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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하게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by 김뭉치

큰 강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압도되곤 한다.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봤을 때, 나는 또 한 번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맞닥뜨린 한 권의 그림책은 내 목구멍에서 소리를 앗아갔다가 내 머릿속에서 추억을 끄집어냈다가 종국에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이,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기게 해 주었다.


이 그림책은 저자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 편의 시처럼 풀어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시인으로, 이 그림책이 그의 첫 어린이책이다. 그는 말을 더듬는 자신의 경험에 천착하여 이미 시집 <바보(Blert)>를 출간한 이력이 있다. 캐나다 시문학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캐나다 라트너 문학 신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화자는 매일 아침 낱말들의 소리에 둘러싸여 잠에서 깨어난다. 소나무의 '소'는 발음되지 못한 채 '스-'로 남을 뿐이다. 까마귀의 '까'는 발화되지 못해 공기 중의 '끄-'로 채워질 뿐이다. 그래서 미처 다 말할 수 없는 낱말들의 소리에 둘러싸인 화자의 하루는 "돌멩이처럼 조용"하다. 학교에선 늘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고, 행여 선생님이 발표를 시켜도 화자는 맘처럼 말할 수가 없다.


화자의 아버지는 기운 빠진 화자를 데리고 강가로 간다. 거기에서 아버지는 화자를 도닥인다. 아버지는 화자가 입을 열 때 스며 나오는 달빛을 보는 사람이다. 넌 저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아버지는 가만히 화자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때, 화자의 두 눈은 번쩍 뜨이고 첫 장처럼 6칸으로 나누어진 그림과 네 칸으로 나누어진 글자들이 등장한다. "물거품이 일고 / 굽이치다가 / 소용돌이치고 / 부딪"친다. 벌거벗고 강물 속을 유영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속이 탁 트이게 아름다운 시드니 스미스의 터치가 자유롭다.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 캐나다 총독 문학상을 비롯해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퍼블리셔스위클리 올해의 그림책, 커커스리뷰 올해의 그림책 등을 수상한 작가답다. 그전까지 시종 어둡던 그림의 톤이 빛처럼 환해진다. 그 뒤, 마침내 화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좌)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첫 페이지 (우) 자신처럼 말하는 강물을 보았을 때


자녀를 둔 부모라면, 위축되어 있는 자녀의 기운을 따스하게 북돋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터치감이 살아 있는 그림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터치하고, 시적인 문장들은 어른 독자가 읽어도 손색 없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대체로 화자처럼 말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문이 막힌 채 살아간다. 말하기는 여전히 두렵고 삶은 아직도 무겁다. 거의 모든 면에서 나는, 유창하지 않다.


굽이치고 부딪치는 강물을 바라볼 것. 나는, 그리고 삶은 저 강물과도 같다고 느껴볼 것.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레 꾸준히, 흘러가는 대로, 더듬거리며, 그저 가볍게 살아낼 것.



일기를 쓰듯 꾹꾹 눌러 적어보는 감상들의 말미, 조용히 되뇌어본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책 속의 한 문장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말해요. 단순히 말을 더듬는다고 말해 버리기 힘든 면이 있어요. 단어와 소리와 몸을 가지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노동을 하는 셈이거든요. 내가 말을 더듬는 것은 나만의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날 유창하게 말하지 못한 여러 일이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의 일부이기도 해요. (중략) 말을 더듬으면서 나는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기도 해요.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 조던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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