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츠 이치 단편소설 <SO-far> 리뷰
이 소설의 제목 'SO-far'에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1. SO(significant other)는 중요한 타인(부모, 동료 등) 또는 배우자, 연인을 뜻하며 far는 먼 곳으로, (멀리) 떨어져서라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언제나 가까운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가 아프게 하는 것도 대부분 그들일 테다. 2. 이 소설에서 부모는 화자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는다. 따라서 소설 속 가구 '소파'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아래부터는 <SO-far>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서는 흡사 <금쪽같은 내 새끼>에 사연을 보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아이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는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걸 <SO-far>가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처럼 알게 모르게 학대받고 있다. 아이이에겐 곧 이 세계의 전부인 부모. 부모가 그걸 간과하는 순간, 훗날 그 업보는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극단적인 설정이라 좀 과한 감이 없지 않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부모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과도한 설정이라는 우(愚)는 작가의 문장력이 하드캐리하며 끌고 가 눈 감아줄 수 있다.
특히 작가의 문장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첫 문장과 첫 문단, 그리고 자신이 좀 더 착한 아이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자책하는 화자의 심리 묘사 장면이다. 간명하게 스타카토처럼 끊기는 문장들이 흐르다 살짝 긴 문장이 등장해 묘한 리듬감을 형성하며 문장은 주욱 이어진다.
지금은 나도 아주 조금 성장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이제 곧 중학생이 된다. 그래서 그 당시의 불가사의한 상황을 옛날과는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그 무렵의 나는 유치원에 다니는 정말이지 어린 나이였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미덥지 못했다. 나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라 이야기를 하려면 위를 보아야 했고, 어른이 허리에 손을 얹고 질린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면 내가 너무도 잘못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른에게 설명을 하려고 시도했다가 잘된 경우가 없었다.
- <SO-far>의 첫 문단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인터파크 http://asq.kr/PH2QwV
예스24 http://asq.kr/tU8tz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