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몽상록

2021년 2월 21일 일요일

by 김뭉치

1.

꿈에서는 친구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모르는 남자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다 마시고 헤어진 뒤 휴대전화를 보니 세 개의 카톡이 와 있었다. 각자 술을 마시자는 내용의 메시지였는데 발신인은 각각 엄마, 대학 동창, 동생이었다. 모두의 카톡을 너무 늦게 봤다. 엄마, 동생, 대학 동창 순으로 답톡을 보내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집까지 가려면 환승을 한 번 해야 했다. 4호선에서 환승하려는데 또 다른 대학 동창이 어떤 남자를 가리키며 나를 붙잡았다.


"저 오빠가 자꾸 부르는데 말 좀 들어보고 가."


난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술을 마신 뒤라 에너지도 없었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혹시 엄마, 동생, 대학 동창 중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며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을까 봐 그들에게서 답톡이 온다면 시간을 낼 생각이었다. 고민하다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답톡이 올 때까지 조금만 친구와 그 남자의 말을 들어주자 생각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잘못됐다. 역시나 그는 헛소리를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친구와 나는 만취한 그를 아래층까지 데리고 갔다. 그를 옮기고 힘이 빠져 주저앉으면서 언젠가 피시방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었다.


지하철 환승 구간에서 만난 대학 동창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 했다. 만취남은 선로 위에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119를 부른 뒤 나는 그 사람에게 니킥을 날렸다.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엄마와 동생은 자는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만 술을 마시고 싶다던 대학 동창에게만 답톡이 왔다. 좋아하는 남자에 대해 고민 상담을 하고 싶어서 날 불렀는데 지금 그 남자와 함께 있다고 했다.


나는 안심하고 성신여대입구역에 내려 동생네 아파트로 갔다. 내가 바로 동생네 아파트로 가는 건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동창네 집에서 자다 온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이 뒤섞이고 어렴풋했다.


동생은 꿈속에서도 결혼한 상태였는데, 제부는 일 때문에 더 큰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 큰 아파트가 부부의 진짜 집이었다. 동생은 왜인지 학교 앞에 있는 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작은 아파트라고 하지만 흰색으로 아늑하게 꾸며진 인테리어가 돋보이고 방이 세 개였다. 거실이 매우 넓었다.


"그럼 나 이제 여기서 살면 되겠네?"


동생네 아파트에 가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 난 원래 어디에서 살았던 거지? 고시원에서 살았었나? 내 착각인가? 고향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나?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술을 마시고 여기로 온 건가? 내 삶의 전 기억이 흐릿했다.


동생은 내 질문에 바로 얼굴을 구기는 듯했다. 왠지 겸연쩍어 욕실로 가서 얼굴을 어푸어푸 씻으면서 말했다.


"월세 많이 낼게!"


오전 아홉 시부터 수업이 있는데 지금 대체 몇 시일까? 시계를 보니 오전 일곱 시였다. 문득 지금 수강 신청 정정 기간인 게 생각났다. 그런데 난 그 어떤 과목도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았다. 3월 2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숙취로 몸이 안 좋아 학교에 나가기는커녕 수강 신청조차 제때에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전필만 신청해놓고 교양은 나중에 신청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다 술을 마시고 싶다던 엄마의 톡이 생각났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가? 수업인가? 엄마와의 시간인가? 고민하다 나는 다시 고향에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내겐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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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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