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기억 삼아

by 김뭉치

오토 한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리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한은 조용하고 승산 없는 후보였고, 다른 경쟁자들이 시끄럽게 떠들다가 제 말에 걸려 쓰러지는 동안 묵묵히 자기 순위를 지킨 끝에 맨 위로 올라선 인물이었다.

- S. L. 황, '내 마지막 기억 삼아', 장성주 옮김, <에스에프널> 2021 Vol. 1.


공허 위에 눈이 내린다.
다만 바라는 것, 향 피울 작은 무덤 셋
하나 메아리는 무덤이 없나니.

- S. L. 황, '내 마지막 기억 삼아', 장성주 옮김, <에스에프널> 2021 Vol. 1.


"장로님은 그 아이를 이용하고 계십니다. 비열하게도."

테지는 두 손을 몸 앞에 가만히 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모습이 상대의 화를 오히려 더 돋우기를 바라며. "나이마는 저희가 하는 일에 신념을 품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그 아이한테 자기 생각을 말할 권리조차 없다고 할 만큼 비정한 분이셨습니까?"

"요설은 집어치우시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라고 해서 그 빌어먹을 무기를 쓰고 싶겠소? 그런데도 당신은 외국 군대에 궤멸당하느냐 아니면 동포끼리 피바다를 만드느냐 하는 진퇴양난에 우리를 몰아넣으려 하고 있잖소. 혹시라도 당신네 교단이 짜놓은 계략대로 내가 내 손을 더럽힌다면 말이오. 그날이 내 저주받은 삶의 가장 괴로운 하루가 되리라는 걸 몰라서 그런 소릴 하는 거요?"

"그 점에 관해서라면 저는 어떤 연민도 느끼지 못합니다." 테지의 말투는 심드렁했다. "나이마에게 그날은 아예 삶의 마지막 하루일 테니까요."

만약 나이마 본인이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면, 아이 안에서 두 남자 모두를 향해 점점 쌓여가던 분노만 더욱 격해졌을 터였다. 그 분노는 차마 입 밖에 나오지 못하고 목에 걸려 있는 불행의 응어리였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서도 나이마는 언제나 대통령이 조금은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날카롭게 벼리는 분노는… 그 분노는 전에 느낀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 일은 나이마가 의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자신이 느끼는 바를 솔직히 밝힌 나이마를, 한은 대관절 무슨 권리로 이토록 모질게 대하는 걸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든 간에, 나이마에게는 온전한 개인으로 살 자격이 있지 않은가?

한편 테지를 향한 나이마의 적의는 그보다 더 복잡했다. 테지는 나이마를 아꼈고, 이는 나이마도 아는 바였다. 나이마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일깨워줄 때 그의 태도는 언제나 다른 장로들보다 훨씬 더 자상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이마는 그가 일으킨 선동에서 탑에 갇힌 비쩍 마른 아이라는 얄팍한 상징으로 이용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마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이마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말들을 읽은 지금, 어째서 자신에게는 목소리가 없다는 느낌이 이토록 강하게 드는지를.

- S. L. 황, '내 마지막 기억 삼아', 장성주 옮김, <에스에프널> 2021 Vol. 1.


한줄평

추후의 반전을 위해 다져지는 문장들



나이마는 아이였던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는 느낌이 이런 것인지 궁금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나이마가 테지에게 말했다. "어려운 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거예요."

- S. L. 황, '내 마지막 기억 삼아', 장성주 옮김, <에스에프널> 2021 Vol. 1.



한줄평

번뜩이다가 평온해진다. 그러나 그 평온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예전의 평온함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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