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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형 인터스텔라

- 물리학과 언어학의 만남, 네 인생의 이야기

by 김뭉치

만약 당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인생의 중대한 결정 앞에서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선택을 그대로 반복할 것인가?


<네 인생의 이야기>의 루이즈는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의 선형적 사고를 받아들인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익힌 뒤 루이즈는 때때로 그들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이퍼 워프 가설의 실사판이다. 그렇다면 루이즈에게 언어란 무엇인가? 그에게 언어란 타자와의 소통 도구다. 언어를 통해 그는 헵타포드의 사고체계를 ‘이해’하고 종국에는 그 사고를 ‘수용’한다. 이에 비추어봤을 때, 테드 창은 언어를 통해 우리는 타자와 소통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 과정을 통해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사고체계까지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말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직선의 사고체계가 아닌, 선형의 다른 사고체계에 대한 이야기는 몹시 신선하다. 일례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접해온 마스터피스인 그리스 비극의 경우, 정해진 운명대로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 발버둥과는 무관하게, 아니 어쩌면 그 발버둥 때문에 오히려 더 비극적인 운명대로의 결과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헵타포드의 인생과 루이즈의 경우엔 살짝 다른 것이 정해진 운명이지만 그 운명을 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 미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어찌 보면 바보 같기도, 어찌 보면 현자 같기도 하다. 한편 어쩌면 비틀어진 말장난 같기도 한, 고대 그리스 비극과는 다른 이 테드 창식 운명 수용론을 큰 틀에서 보면 선형적 사고체계로 살아가지만 역시 죽을 줄 알면서도 사는 현재 우리들의 삶과 비슷한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루이즈의 경우에는 그 선택이 절묘하게도 딸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일찍 죽을 딸, 이 모든 걸 알고서도 딸을 낳기를 선택하는 루이스, 그로 인해 떠나는 남편… 루이스는 결국 딸에게 세상을 보여주기로 결정하고 차근차근 그를 수행해 나간다.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우주의 기원과 운명에 대해 물었다. “왜 인간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기억하는가?” 한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동등하게 취급한다. ‘시간되짚기 대칭성’에 따르면 사건이 진행되는 방향은 시간의 진헹 방향과 상관없이 성립한다. 이에 대해 테드 창은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를 끌어와 답한다. 그건 우리의 인과론적 사고체계 때문이라고. 사고체계가 바뀌면 미래를 기억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테드 창은 주제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택하지 않고 주제와 마찬가지로 선형적 구조의 작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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