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똑같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건 아니야

by 김뭉치

문예지를 읽다가 「회문(回文) 공작소」라는 시를 발견했다. 시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낮에 만난 친구들은 계단 옆에 난간이라도 세워 보라 했다 (중략) 나는 무언가 세워 올리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계단은 오르는 것 계단은 오르는 것”.


이 구절을 보며 문득 최근에 나누었던 지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40대인 지인은 내게 말했다. “요즘 2, 30대들은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젊은 나이임에도 무언가를 이뤄낸 친구들이 자주 보여요. 제가 젊을 때는 그런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말입니다.”


지인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내 주위의 2, 30대들은 대개 어느 회사의 대표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프리랜서 또는 'n잡러‘로 살아가며 주체적인 삶을 꾸리고 있다. 꼭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만 「회문(回文) 공작소」에 등장하는 ’친구들‘처럼 “계단 옆에 난간이라도 세워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요즘의 심각한 취업난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그들은 취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꿈꾸지 않았던 거죠. 회사에 입사해 말단 직원이 되기보단 스스로 회사를 차리는 식으로 사고방식을 전환한 거예요. 용을 써서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기보다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자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달라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더 멋지고, 힙하잖아요.”


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더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위기를 기회로 만든 거니까요.”


한때 나도 “계단은 오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빨리 계단을 올라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누군가 “네 꿈은 뭐니?” 물으면 “저의 꿈은 〇〇이 되는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〇〇은 ‘선생님’이 되었다가 ‘변호사’가 되는 식으로 계속 바뀌어 나갔지만 그 답이 꼭 주류 시스템에 속해 있는 무언가라는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나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사람은 언제나 그 대답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건 너무나도 일반적인 대답이었고 상대가 생각하는 ‘정답’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동일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비슷한 듯 달라졌다. 여전히 “저의 꿈은 〇〇이 되는 것입니다”였지만 〇〇은 더 이상 ‘직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떤 사람의 모양이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저의 꿈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어른’이 되고자 했던 나의 꿈은 또다시 바뀌었다. “저의 꿈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입니다.” 늘 무언가가 ‘되는 것’을 꿈꿨던 내가 이제는 ‘사는 것’에 방점을 두고 삶의 형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 꿈은 다시 한번 바뀌어 요즘의 내 꿈은 ‘지금처럼 사는 것’이 되었다. 이건 일종의 삶의 태도에 관한 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떤 성과나 업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의 나 자신을 바라보고 ‘순간’의 기쁨을 누리며 살자, 뭐 이런 뜻이다. 과거와는 달리 이런 내 꿈을 들은 상대방 중 일부는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는 ‘정답’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이 듣고 싶은 ‘정답’을 말해주고 싶진 않다. 이건 그들의 꿈이 아닌 ‘나의 꿈’이기 때문이다.


“계단은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회문(回文) 공작소」의 화자는 어찌 되었을까? 화자는 어느 날 지하실 계단에서 구르는 꿈을 꾸고, 계단이 화자의 온몸을 두드린 순간, “엄마는 키가 클 거라” 한다. 계단을 굴러본 사람은 곧 키가 커져서 ‘무언가’를 세워 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또 다른 ‘계단’은 아닐 것이다. 계단을 구르는 일은 그래서 더 멋지다.


김미향 에세이스트



2021년 3월 15일(월) <조선일보> '밀레니얼 톡'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23/0003601531?date=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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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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