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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이해 사이, 언어 감수성 훈련

-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by 김뭉치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중 ‘이혼가정’이 화두로 떠올랐어요. “보통 새아빠가 그러는 경우가 많다더라?” 하며 친구들을 돌아보는데, 한 친구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친구가 이혼가정의 자녀였거든요. 친구에겐 다정한 새아빠가 있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이혼가정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게 달갑진 않았을 겁니다. 아뿔싸, 그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었지요. 한 번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으니까요.


이 사건 이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말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부끄러움으로 남은 이 일을 통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쓰는 말들 전부를 하나하나 돌아보게 되었지요.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쓰는 말이 곧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는 거지요.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의 저자도 같은 얘길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다수가 정해 둔 틀에서 조금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곧잘 ‘구분 짓기’를 하지요. 이러한 구분 짓기는 차별과 불평등 현상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들은 말들 중 잊히지 않았던 표현들에 담긴 속뜻을 찾아 언어 탐구 여행을 떠납니다.


김청연 지음 l 출판사 동녘 l 가격 1만3000원



“틀딱, 가사를 절다, 명품 몸매, 흑형, 다문화, 지잡대, 사내놈, 주인아줌마, 벙어리장갑…” 이 중 자주 했던 말, 종종 듣는 말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미묘한 차별을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고 부릅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아주 작은(Micro)’과 ‘공격(Aggression)’의 합성어인데요. 미세하지만 공격성을 띠고 있는 차별 언어나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먼지 차별’이라고도 해요.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먼지 차별’ 표현들을 나이, 장애·인종, 경제 조건·지역, 학력·학벌·직업, 성별 등의 기준으로 분야별로 구분해 그중 열아홉 개 말을 골라 담았습니다.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를 읽다 보면 무심코 한 말이 다른 이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 세상엔 편견과 차별을 담은 말들이 우리 생각보다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냐고요? 일일이 신경 써 가면서 말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고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차별과 배제의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조심하는 일은 분명 불편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만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나라면, 또는 내 가족이라면 과연 기분이 어떨까 하고요. 혐오의 언어를 지양하는 건 결국 상대를 배려하는 일입니다. 자, 이제, 책을 펴고, 언어 감수성을 키워 볼까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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