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영 소설
아버지는 내가 지붕을 고치는 동안 집에 불을 질렀다. 나는 미리 마련해둔 짚단 위로 뛰어내렸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방에 들어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버지와 같이 식사를 했다. 새어머니는 나를 우물에 집어넣었다. 나는 미리 파둔 굴을 통해 밖으로 나왔고 마찬가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침상을 차렸다. 동생이 내게 독을 먹였을 때 나는 미리 준비해둔 혈청으로 살아났다.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자 그들도 자신들이 한 일을 잊고 살았다.
살기 위해서였다.
내겐 집이 필요했고 땅이 필요했다. 그날그날의 먹을 것이 필요했다. 그들이 가진 것들이 내게 필요했기에 최선을 다했다. 살아남고자 대비했고 살아남고자 웃었고 살아남고자 잊은 척했다.
내가 그리하자 사람들은 내가 효를 행한다 했고 인덕이 있다고 했다. 그 소문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왕이 내게 관심을 두었다.
- p. 120
내가 그대들을 그리워함은 우리가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 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로 그대들을 그리워하며 내가 준 상처로 그대들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함께 행복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그대들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아직 가져보지 못한 그 행복을 그리워한다.
우리는 내일을 말하고 어제를 말하며 한 번도 오늘을 살지 않았다. 우리의 시간은 다 그렇게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내가 그대들을 그리워함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형편없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이제 내가 영영 잃어버리고 만 그 기회를 그리워한다.
내가 거기서 그대들을 다시 찾으리라. 이 시간 저 시간에 흩어져 죽었을 그대들을 모아 내가 마련한 작은 땅에 가족의 유해를 뿌리리라. 우리의 재가 거기서 함께 어우러지리라.
- 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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