있었던 통영 이순신 장군배 요트대회의 J24 클래스 참가가 마지막이었던 것이고, 우리 팀은 내년부터 J70 클래스로 대회에 출전하게 될 것이다. J24 3년 타고나서야 이제 범장 좀 할 줄 알게 되었나 싶었는데, 이제 또 새 배를 배워야하네? 하하하.


아라마리나에서 김포시장배 요트대회가 열리는 오늘, 새 배로 출전하는 첫 대회에 맞춰 진수식을 하려는 것이다. 샴페인과 잔, 케이크와 과일을 준비해 차려놓고 샴페인을 잔에 따라 건배를 하며 사진을 찍고 축하를 받으며 화기애애할 때 누군가 말했다.


“그래도 샴페인을 배에 뿌려야죠!”

“안 돼.... 저 샴페인 비싼 거야...”


팀 스폰서가 준비해 준 비싼 샴페인을 마시고 싶었던 나는 “안 돼”를 외쳤으나, 샴페인을 퐁 터뜨리고 배에 뿌리며 축하를 하니 진짜 파티를, 세레모니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진수식 후에는 메인 세일에 스폰서 스티커를 붙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우리 팀을 잘 부탁한다, 새 배야.


우리 팀은 작년 여름 보령에서 열렸던 국제 요트대회 때 처음으로 J70을 접했다. 그때 우리나라에 10여 대가 처음 수입되었다고, 아마도 대부분은 그즈음 J70을 처음 접했다고 들은 것 같다. 나는 세일링 경력이 짧고 J24를 타는 것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초보 세일러여서 잘 몰랐지만 요트를 오래 탄 베테랑들은 J70을 타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배가 가볍고 날렵하며 반응이 빠르고 공간이 넓어서 크루들이 움직이기에도 불편함이 없고 관리도 쉽고, 무엇보다도 최신 디자인에 최신 공법으로 제작된 배라는 점. 사랑에 빠진 이유가 방언이 터진 마냥 이사람 저사람 입에서 흘러나왔다. 만들어진지 30년이 넘어 하나씩 고치면서 타야 하는 J24를 타던, 심지어 그동안 팀 보트 관리를 도맡아 하던 스키퍼 언니에게 새 보트의 매력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피니시 할 때 왜 이렇게 배가 안 나갔던 것 같아?”

“음…. 바람이 없어서요?”

“제네커를 다 열고 오는 바람을 흘려보내서 그렇지.”

“아, 무조건 높이 높이 띄우는 것 아니었어요?”

“그건 스피네이커고. J24랑은 다르잖아.“


1년 반 전에 J70을 타긴 했었는데, 분명 그때 대회에 참가하고 만족할만한 실력을 내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J70도 탈 줄 아는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 이 요트를 모른다.


이런 실수를 하면서도, 다른 크루들의 보완과 팀워크 덕에 우리는 이번 대회 J70 클래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1등을 하고 나면 분출하는 승리의 도파민 덕분에 12월 한겨울에 배 위에서 오들오들 떨던 것도, 세일을 올리고 내리면서 땀에 흠뻑 젖었던 것도, 힘이 빠져 팔다리가 후들후들 했던 것도 모두 미화되어 즐거운 기억만 남았다. 그래서 오늘 좋은 기억을 가지고 J70의 매력에 빠진 크루들이 추가되었다.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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