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들은 우는 걸 부끄러워하는 거야?”
남편에게 물었다. TV에선 한 아빠가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는 속 시원하게 울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원랜 안 울었는데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까 이러네.”
그간 울지 못했던 여러 남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말했다. “남자가 울면 약해 보인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해서 그런 것 같아. 남자 화장실에는 이런 문구도 있어.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한 번도 남자 화장실에 출입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문구를 듣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어찌나 웃었던지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고 보니 캐럴도 있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다시 남편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울면 안’ 된다고 누누이 들어왔다니까. 울면 선물도 안 준다잖아.”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잊고 지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페어팩스 미디어>의 칼럼니스트 필 바커가 쓴 『남자다움의 사회학』. 이 책의 제1장 제목이 바로 ‘남자는 울지 않는다?’이다. 아마도 울지 못한 것은 한국 남자뿐만이 아닌 듯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자도 울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여기, 넘어져 무릎에서 피를 흘리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울면서 부모를 바라보지만 부모는 소년의 어깨를 잡고 두 눈을 응시한다. “씩씩한 아이는 울지 않아.”
어린아이의 삶에선 부모가 온 세계다. 그런 부모가 제시한 메시지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게 작용해 소년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 이게 ‘맨박스’다. 사회가 남자에게 은연중에 강요하는 것들을 일컫는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자. ‘울면 안 돼’라는 통념을 ‘울어도 돼’로 바꾸어 보자. 좋은 감정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감정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사회에서 인간은 더욱 성장한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사회, 눈물을 인정하고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회… 내일이면 생일을 맞는 아기 예수도 그런 사회를 꿈꾸지 않았을까. 그간 울지 못했던 소년들에게 마음 놓고 눈물을 드러낼 수 있는 ‘눈물 자유 이용권’을 성탄절 선물로 주고 싶다. 이제, 울어도 돼요 :)
김미향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저자
2020년 12월 24일(목) <조선일보> '일사일언'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58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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