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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r 14. 2023

우리, 커플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새해 목표에는 건강, 커리어, 사랑 등과 더불어 슈렉이 카테고리가 별도로 있다. 2023년 신년 계획도 그랬다. 올해 슈렉이 관련 세부 목표로는 슈퍼스타 슈렉 인스타그램에서 친구 많이 사귀기, 슈렉이 유튜브 만들기, 슈렉이에 관한 기록 브런치에 많이 남기기, 노견 식단 더 깊이 공부하기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애견펜션 가보기’도 있다.


“이번 주말에 애견펜션 가볼까?”


퍼뜩 이런 생각이 들어서 검색해 보면 감탄을 자아낼만큼 잘 꾸며놓은 애견펜션은 5성급 호텔에 버금가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모두 풀부킹이었다. 슈렉이가 10살이 넘도록 애견펜션 한 번 가보지 않은 터라 멍세상 돌아가는 물정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인기 있는 숙소는 5월에 가려면 세 달 전 예약 오픈일인 2월 1일에 예약을 하고 입금까지 완료해야 한다. 대학 인기과목 수강신청 뺨치는 난이도다. 결국 3월 중순에 가는 일정을 두 달 전에 예약 성공하고 D-day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펜션에 가서 입히려고 멍선글라스에 잘 어울리는 캐주얼한 스타일의 강아지 옷을 사고 여행 가서 먹을 간식도 미리 주문해 놓았으니, 이 정도면 얼마나 큰 기대를 했는지 설명이 될 것 같다.


멍선글라스 낀 휴가지 패션

슈렉이의 첫 여행이기 때문에 애견 ‘동반’ 펜션이 아닌 애견 ‘전용’ 펜션으로 선택했다. 애견 ‘동반’은 말 그대로 강아지도 들어갈 수 있는 일반 펜션이지만 ‘전용’ 펜션은 모든 것이 강아지를 위해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소파, 침대는 저상형이라 작은 강아지들이 관절의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고, 숙소 안에는 애견 욕조, 드라이룸, 배변패드, 강아지 식기, 심지어 털을 제거하는데 쓰라고 돌돌이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닥인데, 숙소 전체가 미끄럼방지 기능이 있는 바닥재로 마감되어 있는데, 실제로 이 숙소에서 가장 비싼 자재가 바닥재라고 한다. 강아지들의 슬개골은 소중하니까.


“강아지가 침대에 쉬야하면 바로 전화 주세요. 침구 바꿔드릴게요. “


사장님이 이렇게 안내를 해주시는데, 세상에, 따로 세탁비를 물어주지 않아도,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바로 ‘전용’ 펜션의 클래스이다.


강아지 프렌들리 저상형 침대. 강아지들은 뽀송뽀송 이불을 좋아하죠.

펜션 전체가 리쉬프리라서 목줄 없이 숙소와 앞마당, 강아지 전용 뛰뛰마당, 바비큐 스폿까지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리고 위험 요소 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게 정말 좋았다. 아파트에 사는 슈렉이는 밖에 나가려면 무조건 하네스와 리드줄을 착용해야만 하는데 자유롭게 외부에 나가 마당에 쉬를 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니,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 이런 점이 참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작 슈렉이는 하네스를 안 한 것이 어색한 것인지, 아니면 워낙에 소심한 강아지라 숙소 밖이 무서운 것인지, ‘나가자’하고 현관문을 열어줘도 꼼짝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나가서 ‘엄마랑 같이 나가자.’라고 해야 슬금슬금 문 밖으로 나왔다.


다음 달이면 12살이 되는 슈렉이를 애견 펜션에 데려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할머니하고 꼭 붙어서 자는 이 할머니 껌딱지 강아지는 내 집에 데려와서 하룻밤 자던 날에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침실에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거실을 두리번거리고 방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극도로 예민한 강아지가 바로 슈렉이이다. 그래서 침대, 이불, 식탁, 식기까지 그대로 차에 싣고 갔다. (짐이 너무 많아 돌아올 때 슈렉이 식탁과 식기를 펜션에 놔두고 왔다는 사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홈메이드 식단을 끼니별로 도시락통에 담아 주렁주렁 갖고 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슈렉이는 자동차도 오래 타 본 적이 없다. 차 타는 것을 무서워해서 카시트는 사놓고도 차에 세팅할 일이 없다. 그나마 그동안 집에서 서울숲, 또는 남산공원을 가는 10~15분 거리의 드라이빙을 주말마다 꾸준히 연습한 덕에 이제 겨우 차에 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내 무릎 위에 슈렉이 침대를 올리고 그 위에 슈렉이를 앉혔다.


“슈렉이가 병원 가는 것 아니고 놀러 가는 것을 아나 봐. 어떻게 이렇게 즐기면서 드라이빙을 하지?”

“그래서 동물의 본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되는 거야.”


중간에 슈렉이가 낑낑거리거나 힘들어하면 휴게소에 들러서 산책할 계획까지 철저히 세우고 출발했는데 신기하게도 낑소리 한 번을 내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쉴 새 없이 코를 움직여서 냄새를 모으느라 무아지경이었다. 바람이 너무 세면 얼굴을 창문 안쪽으로 넣어서 바람을 피하고, 천천히 달리면 고개를 쑤욱 빼서 바람을 느끼는, 자체 속도 감지 시스템을 작동하면서 말이다.


왕크왕귀 가을이 어린이. 스마일퀸

이번 여행은 리트리버 가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이제 11개월이니까 딱 11년 나이차이가 나는 아기강아지이다. 가을이가 5개월 때인 작년 8월에 함께 애견 수영장에 가기도 했고, 그 후에도 서울숲에서 두어 번 산책을 같이 했던 터라 서로를 기억하고 잘 놀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컸다. 어쩌면 이참에 남친, 여친의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성격 좋고 호기심 많은 가을이 어린이는 슈렉이를 보자마자 같이 놀자고 장난을 걸고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이 즐겁고 아름다운 상황에서의 유일한 문제점은 바로, 가을이는 자기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못 본 새 가을이의 덩치가 얼마나 커졌냐 하면, ‘가을아’ 하고 부를 때 저 멀리서 뛰어오는 그 속도가 치타만큼이나 빠르고, 그 속도로 내 앞까지 오면 도움닫기- 점프의 단계를 거쳐 나에게 몸을 던진다. 그러면 가속도가 붙은 그 몸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나는 뒤로 자빠지게 되는데, 바닥에 쓰러진 내 얼굴을 그 큰 혓바닥으로 핥기 시작한다. 한바탕 세리머니가 끝나고 나면 내 얼굴은 가을이의 침에 흥건히 적셔져 머리카락이 미역처럼 들러붙고 뒷머리는 산발이 되며, 가을이에게 짓밟힌 몇 가닥의 머리는 바닥에 빠져 널브러지게 된다. 심지어 가을이는 반갑고 너무 좋으면 입에 넣는 버릇이 있어서 달려오면서 자기 입에 내 손을 넣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이나 인형을 물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세게 무는 것은 아니고 아프지 않게 ‘앙’ 무는 것이긴 한데, 입이 하도 크다 보니 아프지는 않아도 그 동작 자체가 무섭긴 하다. 여기서 반전은, 가을이는 여자라서 리트리버중에서도 여리여리한 편에 속한다는 사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졸졸 슈렉이 쫓아다니는 가을이

내가 보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진 아기 리트리버이니, 할배 슈렉이에게는 어떤 느낌일지 짐작은 간다. 슈렉이는 가을이가 너무나 귀찮았다. 졸졸 따라오는 것도 귀찮고, 자꾸만 자기 몸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같이 놀자고 앞에서 점프하고 그 큰 몸둥이로 달려드는 가을이가 무서웠다.

“아니 슈렉아. 너희 작년에 같이 수영했었잖아. 기억 안 나?”

“저기,,, 가을이 6개월 전에 비해 몸무게가 두 배가 되었어. 키도 두 배 커졌다고.”

“아, 그럼 슈렉이가 완전히 다른 강아지로 인식하려나?”


엄마 아빠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 식탁 주위를 어지러울 정도로 쉴 새 없이 뺑뺑 돌고 있는, 아니 쫓고 쫓기는 두 마리 강아지들이 안쓰러워 내가 바닥에 내려가 앉았다. 슈렉이는 곧바로 내 품에 쏙 안겼고 나는 장난조로


“우리 슈렉이 엄마가 지켜줘야지.”

라며 슈렉이를 꼭 끌어 앉았다. 방패가 생기자 ‘이때다’ 싶은 슈렉이는


“저리 가라고 멍! 귀찮단 말야 멍! 쉬고 싶다고 멍! 나는 네 친구가 아니라고 멍! 나 너보다 11살이나 많다고 멍! 내가 이 정도 참았으면 이제 그만 좀 해 멍! 왜 이렇게 따라다니는 거야 멍!”


엄마 품에 안겨서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 슈렉이는 그제야 입이 터져서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울부짖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톤의 외침이였다. 이렇게 화내는 할배를 처음 본 아기 가을이는 깜짝 놀라서는 귀가 쫑긋 서고, 눈이 동그래지고, 움찔움찔 놀라 뒷걸음질 쳤다. 여전히 자기 덩치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가을이는 자기 몸집의 반에 반 밖에 안 되는 쪼꼬만 슈렉이에게 졸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슈렉이가 으르렁 거리기를 멈추면 또 슈렉이에게 코를 들이댔다. 이 순둥이는 그래도 놀고 싶다는 거다. 친구가 마냥 좋기만 한 에너지 충만한 가을이와, 만사 귀찮은 할배 슈렉이의 잘못된 만남이 가슴이 아프면서도 웃겼다. 너희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면 체급 차이 따위는 극복하고 재밌게 놀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몸집이 비슷했다면 어울릴 수 있었을까?


커플샷이 이것 밖에 없네요….시카고 불스 합체 불가.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슈렉이를 보호하기 위해 침실에 슈렉이를 넣고 문을 닫아줬다. 가을이는 문 앞에서 보초를 서듯 한참을 킁킁 거리며 냄새 맡고 기다리더니, 이내 공을 물고 엄마에게 왔다. 그렇게 가을이는 밤이 깊어가도록 엄마와 공 물어오기 놀이를 했다. 반면 낮잠 한 번 자지 못하고 긴장된 상태로 하루를 버틴 슈렉이는 내 걱정이 우습게 밤에 깨지도 않고 잘 잤다. 아침이 되자 리셋된 가을이는 또 놀자고 슈렉이를 졸졸 따라다녔고, 슈렉이의 호통 2탄이 시작되긴 했지만.


이번 펜션 여행을 통해 가을이와 슈렉이가 11살 나이차와 체급차를 극복하고 커플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둘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었다. 커플의 핑크빛 꿈을 꾸며 커플룩과 커플 선글라스를 준비해 간 슈렉이 엄마는 실망했지만, 이건 그냥 아기 가을이를 너무 예뻐한 슈렉이 엄마의 욕심이었던 걸로, 그저 혼자만의 희망사항이었던 걸로 이번 펜션 여행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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