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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Dec 04. 2021

미개봉 중고 신입생을 아시나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잡지 편집 실무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난주에는 잡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인터뷰 기사’를 쓰는 법에 대해 강의하고 학생들에게 특별 과제를 냈다. 단기간에 인터뷰이 선정부터 인터뷰(취재), 기사까지 작성하고 해당 인터뷰 콘셉트에 대해 발표까지 마쳐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 저리 가라 하는 과제였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예정된 시간에 인터뷰를 성공리에 마쳤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각기 다른 인터뷰이를 선정, 중복되는 인터뷰이 한 명 없이 개성 있는 인터뷰 기사를 선보였다.


한 학생은 인터뷰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터뷰를 마무리해 웃음을 자아냈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열 명만 살아났는데,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섯 명만이 과학자가 개발한 캡슐로 들어가야 합니다. 현재 변호사와 그 아내, 대학 1학년 여대생, 프로축구 선수, 소설가, 여배우, 과학자, 경찰, 목사, 외국인 노동자 열 명이 있는데, 당신이 결정권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흡사 취업 면접에서나 볼 법한 질문을 인터뷰이에게 던져 인터뷰이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답변을 얻은 것이 웃음 포인트였다.


반면 또 다른 학생은 대학에 들어와 단 한 번도 대면 수업을 해보지 못한 20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을 인터뷰해 눈물을 자아냈다. 본래 ‘미개봉 중고’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쓰이던 말이다. 중고품이지만 포장조차 뜯지 않은 새 물건이라는 뜻으로 ‘미개봉 중고’라는 말을 쓴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나 쓰이던 이 말이 최근에는 코로나 학번 대학생들과 선배들에게 넘어와 ‘미개봉 중고 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 등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로 통용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단 한 번도 대면 수업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캠퍼스 라이프도 누려보지 못한 20학번, 21학번 학생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 인터뷰한 ‘미개봉 중고 신입생’은 코로나19로 이미 대학 입학 전부터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지 못하는 등 학교 생활 전반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KT 통신 장애로 비대면 수업 중 강의가 중지돼 곤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벌써 2년이나 지나 버려 아쉽다고 말했다.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 모두를 경험한 이전 학번과는 달리 미개봉 중고 신입생들은 대면 수업의 경험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대면 수업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동방에서 동아리 생활을 즐기거나 동기, 선배들과 어울려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며 담소도 나누고 MT도 가고 축제에서 연예인들을 보며 크게 소리도 한 번 질러보는, 코로나19 이전에 대학을 다녔다면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평범한 캠퍼스 라이프를 이들은 진심으로 꿈꾸고 있었다. 특히 이제는 졸업한 유튜버들이 찍은 대학교 생활에 대한 브이로그를 보며 자신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캠퍼스 라이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마음을 울렸다.  


2년 동안 온라인으로만 누린 대학 생활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고 코로나19 이전의 대학생들처럼 오프라인 대학 생활을 꿈꾸는 학생들. 내년에도 비대면 수업이 계속된다면 4년간의 대학 생활 중 절반 이상을 온라인으로만 경험하게 된다.  


요즘 대학생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비대면 수업이라고 한다. 20학번, 21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들은 과연 본인들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게 맞는지, ‘고등학교 4학년’인 건 아닌지  혼란을 겪기까지 한다. 대학 생활과 함께 시작되는 새로운 인간 관계도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의사소통 면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내년에는 이들이 꿈꾸던 대학 생활이 ‘개봉’될 수 있을까.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하는 코로나 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들의 남은 대학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김미향 잡지 편집자·에세이스트



2021년 11월 29일(월) <조선일보> '밀레니얼 톡'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5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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