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두건 아가씨

- 김보영 소설

by 김뭉치

학교에도 여자는 없다. 교수도 학생도 남자들이다. 수험생은 입시철에 남자로 갈아타고,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도 남자로 갈아탄다. 회사에도 여자는 없다. 꿋꿋하게 버티던 직장인들도 연봉협상이나 정리해고 시즌이 오면 줄줄이 남자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막노동이라도 하려 빚을 내 남자가 되고 부잣집 아이들은 땅이나 회사를 물려받으려 남자로 몸을 바꾼다.

ⓒ 아작

"하긴 여자인 게 좋죠? 사랑받잖아요. 주목도 받고. 이 거리 남자들이 다 아가씨만 보고 있을걸요."

"내리겠어요."

아가씨가 경직된 얼굴로 말했다. 기사는 당황해서 길가에 차를 멈췄다.

"이봐요. 아가씨. 나 살짝 기분 나쁠라 하는데, 난 정말 호의로 태워준 거예요."

아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독신주의 그런 거 아니죠? 결혼은 할 거잖아요. 그렇죠? 애를 낳아야 해요. 국가를 위한 일이죠. 아니, 국가는 상관없지. 아무튼 애는 낳아야 해요. 그렇게 생각은 하죠?"

아가씨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중략)

"사람한테 말도 못 붙여요? 내가 뭐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그럼 왜 거리를 나다녀요? 왜 그런 옷을 입고요?"

(중략)

아가씨는 주목을 원하지 않는다. 무시당하거나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서 뭘 하든 자연스럽기를. 어느 풍경에 끼어 있든 별스러워 보이지 않기를. 거리를 무심히 걷는 모든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기를.

그게 가능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아가씨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시위.

- pp. 74-75


<얼마나 닮았는가>를 쓰고 난 뒤라 이어지는 생각을 썼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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