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일엔 꿈을 꾸겠어요
영화가 상영되기 직전,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상영관 안의 사람들은 대개가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불 밝힌 그곳에서 스물세 살 때 만났던 남자친구와 투닥대기 시작했다. 꼭 붙어 있던 우리는 이내 절대 다가갈 수 없는 거리만큼 떨어져 앉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나는 친한 친구를 불러 맨앞에서 영화를 보았다. 고개가 좀 아파서 다시 뒷좌석에 앉았다.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불현 듯 눈이 떠졌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맨앞좌석에 앉아 있던 남편이 내쪽을 뒤돌아보더니 기억이 나냐고 말했다. 비몽사몽 중에 무슨 기억을 말하는 건지 몰라서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더니 어떤 남자와 계속 술을 마셨는데 기억나지 않냐고, 연신 묻는 거였다. 캄캄했다. 내릴 때였다. 아차 하면 한 정류장 더 갈 뻔했네, 하며 부리나케 버스에서 내렸다. 남편은 못 내린 건지, 안 내린 건지 나 혼자 내렸다. 집으로 걸어거다 문득 아래를 보니 내가 엄청나게 큰 요강을 낑낑거리며 안고 가고 있었다. 이게 다 뭐람, 하면서도 그냥 품에 꼭 안고 갔다. 뜨끈뜨끈했다. 설마 이게 나의 배설물인가,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술도 적당히 마셔야지 이렇게 온통 기억이 휘발될 정도로 먹으면 큰일이라고,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말한 ‘어떤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에게 실수한 건 없는지 걱정이 됐다. 내가 따스하게 품고 가는 이 요강을 보면 실수를 해도 단단히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꿈속의 집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니었다. 빌라인데 한 층 전체를 우리가 다 쓰고 있었다. 넓은 복도가 회랑처럼 이어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가 문득 이 요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변기에 부으면 될 것 같은데 꿈속의 나는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넓은 복도에 그걸 다 쏟아 부었다. 남편이 오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냇물처럼 복도를 채운 배설물들을 보자니 이걸 남편이 안 볼 수는 없다 싶었다. 부끄러웠다. 그 와중에 이게 다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연자실 서 있는데 남편이 무릎까지 차 오른 배설물의 바다를 휘적휘적 헤치고 와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느새 바다처럼 차 버리다니, 두려웠다.
일곱 시라 알람이 울렸다. 그제야 꿈이란 걸 깨달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시간은 잠시였지만, 혼몽했다. 꿈의 풍경들이 구름처럼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는 무엇인가 결심한 사람처럼 샤워실로 향했다. 수요일이었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